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논설고문
우리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사이가 좋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서로 간의 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이’라는 것은 한자로 ‘간(間)’이다. ‘사이(거리)’는 서로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사이가 좋다’라는 말은 ‘공간적으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서로가 틈도 없이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 등의 대상도 일정거리를 두고 볼 때 제대로 그 가치를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그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인간관계의 공간적 거리를 4가지 영역 별로 분류했다. 첫 번째가 45㎝ 이내의 ‘밀접 거리’이다 부모와 자식 간이나 연인 사이처럼 서로 사랑하고 밀착된 거리이다. 두 번째는 ‘개인 거리’이다. 45∼120㎝ 정도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가까운 친구나 지인등이 전통적으로 유지하는 소위 ‘사적인 공간’의 범주다. 세 번째는 120∼360㎝ 정도의 ‘사교 거리’이다. 인터뷰등 공식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 필요한 간격인 ‘사회적인 영역’이다. 네 번째는 360㎝ 가 넘는 ‘공중(公衆) 거리’다. 무대위 공연자와 관객들 처럼 떨어져 앉아 있는 그래서 서로 알지 못하는 거리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병원체인 바이러스의 경우 비말(飛沫)이 튀는 거리가 2m 정도로 접촉에 의한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거리두기’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방식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거나, 직장만을 오가는 패턴이 일상화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이웃에 확진자 발생을 알리는 재난문자가 울려대고, 아직도 그 끝을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보니 긴장과 두려움 속에 우울감이 높아진다는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 상황에서 최선의 방역대책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코 사회적으로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며칠 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표현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로 바꾸고, 이 단어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고, 단지 감염예방을 위해 물리적으로만 거리를 두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계속 소통하고 연결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정신건강 또한 신체건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