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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의 한시(漢詩) 외교

서호련 (한국세무사회 국제협력위원)

 

지난 6월 8일 외교통상부 천영우 차관 (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베이징에서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외교부 부부장으로부터 송나라 소동파의 시가 담긴 액자 하나를 선물 받았다. 자신이 직접 종이에 써서 준 이 시는 소동파의 명저로 알려진 유후론(留侯論)에 담겨져 있다. 유후론은 한나라 개국공신인 유후 장량(長良 -기원전 168년)의 일화와 관련된 것이다.

 

天下有大勇者 세상에 큰 용기를 지닌 이는

 

卒然臨之而不驚 돌연 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으며

 

無故加之而不怒 억울하고 당혹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此基所挾持者甚大 그가 가슴에 품은 것이 매우 크고

 

而基志甚遠也 그 뜻은 매우 원대하다.

 

시의 주제가 인내와 자제를 강조하는 것이어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중국의 의중을 보여주는 고도의 심리외교라는 해석이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에 우리 정부의 편을 들어달라는 대북정책 공조 요청에 대하여 냉정과 절제를 강조하고 있었고 이 시 한편을 통하여 그들은 우리 정부에게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점잖게 한방을 먹인 셈이다.

 

'한나라 건국공신 유후 장량에 대해 논술함' 이라는 '유후론' 에서 소동파는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호걸이란 범인보다 뛰어난 면이 있기 마련이다( 高之所謂豪傑之士者 必有過人之節) 필부가 욕을 당하여 칼을 빼어 들고 싸우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人情有所不能忍者,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門, 此不足爲勇也,) 큰 용기를 가진 자는 급박한 일에 처하여도 놀라지 않고 이유 없이 욕을 당해도 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품은 포부가 크고 뜻이 심히 원대하기 때문이다.

 

진나라 말기에 장자방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필부와 같은 힘으로 진시황을 저격하려 하였다. 장자방이 세상을 덮을 만한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윤이나 강태공같이 지모를 쓰지 않고 형가나 섭정같이 자객행세를 했다가 위기에 처하였다. 황석공은 이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일부러 거만한 자세로 무례한 일을 시켰다. 다리 밑에 신발을 떨어뜨리고 주워 오게 하였던 것이다. 장량의 욱 하는 성질을 꺾어 주려 한 것이다. 한고조와 유방이 승리한 이유나 서초패왕 항우가 패한 이유는 바로 이 인내력의 유무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으로 일본을 제친 올해, 센카쿠에서 도발적인 태도로 군사대국의 패권적 모습을 들어 냈다. 천안함 사건에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웃 나라의 핵심적 가치를 무시하는데 주저 하지 않았고 북한을 감싸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로 한국고대사의 역사왜곡을 조직적으로 계속하고 있는 터이다. 세계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조만간 세계 최대의 패권국으로 부상 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우리를 비롯한 세계는 중국의 팽창에 두려움을 느낄만 하다.

 

세계의 지도국가는 경제력·군사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중국은 진실에 눈을 감는 폐쇄성,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편협함을 버리고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대국다운 정신적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대국으로 우뚝 섰다'는 이른바 '대국굴기'의 논란이 대내·외적으로 일고 있는 가운데 G20 정상회의에 그들이 어떠한 한시(漢詩) 카드를 들고 나올지 사뭇 궁금하다.

 

/ 서호련 (한국세무사회 국제협력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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