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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고문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작년에 코스모스 졸업을 한 큰 아들이 아직도 정규직 취업을 못하고 계약직, 인턴을 전전하고 있어서 영 마음이 짠하다. 그 아들이 그렇다고 목표 없이 허송세월 하거나 현실에 안주해 소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보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고, 또한 그 일을 맡기에 적합한 업무능력을 갖추기 위해 코피를 쏟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서 딱히 그를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올 연말까지는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 동안 취업이 어렵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어 왔지만 요즘처럼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도 ‘먹고 살기 힘들고 할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말은 다들 입에 달고 살았었다. 오죽하면 단군이래 ‘요즘처럼 살기 힘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말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온다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 들어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급기야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비록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심리적으로 더 몰리는 상황이 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 대학생인 둘째 아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취업이 어려운 것은 나라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청년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거나,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조금 더 최선을 다하면 취직할 수 있잖아. 별로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환경 탓만 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건 현실을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우리 친구들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요. 노력을 안 하거나 눈 높이를 안 낮춰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아빠 때처럼 경제 확장기에 쉽게 취직하던 시기와는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구요”

아들의 이러한 반응이 필자는 꽤 불편했던데다 마치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한 듯한 느낌도 있어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요즘도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뉴스에도 자주 나오잖아. 아무튼 잘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항상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 청년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이 정도의 훈계면 받아 들일만도 한데 둘째는 지지 않고 한마디 보탰었다.

“아빠, 저는 아빠 말씀 잘 새겨 들을 테니까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제발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걸 희망고문이라고 한다구요.”

희망고문? 잊고 있었던 이 단어를 생각게 하는 글을 최근 어느 지인이 보내줬다.

80년대 몹시 추운 겨울 날, 한 이등병이 언 손을 불어가면서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이를 지켜보던 마음 착한 소대장이 “박 이병,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 해!”라며 한마디 건넨다. 취사장에 갔지만 고참에게 ‘신병이 빠져도 한참 빠졌다’는 핀잔을 듣고 다시 돌아 와 하던 일을 계속하는 이등병을 이번에는 중대장이 보고는 “어이, 그러다 동상 걸리겠다. 취사장에서 뜨거운 물 갖다 해라”고 친절하게 얘기 해준다. 그래서 또 다시 취사장에 갔는데 고참에게 더 호된 꾸지람을 듣고 되돌아 와 서러움에 울먹이고 있던 차에, 마침 지나가던 호랑이 보급계 중사가 “야, 내가 세수 좀 하려고 하니 지금 취사장 가서 그 대야에 뜨거운 물 좀 가득 담아 와라”고 심부름까지 시킨다. 울컥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어찌 하랴? 군대인데… 이번엔 고참들이 선선히 뜨거운 물을 내줘서 대야 가득 담아 왔다. 그제서야 그 중사는 “박 이병, 그 물로 언 손 녹여가며 하거라. 양이 충분하진 않지만 동상은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아들이 맞다. 희망을 주되 고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설픈 훈계나 미사여구 대신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진심 어린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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