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산대 교내를 비롯해 인근 미룡동에 일제강점기 때 파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진지(인공동굴)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충분한 가치가 증명될 경우, 교육 및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군산대 공과대학 인근 등에서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무기고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 진지 6개가 발견됐다.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항공사진 자료상에 들머리가 포착된 곳까지 합치면 이 일대 동굴진지 수는 모두 7개에 달한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발견된 동굴진지는 입구부터 30여m가량 이어져 있으며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들 동굴진지는 일제강점기 말기 군산에 주둔했던 일본 160사단과 관련된 군사시설로 추정, 향후 정확한 사실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처럼 일제 수탈과 저항의 도시 군산에는 동굴진지 등 일제가 전쟁을 위해 만든 군사시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다만 동굴진지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무관심 속에 점차 훼손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다.
대표적인 곳이 2009년 옥구읍 옥정리 할미산(석갈산) 중턱에서 발견된 진지(토치카) 2곳과 일본군이 중대본부로 사용한 벙커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지어진 진지와 산 속에 굴을 파 만든 벙커들은 일본군이 1934년 지은 군산비행장(현 미공군비행장) 내 주둔한 육군항공대를 방어하고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한 이른바 ‘결 7호 작전’에 따라 1945년 3월 옥정리에 주둔한 일본군 1개 중대가 구축한 시설이다.
이곳 군사시설은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상 방치되면서 그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산대 인근 원당마을에도 과거 수 십 개에 달하는 동굴진지 및 벙커 등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당마을에 만들어진 벙커는 해방 후 6·25전쟁 때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미제면 신촌리 64명 사망)’ 장소로 사용된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전언이다.
당시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용 쌀 반출의 전략적 요충지인 군산을 지키기 위해 지금의 군산대를 기준으로 옥정리·미룡동·산북동 일대에 광범위한 방어선을 구축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현재는 주변 개발이 이뤄지면서 동굴진지 등이 상당수 사라지고 2~3개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남아있는 군사시설을 발굴·복원해 후손들에게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관광과 연계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우민 시의원은 “지역 곳곳에 있는 동굴진지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이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검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기문 군산대 박물관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요한 현장인 만큼 문헌자료 수집과 주민들의 증언 등 객관적인 자료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향후 유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보존과 활용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