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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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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요즘 전주 덕진 종합경기장을 지나다 보면 야구장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12월 석면 해체를 시작으로 폐기물 처리까지 완료됨에 따라 시설물 허물기 공사가 본격화된 것이다. 우범기 시장도 12일 현장을 방문해 이곳에 문화예술 도시 전주의 새로운 명소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상반기 철거를 끝내고 2026년까지 문화 거점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 이처럼 큰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6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야구장에 얽힌 추억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 다니던 학교와 같은 공간에 있었기에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필자에겐 애틋함이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반백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제집처럼 드나들던 야구장 에피소드와 함께 그때 그 여운이 짙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 도민들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뭐니뭐니해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프로야구 경기다.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던 해태 경기 때는 야구팬들로 경기장 안팎이 북새통을 이뤘다. 박진감 있는 경기 못지않게 장외에선 파울볼 줍기 등 볼거리도 다양했다. 80년대 초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던 때라 야구를 통한 전북인의 애향심도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당시 억눌려 지냈던 전두환 군부독재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함께 민주화 열망이 야구장 응원가를 부르며 폭발하기도 했다. 더욱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공유한 때문인지 해태타이거즈 경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전국 각지 야구팬의 인기를 독차지하며 호남인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파도타기 응원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관중들도 그날만큼은 해방감을 만끽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야구장을 포함한 종합경기장 개발을 둘러싸고 10여 년간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송하진 시장이 롯데쇼핑과의 개발계획을 발표한 뒤 극심한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며 원점에서 맴돌았다. 소상공인 보호 명분으로 개발 계획을 백지화했던 김승수 시장은 논란에 기름을 부으며 소모적 논쟁만 불러왔다. 핵심 현안에도 불구하고 답보 상태에 머물던 이 사업은 우범기 시장이 칼을 빼들면서 요동쳤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치로 전주 대개혁을 선언한 그는 이런 기조에 따라 종합경기장 개발도 구체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시민들은 물론 지역 여론도 우호적으로 반응하며 오히려 개발 규제 완화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구장은 곧 사라지겠지만 빛바랜 추억은 오롯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야구장을 대신해 들어서는 문화 공간을 통해 또 다른 예술적 가치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사통팔달 도심 한복판에 있는 미술관에서 그림과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이를 통해 전주 시민으로서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오랜 세월 지역개발 난맥상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종합경기장이 거듭 태어나길 기대한다. 그래도 야구장에서 울려 퍼졌던 우렁찬 함성은 여전히 귓전에 맴돌고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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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개발 #문화공간 확보
김영곤 kyg@jj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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