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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고창 봉덕리 무덤 출토 금동장식 신발

고창 아산면 봉덕리 무덤군에는 길이 72미터, 높이 8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무덤이 하나 있다. 전통적인 마한 양식의 무덤과 백제의 돌방무덤이 함께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5세기 중반 고창 지역 최상위 계층의 무덤이었으리라 짐작된다. 2009년 확인된 4호 구덩식 돌방무덤 안에는 금동장식 신발과 중국제 청자, 작은 단지 장식 구멍항아리, 청동잔과 잔받침, 칠기 화살통, 큰칼, 금귀걸이 등 무덤 주인의 권세를 말해주는 각종 고급품과 사치품이 고스란히 출토되었다.

이 중 금동장식 신발은 당시의 장례 풍습을 잘 보여주는 부장품으로, 우리나라 삼국 모두에서 유행하였다. 화려한 장식과 실제 사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내구성이 약해서 무덤에 넣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백제지역에서는 현재의 경기 화성, 강원 원주, 충남 공주·서산, 세종, 전북 익산, 전남 나주·고흥 등지에서도 발견되었다. 이곳들은 당시 백제 중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덕리 출토품은 바닥에 18개의 작은 금동 못과 함께 발등과 뒤꿈치를 2개의 옆판으로 연결하는 등 백제 금동장식 신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옆면은 거북이등껍질 무늬 안에 용과 새 등을 새겼는데, 당시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빈 공간 사이에 새겨 넣은 사람 얼굴 모양에서 백제인의 해학을 엿볼 수 있다. 신발의 형태는 나주 정촌에서 나온 것과 유사하고, 서산 부장리에서 출토된 금동 관모와 무늬가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수준 높은 금속 공예품은 숙련된 장인 집단이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백제 중앙에서 만들어 각 지역으로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지배집단은 금동장식 신발 외에도 금동관, 금은장식 둥근 고리 큰칼 등을 제작하여 지방 유력자들에게 선물하였다. 이것은 유력자들의 권위를 인정해줌과 동시에 그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정치적 수단 중 하나였다. 봉덕리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신발과 여러 유물들은 고창지역 집단이 마한을 비롯하여 백제 중앙, 일본, 중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맺으며 성장하였던 명실상부한 지역사회의 중심세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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