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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작가 - 이근영 '심폐소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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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심폐소생술>/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반성문을 마지막으로 쓴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교문에서 복장단속을 하던 선생님께서 내 두발 상태를 지적했다. 선도부원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눈썹과 귀를 넘어선 머리카락을 무쇠 가위로 댕강 잘랐다. 삐죽 솟는 까치머리를 꾹 누르고 선무당 가위질하듯 머리카락을 잘랐으니 헤어스타일이 볼만했을 것이다. 종일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자주, 쓸어내렸을 것이다. 하교를 하며 죽마고우들을 꾀어 삭발을 했다. 남원 사람이었던 장수읍 양조장 위 현대 이발소 아저씨가 ‘아따! 야들이 이제 공부를 할랑갑다.’ 하며 머리카락을 말끔히 밀어주었다. 다음날 걱정하며 등교를 했으나 별문제가 없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칭찬까지 해주었다. 다만 여자친구들을 비롯해 어여쁜 후배 여학생들이 사모하던 옆집 총각이 출가라도 하는 것처럼 퍽 서러워했다. 교복이 승복 같아서 더 그랬을까. 우리는 곧바로 ‘핵인싸’가 되었다. 우리를 보기 위해 막 복도에 여학생들이 꽉 들어차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였다. 라고 기억하고 싶다. 다음날 동급생들이 죄다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덕분에 현대 이발소를 비롯해 은혜, 창동, 홍콩 이발소가 돈 좀 벌었을 것이다. 우리들 삭발에 친구들 삭발이 더해지니 집단행동으로 보였던가 보다. 본보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는 얼떨결에 집단행동의 주동자 되어 지금으로 말하면 학폭위원회 같은 것에 회부되었다. 수업에 들어가고 싶었으나(진·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며칠 동안 운동장에서 풀을 뽑았다. 비듬 같은 붉은 먼지가 학교 운동장에 자욱하게 날렸다. ‘홍진’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때 반성문도 많이 썼다. 반성 없는 반성문도 문장이라면 문장이니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봄부터 지금까지, 그전에도 반성문은 학생들만 쓰는 것으로 알았다. 요즘은 반성문 대신 명심보감을 쓴다는 데 그런 것들은 모두 나 같은 불량품만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 시절 선생님들이 사용했던 말처럼 티눈 같은 존재, 쥐젖 같은 놈들이라 불렸던 문제아들만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시인도, 어른도, 국어선생님도 반성문을 쓴다는 것을 이근영 시인의 시집 ‘심폐소생술’을 통해 알았다. 이런저런 껍데기 다 걷어내고 심층을 들여다보면 시들이 한결같이 반성문인데…… 배가 가라앉을 때를 대비해 심폐소생술을 익히라고 명령한, 혹은 현장체험학습과 관련된 26개의 공문서 작성을 요구한 관청 사람들, 졸업식 끝자락에 학위 수여증을 찢으며 열정, 희망 같은 것을 너무 일찍 내려놓은 청춘들, 사랑과 돈과 명예를 향한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삼류 아웃사이더들, 실내화를 대신해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어 꽃 같은 아이의 뺨을 후려갈겼던 선생 같은 것들,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대신해 혹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근영 시인이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집을 읽고 나서 알았다. 불량품으로 살아온 우리의 과거를 위해, 티눈으로 살아갈 다음 세대 몇몇 청춘들을 위해, 그래도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꽃잎 같은 것들을 위해 이근영 시인이 소주를 잉크 삼아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집을 읽고 나서 알았다. 

황지호 소설가는

전북 장수 출생으로,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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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호 #이근영 #심폐소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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