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06:26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수필
일반기사

띠풀 - 김재희

김재희 수필가
김재희 수필가

평소 다니던 산책로가 엉망이다. 도로 공사를 위해 길을 막아서 돌아다녀야 한다. 늘 다니던 길이었는데 아쉽다. 어느 땐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그 길로 들어섰다가 되돌아 나오곤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니 자연히 그 길은 멀어지고 이제 새로운 코스가 길이 되어 버렸지만 옛길이 그리워 근처를 서성거리기도 한다. 문득 맹자의 '盡心章句'가 생각난다.

‘孟子謂高子曰/山經之蹊間/介然用之而成路/爲間不用/則茅塞之矣/今茅塞子之心矣’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산길이라도 사용하면 길이 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띠 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다. 지금 그대의 마음을 띠 풀이 꽉 막고 있구나. 사람의 본성도 마찬가지여서 수양하지 않으면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현하기 쉽지 않은 글귀다. 누군들 이 사실을 알지만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오래된 일이다. 평소 상당히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그와는 마음 내키면 아무 때나 드라이브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거리낌 없이 속내를 보이던 사이였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르다면 그는 농담을 좋아하고 나는 농담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 농담이고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심처럼 받아들이는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하는 농담을 별생각 없이 받아넘겼다. 그런데 그는 본인이 한 말은 농담으로 생각하면서 내 말은 진담으로 알아듣고 마음이 무척 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연락을 취했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와 결별을 작심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뭐라 변명조차 하기 싫어 그 길로 소식을 끊어버렸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른 뒤 정 반대의 일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정말이지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척 마음 상한 일을 당했다. 그러나 그만한 일로 정을 끊어 버린다면 내 곁에 남을 친구는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외톨이가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우선 내 마음의 상처가 가실 때까지는 자주 마주치지 말자는 생각에 되도록이면 오래 대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래서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예전처럼 가까운 관계로 회복이 되었다.

어느 친구와는 그야말로 띠풀로 막힌 길이 되어 버렸고 다른 친구와는 그런 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기를 넘겼다. 진작 그랬더라면 그 어떤 친구도 띠풀로 키웠을지 모른다. 가끔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좀 더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이다. 인생 공부는 왜 꼭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인지? 하긴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내가 조금은 성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부딪치고 꺾이면서 생긴 상처들을 안고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치받고 일어날 때 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고, 극에서 극을 넘나드는 감정의 변화가 때론 삶의 무게를 높여 주기도 했다. 생각이 단순하지 못하다는 것은 맑은 성격이 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삶의 굴곡을 들여다본 경험으로 세상을 깊게 보는 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 친구와의 결별이 오히려 내 삶의 길을 올곧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 지침서가 된 듯싶다. 내 본성을 잃어버리거나 어긋나는 일 없이 잘 비껴갈 능력을 키워 준 것이리라.

이렇듯, 한 번 겪은 띠풀의 경험이 있었기에 내 안에는 다시 그런 띠풀을 다시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재희 수필가

 

김재희 수필가

전북일보 신춘문예에서 '장승'으로 당선했으며 '수필과 비평'에서 등단했다.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