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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39) 12장 무신(武神) 15

계백은 달솔 품위로 임명되고 나서 왜국 백제방의 제 2인자가 되었다. 달솔은 백제 16개 관등 중 2품으로 좌평 다음이다. 동, 서, 남, 북, 중 5개 방의 방령(方領)을 맡거나 중앙관서인 내관(內官) 12부와 외관(外官) 10부의 장(長)이 달솔 관등이다. 또한 본국(本國) 외의 영토인 22개 담로의 태수도 대부분 달솔 관등인 것이다. 왜국의 백제방은 특별한 경우여서 왕자를 보내 왜왕과 함께 통치한다. 고노 영지의 분란을 수습하고 돌아온 계백이 먼저 백제방으로 찾아가 풍왕자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잘했다.”

보고를 들은 풍이 칭찬부터 했다.

“내가 여왕께 보고드리고 소가 섭정을 불러 영지를 네 앞으로 정리하겠다.”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소실이 하나 더 늘었구나. 양자도 한 명 얻었고.”

“예, 전하.”

“씨를 뿌려서 곡식을 얻는 법인데 그대는 남이 뿌린 곡식을 창고에 쌓기만 하려느냐?”

“전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남이 거둔 곡식도 제 손에서 잘 자라면 제 곡식이 됩니다.”

“고노의 자식이니 왜인(倭人)이겠지만 씨가 좋으면 좋은 종자가 되겠지.”

“잘 기르지요.”

“왜국의 지도층이 모두 백제계이지만 왜인의 균형도 필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신라가 자주 당(唐)에 걸사표를 보내 당군(唐軍)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풍이 화제를 바꾸었다. 백제방의 첩 안에는 중신(重臣) 10여명이 둘러 앉았지만 대화는 풍과 계백이 나누고 있다. 풍이 말을 이었다.

“지난번 김춘추,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이용하여 여왕을 시해한 후부터 신라인의 민심(民心)이 김씨 왕가(王家)를 떠났기 때문이다.”

“김춘추에 대한 민심이 나쁜 것입니까?”

“바로 그렇다.”

정색한 풍이 계백을 보았다.

“김춘추 그 자는 당(唐)의 신하가 되겠다고 진즉부터 당왕(唐王)에게 약속을 했지 않느냐? 제 아들을 당왕의 시종으로 보내고 신라 관원에게 당의 관복을 입히고 신라가 당의 속국이 아니라 1개 주(州)로 인정 받기를 바라는 놈이다.”

신라의 사직을 지킨다는 명분이나 그것은 김춘추 자신의 욕심일 뿐이다. 백제의 왕 의자나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대륙으로 진출하여 천하(天下)를 제패하려는 것과는 반대다. 신라가 반도의 구석에 박혀 밖으로 뛰쳐나갈 길이 막혀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때 풍이 불쑥 물었다.

“달솔, 네 영지가 얼마나 되었느냐?”

“예, 이번 고노의 3만8천석까지 38만3천석으로 늘어났습니다.”

“소가 가문의 영지를 합하면 두 부자(父子)가 200만석 가깝게 된다.”

풍이 말을 이었다.

“50석당 군사 1인을 모은다고 해도 4만명이야. 전시(戰時)에는 3명도 모을 수 있으니 10만이 넘는 군사가 된다.”

“전하, 소가 가문이 백제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권력욕은 절제하기가 어렵다.”

정색한 풍이 계백을 보았다.

“수천년 역사에서 상대를 믿었던 왕국이 꼭 망했다. 그리고 그 망한 왕국은 패륜과 무능, 압제로 매도당했다. 너도 그것을 명심해야 된다.”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승자가 정의다.

장민호기자 ledzep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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