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석 세계잼버리 정부지원위원·전 전북대 총장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대학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전국의 360개가 넘는 대학 중 국립대는 43개에 달한다. 그 국립대를 이끄는 최고 수장이 총장이다. 국립대 총장은 장관급이다. 민선으로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국립대 총장의 위상이 격하되었지만, 여전히 정부 직제상으로는 도지사나 교육감이 차관급이니 전북에서는 전북대 총장의 지위가 제일 높은 셈이다.
국립대학교 총장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국립대 총장은 대학 구성원(교수, 교직원, 조교,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 후 교육부 장관의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무원이다. 정치인인 도지사나 교육감, 시장, 군수처럼 선거에 의해 당선되면 별도의 임용절차 없이 바로 취임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국립대 총장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으려면 반드시 청와대의 철저한 인사(도덕성)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인사검증에는 위법 부당한 일은 물론,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음주운전 등 도덕성 문제와 학문적 성과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래서 총장선거에 당선되었지만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총장 발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그렇기에 혹독한 청와대 인사검증을 통과한 사람에 대해서는 도덕성 시비를 걸기 어렵다. 나는 처음 총장이 될 때,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이른바 386 보좌관들의 엄격한 도덕성 검증을 통과했다. 그리고 4년 후 재선 때, 다시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통과한 바 있다.
일반인들은 이처럼 지위가 높고, 까다로운 청와대 인사 검증까지 거친 만큼 국립대 총장의 권한이 매우 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국립대 총장은 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처럼 조직을 장악하고 통솔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권한인 인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
국립대 행정직원의 경우, 5급 사무관 이상의 공무원승진은 교육부에서 전권을 행사하고 교수의 신규채용은 100% 각 학과에서 주관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립대 총장이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총장의 헌신과 희생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화합이다.
나는 취임 첫학기부터 임기 만료때까지 8년간 매년 두차례 14개 단과 대학을 순회하면서 교수들과 직접 대화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직원, 학생대표들과도 매년 두차례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대학 구성원과 정기적으로 소통의 장을 마련한 것은 당시로서는 대학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내외의 소통이 원활한 경우에는 그 조직이 발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조직이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총장 재임 기간동안 대학 구성원간의 긴밀하고 원활한 소통을 토대로 대학을 변화와 혁신으로 이끈 결과, 전북대가 ‘한국 대학혁신의 아이콘’으로 전국 대학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그에 따라 부산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학의 위상이 높아져 명문 국립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그 덕택에 나는 구성원으로부터 한 번도 어려운 총장에 연이어 두 번 선택 받았다. 실제로 전북대에서 직선으로 연임한 총장은 전무후무할 뿐만 아니라 전국 국립대에서도 매우 드문 예이다.
되돌아보면 국립대 총장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리이지, 군림하며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대 총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을 만나면 솔직히 억울한 심정이다. 큰 조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권력이나 권한이 아닌 리더의 소통과 헌신을 기반으로 한 구성원들의 의지와 열정이기 때문이다. /서거석 세계잼버리 정부지원위원·전 전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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