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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슬럼가, 노후 영구임대단지] (상) 실태 - 슬럼가 전락… “현대판 고려장”

30년 된 전주 평화동 LH 영구임대 1650세대
쓰레기·악취, 취약계층도 기피… 빈집 늘어

 

30년 전 서민들의 ‘내집 꿈’을 이뤄줬던 영구임대아파트가 도시의 골칫거리가 돼 버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저소득층 주거마련을 위해 건립했지만, 노후된 시설·환경은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고립된 슬럼가로 전락한 전주 영구임대아파트단지의 실태와 과제를 짚는다.

/영구임대주택에 입주중인 저장강박증 어르신의 집
/영구임대주택에 입주중인 저장강박증 어르신의 집

“여기가 바로 노인과 정신질환자들을 몰아넣은 현대판 고려장 아닙니까.”

지난 27일 찾은 전주 평화동 영구임대아파트단지는 1990년대에 멈춰 있었다.

30년 된 15층규모 복도식 아파트에는 한줄에 8~12평짜리 주거공간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파트 앞에는 자동차대신 전동휠체어, 보조용 유모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기구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어르신과 장애인들이 대부분인 탓이다.

현관과 엘리베이터는 3~4년전 리모델링 한 게 무색할 정도로 팬 자국들이 선명했다. 손이 굳어 운전이 쉽지 않은 입주 어르신들이 전동휠체어로 들이받은 자국들이었다. 유모차에 몸을 의지한 70대 노인과 기자 2명, 관계자 2명이 탑승하자 엘리베이터 내부가 가득찼다. 1명은 결국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했다.

A동 12층에 거주하는 서모(63)씨의 현관문을 열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30년이 넘은 전주시 평화동 LH 영구임대단지가 노후된 시설로 취약계층마저 입주를 기피하면서 고립된 슬럼가로 전락해 가고 있는 상황속에 28일 한 입주민이 8평형의 작은 구조에서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30년이 넘은 전주시 평화동 LH 영구임대단지가 노후된 시설로 취약계층마저 입주를 기피하면서 고립된 슬럼가로 전락해 가고 있는 상황속에 28일 한 입주민이 8평형의 작은 구조에서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현관 앞 그물망에 싸인 조개더미에서는 썩은 물이 나와 까만 물자국을 냈다. 쓰레기와 옷은 뒤엉켜 있었다. 군데군데 손봐야 할 곳들이 방치되면서 집도, 주인도 더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낯선 방문에 짖어대는 반려견만이 적막을 깼다.

한때는 평화동 방범대장도 맡았던 어르신이었다. 임대아파트가 지어졌을 때부터 30년간 지내온 터줏대감인데, 병명이 뚜렷하지 않은 정신질환으로 서너 차례 입원생활을 하고 온 뒤로는 반려견과 칩거생활을 하고 있다.

B동 2층의 김모(72) 할머니는 심각한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었다. 방안쪽부터 화장실, 현관까지 물건이 가득 찼다. 쌀, 샴푸, 손소독제…. 주민센터와 복지관에서 받은 보급품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채 쌓여 있었다. 2년 전 자원봉사자들이 대청소를 했지만 코로나19 기간 김씨가 다시 쓰레기로 가득 채웠다.

집주인 어르신이 우편물과 관리금 납부고지서 등을 가져가지 않아 쌓여 있다. 층별로 쌓여있는 우편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집주인 어르신이 우편물과 관리금 납부고지서 등을 가져가지 않아 쌓여 있다. 층별로 쌓여있는 우편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취약계층에게 소중한 보금자리였던 평화동 영구임대주택단지가 30년간 주거 평면과 시설, 환경변화 없이 그대로 노후되면서 일대 동네까지 낙후지역으로 낙인찍는 슬럼가로 변했다.

1650세대 중 지난해 빈집이 160세대 이상 늘면서 예외적으로 일반인 전세도 모집하고 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평면과 면적 규모는 주거공간으로써 인기가 높지 않다.

평화동을 지역구로 둔 양영환 전주시의원은 “영구임대주택 입주대상자일지라도 어떻게든 이곳에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 어르신들 사이에선 인생의 막장, 종착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며 “시설이 노후돼 대부분 입주를 꺼려하다보니 정말 오갈 곳 없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분들이 입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이 관리되지 못하고 아파트에 방치되면서 다양한 지역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본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전주시 통합돌봄과는 28일 뒤늦게 평화동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돕는 케어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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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kbh768@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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