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종이비행기 위에서 보라색 꽃을 들고 있는 소녀의 얼굴엔 눈물이 고였다. 그림도, 조각도 아니다. 전주 근영여자고등학교 소녀들이 만든 ‘위안부 배지’속 소녀의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시사한 발언으로 다시금 위안부 이슈가 떠오르는 이맘때 전주 발(發) 위안부 배지가 뭉클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27일 점심 전주시 중화산동 근영여고 과학실에서 만난 최지현 양(18)은 “지난 3월부터 동아리 학생들이 모여 ‘위안부 배지’ 100개를 만들었다”며 “배지를 보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양은 교복 왼쪽 옷깃에 위안부 배지와 세월호 배지를 나란히 달고 있었다.
가로 25.6㎜ 세로 27㎜ 위안부 배지에 담긴 뜻은 꽤 심오하다.
보라색 제비꽃을 들고 노란색 종이비행기에 순백색 옷을 입은 소녀가 앉아 있다. 얼굴이 없는 대신 눈물이 맺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을 큰 고통과 아픔이었기에 감히 그 감정을 함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배지 제작에 참여한 2학년 송인서 양(18)의 말이다.
보라색 제비꽃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이고, 노란 종이비행기는 인권과 평화, 소망을 뜻한다.
위안부 배지는 근영여고 사회 시사 동아리 ‘내누리’의 작품이다. 내누리는 1~2학년 회원 10명이 지난 3월 결성했다. ‘내 작은 행동과 실천이 온누리를 변화시킨다’는 뜻에서 동아리 이름을 내누리로 정했다.
내누리는 초창기에는 최저임금과 대학 입시, 성 소수자를 토론 주제로 다뤘다. 월·수·금 점심시간을 빌어 동아리 활동을 하지만, 카카오톡에서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내누리 기장 최 양은 “위안부 배지는 내누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라면서 “위안부를 주제로 토론하다 배지를 제작 판매한 수익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기부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배지는 디자인부터 제작 업체 선정까지 순수 학생 주도로 탄생했다. 회원들이 각각 2만5000원씩을 내 총 25만 원을 모았고, 배지 100개를 제작했다.
2500원짜리 배지는 페이스북 등 온 오프라인에서 4000원에 팔리지만, 현재는 품절이다.
학생들은 판매 수익금을 위안부 관련단체에 기부하는 한편, 추가 물량을 확보할 예정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들은 기자의 우문(愚問)을 한 줄 현답(賢答)으로 받아냈다.
“화해치유재단이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는 정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뺀 정부 중심의 위안부 합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 뒤 2016년 7월 여성가족부 소관의 재단법인으로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했다.
현재까지 생존자 34명에게 1억 원씩, 유가족 58명에게 2천만 원씩 지급했지만, 이후 피해자들의 반발로 사업을 중단했다.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 점검반은 “재단이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졸속으로 설립됐고, 피해자들에게 지원금 현금 수령을 종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이사진 11명 가운데 민간인 8명이 전원 사퇴하면서 재단의 기능이 중단된 상태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2) 할머니는 지난 3일 서울 시내에서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근영여고 과학실 한쪽에는 작은 소녀상이 보였다. 지난 2016년 이 학교 학생 동아리가 만든 것인데, 학내 소녀상 건립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근영여고 학생회는 조만간 학생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이 소녀상의 자리를 정할 계획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걱정하던 소녀들은 이번엔 ‘유기 동물’을 주목하고 있다.
최 양은 “유기 동물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누리 지도교사인 전주 근영여고 임진모 창의적체험활동부장은 “최 양처럼 혹은 내누리처럼 근영여고는 과거부터 역사 바로잡기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보고 있는 역사가 부끄럽지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