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김품석이 소리쳤다. 함성과 외침이 울린 것이다. 이어서 비명이 울렸다.
“알아보고 오너라.”
이맛살을 찌푸린 김품석이 시녀에게 지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부인인 소연을 만나러 왔던 것이다. 저녁도 먹지 못했지만 식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소음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칼날 부딪치는 소리에다 여자들의 비명도 날카롭게 울렸다.
“나리, 백제군 일까요?”
소연이 다가와 물었는데 눈을 크게 뜨고 입이 조금 벌어졌다. 겁에 질린 표정이다. 소연의 일생에서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것이다.
“아니, 그럴리가…….” 했지만 김품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마룻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의 외침이 울렸다.
“군주(軍主)!, 백제군이 내성에 침입했습니다.”
위사장 김채순이다.
“나리.”
놀란 소연이 김품석의 소매를 잡았고 뛰는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침실 옆의 마룻방이다.
“군주! 어서 피하십시오!”
그때 마룻바닥을 울리는 무수한 발자국 소리와 함성, 비명이 한꺼번에 울렸다.
“이런!”
소연에게 잡힌 소매를 뿌리친 김품석이 허리에 찬 칼을 빼들고는 문을 열었다.
“으앗!”
함성이 더 크게 방으로 쏟아졌고 문 앞에 서 있던 김채순이 몸을 돌리면서 김품석을 가로막는 시늉을 했다. 그때 김품석은 복도를 달려오는 무리를 보았다. 신라군이다. 앞장선 신라군은 피 웅덩이에 빠진 것 같았는데 손에 칼을 치켜들고 있다. 그 순간 사내와 김품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복도의 기둥에 매달아놓은 등빛에 얼굴이 선명하다.
김품석이다. 계백은 방문 안에 선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바로 알았다. 금박을 입힌 붉은색 겉옷, 흰 얼굴, 그리고 그 뒤에 숨듯이 선 여자, 김품석의 부인이며 김춘추의 딸 소연인가?
“으앗!”
함성은 뒤를 따르는 진궁과 화청이 질렀다. 계백은 치켜든 칼을 고쳐쥐었다. 거리는 20보에서 어느덧 7, 8보로 줄어들었다. 이제 가로막는 신라군은 없다. 김품석 앞에 선 무장의 기세가 사납다. 위사장인 것 같다. 내성 안을 통과하면서 따라 들어온 위사, 신라군 대여섯명을 베어 죽였다.
“이놈!”
그때 김품석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무장이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더니 달려왔다. 맹렬한 기세, 건장한 체격의 무장은 칼을 치켜들고 단숨에 덮쳐왔다.
“이얏!”
그 순간에 계백과 부딪친 무장의 칼이 엄청난 기세로 내려쳐졌다. 계백은 무장에게 달려가면서 무장과는 반대로 치켜든 칼을 내렸다. 그래서 둘이 부딪쳤을 때는 칼이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진 자세, 수비 자세다. 상대가 내려칠 것을 예상하고 기다린 자세, 그 순간 무장의 칼이 벼락처럼 계백의 머리끝을 쳤다. 기다리고 있던 계백이 어깨를 틀면서 걸치고 있던 칼로 무장의 가슴을 찔렀다.
“욱!”
가슴을 관통당한 무장과 몸이 부딪치면서 얼굴이 바로 옆에 놓여졌다. 무장은 숨을 들이켰다가 몸이 젖혀지더니 입으로 솟아오른 피를 계백의 얼굴에 뱉었다. 계백이 어깨로 무장을 밀어 젖히고는 칼을 뽑았다. 자,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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