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도 캠퍼스도 없지만 입학경쟁률·취업률 최고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 학습이 시행되면서 세계 많은 학교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생의 기초학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으며, 집에서 녹화된 내용을 시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자기관리 능력이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의 격차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온라인으로 운영되면서도 하버드대학보다 입학 경쟁률이 높고 졸업생의 취업이나 진학 결과도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뛰어나 주목을 받는 학교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미네르바 스쿨’이 바로 그 곳이다. 비록 캠퍼스는 없어도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교수들이 진행하는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미네르바 스쿨의 교과 과정과 수업 방식이 비대면 시대를 맞아 효과적인 교육의 길을 고민하는 한국 교육계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미네르바 스쿨, 세계 교육계가 주목
미국에서 하버드 대학보다 7배나 들어가기 힘든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강의실도 캠퍼스도 없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학비는 미국 사립대학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학교 출신들은 졸업 후 취업이나 상급학교 진학에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여 전세계 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미네르바 스쿨이다. 미네르바 스쿨은 미국 벤처사업가 출신 투자가 벤 넬슨이 투자를 받아 세운 미네르바 프로젝트라는 회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KGI대학원과 설립한 학교다. 미네르바 스쿨은 캠퍼스가 없고 기숙사만 있으며 학생들은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해 ‘포럼(Forum)’ 이라고 불리는 미네르바에서 개발한 능동적 학습과 평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업을 받는다. 학생들은 첫 1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업을 듣고 그 이후 3년 동안 세계 6개국에 위치한 도시에서 수업을 들으며 도중에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거나 정부기관 등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살아있는 교육을 경험한다.
2014년부터 입학생을 받은 미네르바 스쿨은 2020년 가을학기 전형에 전세계 180개 국에서 2만5000명이 지원해 이 중 200명 만이 합격했다. 0.8%의 합격율였다. 이를 하버드 대학의 2020년 합격률 5.6%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운지 쉽게 알 수 있다. 학비는 기숙사 비용 포함해 1년에 3만불 수준으로 기존 아이비리그 대학의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미네르바의 철학을 지지하는 기업이나 독지가들로부터 기부금을 확보해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도 지원한다.
2018년부터 배출된 졸업생들은 박사과정에 진학하거나 기업으로 취업했으며, 일부는 스타트업 회사를 세우기도 했는데 아이비리그 대학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 온라인 교육플랫폼 ‘포럼’
미네르바 스쿨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온라인 교육플랫폼 ‘포럼’에서 기인했다. ‘포럼’은 녹화된 강의를 온라인으로 제공해 수동적 학습방식이라 지적을 받는 한국의 비대면 교육방식과는큰 차이가 있는 미네르바 스쿨의 고유 교육시스템이다.
‘포럼’은 2012년부터 개발돼 2014년부터 사용됐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보완과 개선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포럼은 학생들의 능동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수업 플랫폼인 동시에 학생들의 발표와 대화 내용이 녹화된 것을 수업 후 교수가 다시 검토해 추가 의견을 제공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해주는 평가 플랫폼이기도 하다.
포럼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생 모두가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수강 학생 수는 20명 미만으로 제한된다. 수업 진행은 교수가 강의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울 내용을 예습해서 수업 시간에 토론과 발표를 통해 진행하는 세미나 방식이다. 교수의 주된 역할은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수업 중에 토론에 빠짐없이 참가하도록 독려해 그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수업 중에 학생들이 소그룹으로 나뉘어 ‘브레이크아웃’이라는 토론 시간을 갖게 한 후 논의된 내용을 그룹별로 발표하도록 시키기도 한다.
포럼 프로그램은 수업 중 학생 개개인의 발표 빈도와 길이를 실시간 체크해 참여가 높은 학생과 저조한 학생이 교수의 모니터에 색깔로 구분돼 표시해주므로 교수가 발표를 많이 하지 않는 학생을 바로 파악해 그 학생에게 질문해 참여를 유도할 수 있게 해준다.
교수는 수업 중 학생들의 토론 참여와 퀴즈 점수, 그리고 녹화된 학생의 수업 참여 내용에 대한 교수의 리뷰를 종합해 수업을 진행한 당일에 바로 그 수업에 대한 평가 점수를 제공한다. 이렇게 매 수업에 대한 평가 점수와 추가로 제출하는 과제물에 대한 평가를 취합해 전체 평가를 하므로 별도의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가 따로 없다. 시험 점수는 높게 받을 수 있어도 학습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벼락치기 공부가 미네르바에서는 통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 스쿨 아시아담당 이사인 켄 로스 씨는 “포럼은 능동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인 부분이고 미네르바의 성공적인 교육의 바탕에는 비판적이며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협동적 인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미네르바 스쿨의 철학에 따라 만들어진 통합적 교육을 추구하는 교육 과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 독특한 학습문화 이끄는 기숙사
올해 미네르바 스쿨에 입학한 3명의 한국인 중 한 명인 임하영 학생(1학년)은 한국에서 초·중·고를 모두 홈스쿨링으로 마쳤다. 그는 엄청난 양의 수업 준비와 과제물 제출에 집중해야 해서 입학 후 하루도 쉬지 못하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이틀을 쉬면서 기숙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처음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임 씨는 “수업은 한 시간 반짜리 온라인 수업에서 학습하는 양이 오프라인에서 세 시간 강의를 들은 것과 비슷하게 느낄 정도이다”며 “수업은 분 단위로 계획되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수업 시작과 끝에 퀴즈를 보므로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네르바 스쿨의 기숙사 제도에 대해 호평했다. 그는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데 왜 다른 학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는지 의아해 했으나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친구들이랑 대화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워낙 탁월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서 자신이 부족한 점을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학기 초반에 첫 에세이 과제를 리투아니아에서 온 옆방 친구한테 봐달라고 했더니 구글 닥스로 만든 과제물에 대해 코멘트를 무려 50개나 남겨주어서 무척이나 고마웠다”고 말했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 각기 다른 배경과 특기를 가진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스로 공부하며 서로 가르쳐주는 미네르바 스쿨만의 독특한 학습 문화가 형성되는 곳이 바로 기숙사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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