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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유통기한

전현아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
전현아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

용돈을 받지 않는 대학생에겐 8000원에 250g인 그릭 요거트는 결코 저렴한 음식이 아니다. 특히 형제가 많은 집에선 말이다. 그 많은 경쟁자 속에서 지켜낸 요구르트를 아껴 먹기 위해서 ‘오늘 참고 내일 많이 먹어야지.’라고 생각한 뒤, 냉장고 문을 닫아 버린다. 황금 시간을 놓친 아끼던 요구르트는 그렇게 유통기한이 지난 썩은 음식으로 바뀌고 만다.

음식과 표현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상황과 어울리는 음식을 먹는 듯, 말도 상황과 어울리는 말이 필요하다. 상황뿐이겠는가. 봄이면 향긋한 쑥국과 두릅을 먹어줘야 하는 듯이 시기에 따라 상대에게 건네는 말이 다르고, ‘돼지고기’라는 재료를 굽고, 삶고, 소스를 뿌리고, 훈연하는 등 조리과정에 따라 다른 음식이 되는 듯, 한 어간이 다양한 어미를 만나면 다른 뜻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7살의 나는 표현이 풍부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 다닌 나는 소위 말하는 골목대장이었다. 모르는 친구들이 놀이터에 놀고 있으면 그들이 몇 살 이건 이름이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고 "같이 놀자"를 남발했다. 그렇게 모두와 어울려 놀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작은언니가 말했다. “넌 왜 모르는 애들이랑 놀아?” 어른이 아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우리 언니들이 전부일 세상에 살 땐 나의 동경의 대상은 우리 언니들이었다. 언니가 입고 먹고 하는 것은 뭐든 멋져 보였다. 언니들에겐 나보다 사춘기가 먼저 왔고 그런 언니들을 보고자라는 ‘한’ 목소리 했던 나는 그렇게 표현이 줄어갔다.

좋아도 싫은 척. 싫어도 좋은 척. 그렇게 철저히 감추고 속였다. 내 속을 보여준다는 것은 멋지지 못한 행동, 유치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0년이 흐르니, 친구들에게 ‘고맙다.’,‘ 보고 싶다.’라는 말을 담백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의 삶은 피곤했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듯,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조별과제에서 발표해야 했고. 좋아하는 음식을 아끼다 썩혀버리는 듯,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심의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그렇게 내 고백은 유통기한이 지난 그릭 요거트 꼴이 됐다.

표현을 못 한다는 것은 꽤 많은 것과 연관되어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을 줄 아는 듯, 뭐든 경험자가 능숙한 법이다. 표현에 미숙한 사람은 받는 것에도 미숙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따뜻한 칭찬을 건네면 민망해진 나는 스스로 광대를 자처하며 나 자신을 갉아먹는 발언을 늘어놓곤 한다.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이 나인 걸 알면서도 ‘겸손’을 빙자한 ‘자기혐오’를 몸소 실천하는 쳇바퀴를 돌게 된다.

책상 정리를 하다 사진첩 추억으로 빠지는 일이 일상일 정도로 개인적으로 사진을 좋아하고 기록물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겐 과거는 ‘존재하는 것’이라 잠정적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생각 없이 본 글귀가 이 글을 쓰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했던 것이며, 현재만이 존재한다.’ (크루시포시)

눈꺼풀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제일 젊었던 나는 없어지고, 현재의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을 쏟아 내자.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이불킥을 하며 이렇고 저렇고 할 것이 아니라. 불쾌하면 빨간색,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홍색, 슬프면 파란색, 약간의 까탈은 초록색 등으로 변하는 무지개로 살아보자.

/전현아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

 

전현아 학생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에 재학 중이며, 우석대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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