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화청과 윤진, 백용문은 계백을 따라 본토에서 바다를 건너 백제 담로인 왜국으로 건너온 후에 왜국 영주가 되었다. 계백이 영지를 나눠준 것이다. 물론 ‘계백령’이라 불리는 계백의 영지 안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계백의 신하다. 그러나 각각 10여만 석의 영지를 통치하고 영지 안 주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터라 왕(王)이나 같다. 또한 전(前) 영주의 소실이나 이리저리 인연을 잡아 내실에 처첩을 둘씩, 셋씩 거느렸고 시녀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딴 세상을 사는 중이다. 그 계백의 원래 측근 셋이 미사코성에 모였다. 계백이 부른 것이다. ‘미사코성’은 ‘계백령’의 중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동정(東征)하면서 거성(居城)을 여러 번 옮긴 터라 계백의 처첩은 모두 동쪽 토요야마 성으로 옮겨갔다. 미사코성의 미사코만 예외다.
“그대는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구나.”
계백의 앞쪽에 앉은 화청에게 말했더니 청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윤진과 백용문이 웃은 것이다. 물론 화청은 안 웃었다. 대신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이러다가 오래 못 살 것입니다.”
화청이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고 밤에 젊은 여자에게 원기를 빼앗기는 생활을 하면 그 죗값을 받습니다.”
“이젠 그럴 때도 되었지 않나?”
“이렇게 살았다면 30년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나솔, 자책할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왔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한(限)을 품은 채 다음날을 기다리며 살았으니 이렇게 견딘 것입니다.”
고개를 든 화청이 계백을 보았다.
“달솔, 고향으로 돌아가 육신을 눕히고 싶습니다.”
“누가 있다고 그러는가?”
“다 흙이 되어 있으니 저도 같은 땅의 흙이 되려고 그럽니다.”
화청의 고향은 대륙의 태원이다. 수(隋)나라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였던 화청은 이연이 아들 이세민의 설득을 받고 반란을 일으키자 수 양제에게 보고를 했지만 발각되어 가족이 몰사를 당했다. 그 후로 화청은 몸을 피해 도망을 쳤고 이연은 승승장구, 마침내 당(唐)을 세운 것이다. 그것이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이제 화청은 63세, 백발로 덮인 노장(老將) 모습으로 바다 건너 왜국의 영주가 되어 대륙을 그리고 있다.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지.”
계백의 말에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치를 깔고 앉은 미랑이란 요물도 마찬가지지요.”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그때 윤진이 입을 열었다.
“주군, 곧 당군(唐軍)이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이다.”
정색한 계백이 셋을 둘러보았다.
“이제 영지의 기반이 굳어졌을 테니 정병을 길러 만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셋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따르겠다는 표시를 했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대군(大軍)을 수송할 수 있는 대선단을 만들 테다. 이것은 풍왕자께서도 허락하셨다.”
그때 윤진이 물었다.
“대군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본국으로 데려갈 병력은 기마군 2만, 말이 5만필이다.”
계백이 바로 대답했다.
“양곡은 반년분을 싣고 간다.”
“사역병, 잡병, 기타 부속병까지 5천은 더 있어야 될 것이고 마차나 진막, 자재까지 준비해야 됩니다.”
모두 원정군 경험이 있는 터라 화청이 말을 잇는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윤진을 보았다.
“원정군 준비는 나솔 윤진이 맡고 기한은 년으로 한다. 모두 적극 협력하도록.”
아직 당군(唐軍)의 병력, 출동 일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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