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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총 4회 공연 대본을 위해 6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 대표 명창, 명무, 명인 10명을 인터뷰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진행하는 두 가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 도중 사전 분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혼쭐나기도 했으며,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녹음자료나 메모한 내용을 혼자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곁에서 잠시나마 살펴본 선생님들의 삶은 곧 예술이었다. 자기 예술 앞에 타협은 없었다. 예술을 더 잘하기 위해서 매일 새로워지고자 했다.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성품이 좋을 것이었다. 정심정음(正心正音)이라는 말처럼 바른 마음이라야 바른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둘째는 오직 하나만 깊고 오래 할 것을 강조했다. 하나를 제대로 잘하지 않고서 다음은 없었다. 예술가(藝術家)의 집 가(家) 자처럼, 예술로 하나의 집을 이루지 않고서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의 예술은 죽을 때까지 운명이었다. 자신의 스승님은 악보를 정리하다 그대로 앉은 채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며 그런 스승 밑에서 배운 자신도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예술과 함께 하고자 했다. 아픈 것도 자신이 예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 병이 난 거라며, 자신의 예술을 운명으로 여겼다. 예술은 처음부터 좋았고, 50년, 60년이 지난 지금도 좋다고 했다. 좋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은 마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와 같았으며,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숫돌에 칼을 가는 장수와도 같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느낀 점 몇 가지를 두서없이 나열한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윗분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떠받들어 모시자는 맹목적인 찬양의 의미는 아니다. 자신을 피하기만 하고 늙은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잔소리로만 여기는 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젊어지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고,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우리는 윗사람의 말을 꼰대라는 거들먹거리는 말로 깎아내리지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책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유튜브를 통해 따라 배우면 되며, 윗사람의 말을 녹음했다가 나중에 살펴보면 된다. 그러니 현장에서, 만남에서 윗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연장에서 관객이 무대를 보지 않고, 공연을 찍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창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대가(大家)들의 언어는 두루 통했다. 창작이 둥둥 떠다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창작이 둥둥 떠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통에 대한, 역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과 역사에 대한 뿌리를 깊게 알고 나서야 비로소 창작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예술은 보통 사람들이 듣고 보았을 때 행복한 음악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선생님들의 삶에 스며들고자 노력하였으나,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공연은 끝났으며, 다음 공연을 잘 준비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무리하려다 문득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눈이 형형하게 빛났던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다. 그들은 배려에도 원칙이 있었고, 반대에도 관용이 있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온 예인의 삶만큼 그들의 세계는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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