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어디 군사요?”
폐마장 경비군사는 다섯, 모두 졸개였으니 대아찬이며 성주(城主)였던 진궁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장덕 화청이 군사에게 대답했다.
“백제군이네.”
“농담하지 마시오.”
그 순간 화청이 허리에 찬 칼을 빼자마자 군사의 허리를 잘랐다. 신음을 뱉은 군사가 넘어지는 것을 신호로 백제군이 달려들어 남은 군사를 순식간에 베어 죽였다.
“마장 구석에 묻어줘라.”
어둠속에서 화청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섯이 나와서 저놈들 대신 경비를 서도록 해라.”
화청의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면서 계백이 해준에게 말했다.
“군사들은 푹 쉬게 하고 날이 밝으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게.”
“폐마장이 한적한 곳에 위치해서 다행이오.”
해준이 말하자 진궁이 손으로 끝 쪽 마구간을 가리켰다. 긴 막사가 2동이나 세워져 있다.
“저쪽 마구간이 은신하기가 적당하오. 밖으로 나오지만 않는다면 말과 사람이 숨을 수 있소.”
대야성은 넓어서 산비탈 밑으로 사방 10리 길이로 성벽이 둘러쳐졌다. 폐마장은 외진 곳이라 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계백이 진궁에게 물었다.
“서문에서 가까운 성문은 어디요?”
“북문이 7백보 거리에 있습니다.”
진궁이 말을 이었다.
“작은 동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북문이요.”
그러자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일 나하고 그곳에 가 보십시다.”
계백이 무장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서문으로 들어왔다고 꼭 서문을 열 필요는 없으니까.”
서문 수문장 여준이 협조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서문 수비군을 치고 성문을 열어야 될 것이다. 백제군이 밖에 있는데 수문장이 성문을 열라고 명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진시(8시)쯤이 되었을 때 대야성주이며 대야군주인 김품석이 잠에서 깨어났다. 전령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내성 안까지 들어올 수 있는 장수는 위사장 김채순 뿐이다.
“군주, 박천성주가 보낸 전령이 왔습니다. 봉화까지 띄웠다는 데 봉화를 보지 못한 터라 데리고 왔습니다.”
긴장한 김품석이 측실의 손을 뿌리치고 옷을 건성으로 걸치고는 침실을 나왔다. 마루에 선 김품석이 마당에서 기다리는 김채순과 전령을 보았다.
“무슨 일이냐?”
김품석이 거친 목소리로 묻자 14품 길사 벼슬의 전령이 무릎을 꿇은 채 소리치듯 보고했다.
“기마군 수천기가 박천성 남쪽 20리 지점을 지나 동쪽으로 갔습니다. 성주께서 군주께 그것을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동쪽으로? 수천기가?”
김품석이 묻더니 혀를 찼다.
“백제군이 맞느냐?”
“백제군이 맞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등신같은 놈들.”
어깨를 부풀린 김품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쪽이면 어디냐?”
전령은 입을 다물었다. 박천성에서 이곳 대야성은 동남쪽이다. 동쪽으로 직진하면 신라국의 왕성인 동경성이 나온다. 이윽고 김품석이 김채순에게 지시했다.
“순찰대를 사방으로 띄우고 이 보고를 동경성에도 전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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