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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정읍의 대명창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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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송흥록 생가/사진=한겨레음악대사전 제공

박만순은 순조 30년인 1830년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당시에는 고부군 수금리)에서 출생하여 철종, 고종 2대에 걸쳐 천하를 울린 명창으로 가왕 송흥록의 기능을 이어받은 직계 제자이며 이른바 조선 후기 명창인 이날치, 송우룡, 김세종, 장자백, 정창업, 정춘풍, 김찬업과 함께 여덟 명창으로 알려진 시대의 대명창이다.

박만순은 12세에 가왕 송흥록의 문하에 들어가 10여 년 동안 스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소리의 실제적 기예와 표현 수법을 익혔다. 학습 당시 박만순은 소리에만 매진하여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고 노숙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한 고초를 겪으며 소리를 연마할 때 스승의 권유로 임실의 어느 산중에 들어가 소리 공부를 하였는데 이때 폭포 아래에서 피를 토하고 하늘을 꿰뚫을듯한 성음의 성량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 후 박만순은 세상에 나와 전라감사의 부름을 받고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춘향가 중 ‘옥중가’를 불렀고 이를 들은 청중은 그를 가왕 송흥록에 버금가는 ‘대명창’이라 칭했다. 당시 광경을 본 양반가의 이석정(李石亭)은 “때는 5~6월 여름을 앞둔 시기인데 선화당까지의 거리가 수마장인 내 집 사랑채에서 들어도 달밤에 외치는 박명창의 목소리가 집 앞 시냇가에 툭툭 떨어지는 듯했다.”라 평하며 소리판의 광경을 상세히 알렸다. 1마장이란 5리나 10리가 못 되는 단위로 수마장이면 적어도 10리(4km) 이상의 거리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참으로 엄청난 성음의 성량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일화이다. 어느 날 박명창은 이날치, 장자백, 정창업 등 세 사람과 함께 소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천하의 8명창 중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치는 본래 줄타기의 명인이었지만 판소리로 전향한 사람으로 일찍이 박만순의 고수로 활동하다가 보성 강산리에 살던 박유전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배워 대성한 소리꾼이었고, 정창업은 그의 기예가 신에 접했다는 칭송을 받던 명창이었으며, 장자백은 소리면 소리, 인물이면 인물로 미남 명창이란 칭호를 받는 등 네 명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던 명창들이었다. 그 당시 소리판의 광경을 실제로 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박만순이 가장 월등한 절창이다. 성음은 양성이고 창조는 우조를 주장하며 그의 통성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듯했다.”라 논하며 최고의 소리로 박만순을 꼽았다.

박만순 명창은 키가 작은 몸매에 머리는 뒤통수의 뼈가 주먹만큼 밖으로 나와 생김새와 체구로는 볼품이 없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언어와 행동에는 기품이 넘쳐 여러 명창이 그의 앞에서는 함부로 소리를 논한 적 없다고 하니 그의 품격을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박만순은 1898년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특기로는 춘향가 중 ‘사랑가’, ‘옥중가’가 있으며 적벽가 중 ‘적벽대전’, ‘화용도’ 대목의 화려한 더늠은 후일 송만갑, 전도성, 정정렬 등 근대 명창들에게 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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