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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으로라도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이산가족 화상 상봉 시범 운영
김덕화 · 이제생 어르신 “어떤 경로로든 가족 만나고 싶어”

이산가족 화상상봉 시범 운영을 실시한 16일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에서 이산가족들이 화상 상봉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조현욱 기자
이산가족 화상상봉 시범 운영을 실시한 16일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에서 이산가족들이 화상 상봉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 조현욱 기자

“명절 때 가족이 가장 그리워요. 이북에 있는 가족들과 화상으로라도 만나고 싶습니다”

16일 전주시 덕진구 장동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지팡이를 짚은 김덕천(73) 어르신과 아내와 함께 온 이제생(84) 어르신은 적십자사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전북적십자사에 새로 설치된 이산가족 화상 상봉장으로 올라갔다. 두 어르신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족과의 생이별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했다. 남쪽에서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추석도, 설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 아픔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깊게 패인 주름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두 어르신의 얼굴은 한껏 상기돼 보였다. 이번 화상 상봉이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70여 년 전 이북에 놓고 온 가족을 조만간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6·25전쟁 당시 고향인 황해도 은율에 2명의 누님을 놓고 왔다는 김덕천 어르신은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김 어르신은 “3살배기이던 전쟁 통 속에 어머니 등에 업혀 군산항으로 가는 피난선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시절이라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인기척에 잠에서 깬 누님들이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나도 데려가’라며 눈물 흘렸던 모습은 또렷이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치맛자락을 붙잡던 누님들의 손길을 뿌리친 것을 천추의 한으로 간직하고 계셨다”면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고향 땅에 있을 누님들을 화상으로라도 꼭 만나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남쪽으로 걸어 내려왔다는 이제생 어르신은 북에 있을 누님과 동생이 사무치듯 그립다고 말했다.

이 어르신은 “전쟁이 터지고 미군의 포격 때문에 집이 만신창이가 돼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며 “13살 홀로 피난길에 오른 뒤 지금까지 가족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깡통을 차면서 구걸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84살이 됐다”며 “눈 감기 전에 아직 이북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누님과 동생들이라도 어떤 경로로든 꼭 만나 그동안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각 지역의 이산가족을 초청해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 설치된 화상 상봉장과 전주·홍성·의정부 등 3개 지역의 화상 상봉장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화상 면담을 진행했다. 올해 8월 기준 전북에는 812명의 이산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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