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가위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면
꼿꼿하게 버티던
검은 체온이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마치 목을 꺾는 동백처럼
대리석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엄지와 중지에 걸터앉은
시퍼렇게 날이 선 가윗날
날렵하다 못해 비상하는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다
이발사의 빛나는 가위 손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신들린 듯 굿판을 벌이고
주인을 떠난 머리카락은
주검이 되어 바람을 탄다
짐짓 고요가 허우적대면
하얀 가운이 가부좌를 틀고
혼백을 이별하는
늙은 이발사의 기도가 시작된다
==============================
△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늙은 이발사의 가윗날에 잘려 나간다. 학처럼 우아한 가위질은 검은 체온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 이발관에 손님이 끊기는 시간이면, 하얀 가운을 입은 채 고요 속에서 가부좌를 트는 늙은 이발사가 있다. 주검으로 돌아간 검은 체온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늙은 이발사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 기도를 게을리하는 지 이발관과 이발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김제김영 시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