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작 여름의 초입인 6월 중순에 불과한데, 전 세계 곳곳에서 불볕더위와 같은 이상기후가 기승이다. 인도 북부에서는 단 3일간 50여 명의 온열질환 사망자가 나왔고, 미국 곳곳에선 수은 기둥이 50℃까지 치솟는 등 온 지구가 끓어오르는 듯하다.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이상기후가 발생하며 세계 각국은 대책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21년 필자가 대표발의한 '기후위기대응법안'을 비롯한 8건의 법안을 토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탄생했다.
이로써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이행 절차와 방법을 법에 명시하며 기후위기 대응에 책임을 다하는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농촌을 바라보고 있자면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지난 15일, 필자는 진안군 안천면을 찾았다. 이곳은 이달 10일 갑작스러운 대기불안정으로 인한 호우와 우박으로 도내에서 가장 큰 농작물 피해를 입은 곳이다. 15일 기준 접수된 도내 피해 현황은 총 151ha인데, 안천면에서만 54.3ha의 피해가 집계됐다. 두 눈으로 본 현장은 처참했고, 한 해 농사를 공친 농민들의 절규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올 한 해 5천 평 땅에 노지수박을 재배해 곧 수확을 앞두고 있던 노부부가 계셨다. 일손이 달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했는데 함께 열매 하나 따보지 못했다고 했다. 잘 익은 수박을 제값 받고 팔아 품삯 넉넉히 쥐어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면 좋았으련만, 여태 일한 몫만큼은 꼭 주겠노라 약속하고 다른 일터로 겨우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갑작스런 재해 피해에 대비해 농작물재해보험이 있지만 노지수박은 가입 품목조차 아니다. 노부부가 받을 수 있는 돈이라고는 농어업재해대책법으로 농지 300평당 24만 원씩 보장되는 농약값이 거의 전부다. 대체 언제 만들어진 법이길래 이 모양이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두 분 어르신 앞에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순 없었다.
2020년의 물난리를 돌이켜보자. 기록적인 강수량에 더해 댐 방류 등 인재(人災)의 성격까지 더해졌다. 수재민은 당장 몸 뉘일 집이 사라졌는데, 보상을 받으려면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치러야 할 판이었다. 이상기후는 다양한 형태로 빈도도 잦아졌고, 피해의 정도도 더 심화되고 있는데 당시의 법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필자는 수해 피해에 대해 소송이 아닌 환경분쟁조정제도를 통해 조금 더 빠르고 수월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텄다. 그간 1~200년 수준이던 국가하천의 설계빈도 역시 500년 수준까지 상향돼 더 큰 강수량도 견딜 수 있게 됐다.
작년 기준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49.9%, 대상 품목은 67종에 불과하다. 농업재해대책법을 통한 보상 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피해 면적이 50ha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발목을 잡는다. 이상(異常)이 일상(日常)이 될 기후위기의 시대에 걸맞은 새 법과 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앞서 지난 5월 냉해 피해 농가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며 정부에 제도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여태 달라진 것은 없다.
거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방식은 이제 안 된다. 게다가 기후위기는 산업화의 반작용이다. 급격한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압축성장 속에 농촌을 소외시켜 온 우리로선 농촌에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매해 잘 영근 곡식과 과일을 아낌없이 내주는 우리 농가에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안호영 국회의원(민주당 수석대변인∙완주진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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