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나솔 윤진이 대선 위에서 계백에게 설명했다. 수군항의 전력(戰力)을 말한다.
“대선과 중선, 쾌선으로 진이 되어야 대해(大海)로 나갈 수가 있지요. 대선 2척, 중선 4척, 쾌선 6척을 1진(陳)이라고 부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부터 백제는 해상강국이었다. 동성왕 때 대륙의 담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수군(水軍)도 양성시켰기 때문이다. 대선은 길이가 200자(60m), 폭이 60자(18m), 높이가 40자(12m)였고 돗대가 2개, 수부가 20명, 수군을 60명까지 실을 수 있다. 중선은 길이가 150자(45m), 폭이 40자(12m), 높이가 25자(7.5m)이며 돗은 2개 ,수부가 12명에 수군 35명을 싣는다. 쾌선은 길이가 100자(30m), 폭이 20자(6m), 높이가 15자(4.5m)인데 수부가 22명, 수군이 20명이다. 수부가 많은 이유는 배 양편에 노가 3개씩 있어서 수부 12명이 저으면 빠르게 달릴 수가 있는 것이다. 윤진이 말을 이었다.
“대선과 중선이 해전(海戰)을 벌이고 쾌선은 연락과 정찰, 또는 기습 역할을 맡았지요. 그러나 요즘 몇 년 동안 대해로 진(陣)을 펼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계백이 묻자 윤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해적선은 3척씩 무리지어 오는 데다 노꾼이 많아서 우리 쾌선보다 빠릅니다. 대해에서 잡지 못하고 놀림감만 되는 바람에 아예 근해만 순시하고 있었습니다.”
“방법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
“쾌선에 노잡이를 배로 늘리고 대선과 중선에 대궁을 장착하자고 진즉부터 건의했지만 묵살되었지요.”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신라 선박도 백제 연안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백제 연안은 대륙과 멀리 인도, 페르시아로 통하는 상로(商路)인 것이다. 다음날부터 수군항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선박을 수리하고 한편으로는 수군을 조련시켰기 때문에 수군항 주변에는 밤이 새도록 불빛이 휘황했다. 병관좌평 겸 상좌평 성충이 수군항에 도착한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열흘이 되었을 때다. 대선(大船)에 오른 성충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내가 6년쯤 전에 대선을 타고 담로 안남군에 갔었어. 그때 선왕(先王) 마마의 사신으로 갔었는데 도중에 해적선을 만났지.”
대선에 장착된 대궁(大弓)을 쓸면서 성충이 말을 이었다.
“그때는 이 대궁이 육지에서 공성전 때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야. 이 대궁만 있었다면 그 해적선을 잡았을 텐데.”
“마침 알맞은 나무가 있어서 솜씨좋은 군사들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궁은 길이가 15자(4.5m), 시윗줄은 삼줄과 가죽을 꼬아 만들었고 화살은 두께가 1치(3cm)에 길이는 12자(3.6m)다. 화살 끝에 창날이 꽂혔는데 주위에 기름을 넣은 가죽 주머니를 붙여서 쏘도록 했다. 가죽 주머니 끝에는 불이 붙은 심지를 매달아 화살이 박힌 순간에 기름 주머니가 터지면서 불이 붙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공성전에 자주 사용했지만 배에 장착하는 것은 처음이다. 계백이 옆에 선 나솔 윤진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솔 윤진이 함선용 대궁을 착안했습니다.”
“장하다.”
상좌평 성충한테서 칭찬을 받은 윤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대선에는 대궁이 선수에 2대, 선미에 1대를 장착했고 아래쪽에 노 구멍을 만들고 노를 6개씩 넣었다. 노꾼으로 24명을 충원시켰지만 공간은 넉넉하다. 중선도 대궁을 2대, 노꾼을 20명, 쾌선은 대궁 1대에 노꾼을 20명으로 늘려서 그야말로 쾌속선이 되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