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기증.’
수준급이면서 다양한 예술품의 대량 기증은 유례가 없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만1,693점과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을 아무런 조건 없는 기증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기에 활동한 대표작가 34명의 50여 점을 선정,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크게 세 주제로 분류된다. 처음은 ‘수용과 변화’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면서 미술계도 변화하며 유화가 등장한다. 최초로 서양화를 전공한 전설적 여성화가 나혜석의 ‘화령전작약’은 빨강과 초록색의 대비와 속도감 있는 필치가 인상적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우아하게 그린 김은호의 ‘간성(看星)’도 눈에 띈다. 근대미술의 대표적 여성화가 박래현의 ‘여인’ 또한 놓칠 수 없는 명작이다.
두 번째 주제는 ‘개성의 발현’으로,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은 곧바로 전쟁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지만 작가들은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내놓는다. 근현대 동양화의 대표적 작가 운보 김기창의 ‘군마도(群馬圖)’는 역동감이 압도적이다. 한국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파스텔톤 배경으로 백자항아리, 항아리를 이거나 안은 반라의 여인들을 장식미가 뛰어나게 그린 명작 중 명작으로 전시장 한 면을 빛내고 있다. 이중섭의 ‘황소’와 ‘흰 소’가 나란히 걸려있다. 이중섭에게 소는 한국의 상징으로, ‘황소’는 머리를 부각했고 ‘흰 소’는 자신을 표현한 듯 지친 전신을 그렸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은 소박한 정취가 남다르다. 산을 모티브로 한 유영국의 ‘작품(1972년)’은 그가 주로 그렸던 다른 산처럼 여전히 모던하다. 모던한 작품으로는 장욱진을 빼놓을 수 없다. 장욱진의 ‘새와 아이’는 아이가 새 등에 올라탄 상상 속의 그림으로 동그란 머리, 네모난 몸과 다리는 선으로만 추상화한 걸작이다.
세 번째 주제는 ‘정착과 모색’으로 작가들이 해외 유학을 가거나 꾸준히 새로운 모색을 하면서 정착을 하게 된다. 이성자, 이응노, 남관, 권옥연 등은 국내외에서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현한다.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은 노랑과 초록, 보라를 배색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매혹적인 여인상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화려한 슬픔’, ‘비타협적인 고고함’으로 표현된다.
한 공간에서 근현대 한국미술을 볼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중에서도 나혜석의 작품, 김기창의 ‘군마도’,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해학과 풍류가 넘치는 작품들, 천경자의 신비로운 작품 등은 뇌리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듯하다. 이건희 회장의 작품수집 원칙은 ‘작가의 대표작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산다’로, ‘세기의 기증’은 유족들이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키우고자 한 고인의 의지를 이어간 ‘예술적 국격’을 드높이는 역사이다.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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