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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 - 이시은 소설집 ‘고래 365’

그들은 왜 교도소로 갔을까?

이시은 작가의 소설집은 핫하다. ‘핫하다’의 사전적 의미처럼 ‘매력이 넘치고, 섹시하고, 열정적’이다. ‘hot’한 문제적 인간들이 매 작품마다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같은 주제나 같은 인물로 작품을 잇달아 지은 연작소설처럼 읽힌다.

이시은 작가는 교도소 안 곳곳을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미셀 푸코는 ‘개인이 처벌받는 것은 법률 위반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회와 대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대 이후 교도소는 ‘이런 개인을 처벌하거나 교정하는 공간’이 되었다. 삭막한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도소는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작가는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 처벌받는 개인과 교정하는 개인의 길항을 그려 낸다.

<도어> 의 상습절도 전과자 ‘산들’은 모범적인 수용 생활로 사소 자리를 꿰찬다. ‘야무지고 눈치가 빠르고 입이 무거운’ 그녀는 ‘덜렁이’로 통하는 유니폼의 빈틈을 노려 ‘문어’와 쪽지로 통방한다. ‘문어’는 그녀에게 정치범 ‘5’가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만 찌르라고 한다. 그에 대한 보상은 ‘산들’이 남의 집을 털며 평생 꿈꾸어온 ‘집’이다.

<고래 365> 의 ‘나’는 식품위생법 위반, 같은 방의 ‘365번’은 보건위생법 위반으로 수감된다. ‘나’는 고래를 보러 갈 날을 앞당기기 위해 성실히 조리장으로 일한다. 그러나 출소는 요원해 보인다. 타투 일인자를 꿈꾸는 ‘365번’은 도구함 속의 칼을 양잿물 항아리에 깊이 숨겨 놓는다. 칼을 찾지 못한 담당은 문책을 당한다. 깊은 밤 ‘나’는 ‘365번’을 깨워 고래 문신을 부탁하고, ‘365번’은 장미 가시로 땀을 뜬 자리에 칼날로 선명하게 선을 그려나간다.

<층> 의 유니폼 ‘나’는 교도관이다. 교정교화를 신뢰하지 않는 나와 달리 ‘팀장’은 수감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유해화학물질 흡입으로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조진자’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진자’의 동거남이 사망하자, ‘팀장’은 도리를 앞세워 휴가를 건의하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종이라며 반대한다. ‘진자’의 귀휴는 ‘나’의 의견으로 불허된다. 순찰을 돌던 ‘나’는 ‘진자’에게 고무장갑으로 목이 졸린다.

<달팽이 행로> 에는 한때 연인이었으나 사형수와 사형집행인으로 만난 두 남자가 나온다. 사형제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랫동안 집행이 미뤄진 사형수들은 사형집행장이 설치된 곳으로 이송된다. ‘나’는 순번제에 의해 ‘석기’의 형 집행자가 된다. ‘나’와 헤어진 뒤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연쇄 살인자가 된 ‘석기’에게 ‘나’는 ‘석기’가 좋아하던 흰색 운동화를 선물한다. ‘석기’는 내게 편지를 남긴다. ‘운동화는 너무 깨끗해 신을 수 없었다. 운동화를 받는 순간 놀랍게도 내 모든 얽힌 감정들이 녹아내리더구나.’

그들은 왜 교도소로 갔을까?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핍진한 묘사로 복원한다. ‘고아로 마리아집에서 태어나 소녀원과 교도소, 갱생보호소를 거쳐 시립공동묘지에 묻히는’ 인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인생의 문’을 잘못 연 대가로 평생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연민한다.

미덕이 하나 더 있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 나무를 식재한다. 산수유나무 감나무 장미 소철 라일락 철쭉 층층나무 엄나무 굴참나무 왕버들 사이프러스……. 땅을 가리지 않는 식물들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해를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들처럼 담박하다. 어쩌면 그들은 문제적 인간이 아니라 문제를 해체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강렬하고 ‘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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