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창집' 저술한 유학자 김택술 애국 사상 재조명
정읍 8월의 역사인물에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이자 ‘후창집’을 저술한 유학자 김택술(1884-1954)이 선정됐다.
시에 따르면 7세에 수학을 시작해 사서삼경을 통달한 김택술은 1900년 성리학자 전우(田愚, 1841-1922)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의 대도를 배웠다.
1910년 일제 강점이후 망국의 한을 품어오던 중에 일제의 상사금을 거절했으며 큰아들을 일본인의 학교에 입학하게 하라는 일제의 강요를 단호히 뿌리쳤다.
1925년에 동문인 오진영이 스승의 유지를 무시하고 총독의 허가를 얻어 문집을 발간할 때, 선봉에 서서 질타하여 일제로부터 배일당(排日黨)으로 지목되고 전주 검사국에 여러 번 호출을 당했고, 무수한 고문을 당했다.
1930년경 단발령과 창씨개명령(創氏改名令)에 불응해 감시 대상이 됐으며, 일제가 주는 배급은 받지 않고 솔잎과 감자로 연명했다.
왜적을 타도할 기회를 엿본다는 뜻으로 불망실(不忘室)을 건립해 고절(高節)을 수립하고, 후학의 교육에 힘썼다.
김택술이 죽은 뒤 1964년에 문인과 유림들은 그의 도덕을 기념하기 위해 이평면 창동리에 창동서원을 건립해 향사했으며, 이 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됐다. 김택술의 저서로는 ‘후창집(後滄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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