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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쇼핑센터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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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철거된 것은 198911월이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동독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1961년 동베를린과 서방 3개국의 분할점령지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쌓은 40km의 길고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이다. 베를린 장벽이 철거된 이듬해 동독과 서독은 통일됐다.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변화가 몰려온 독일과 독일의 오래된 도시들을 주목했다. 베를린도 그 도시 중 하나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베를린을 특별히 주목했던 사람들이 있다. 분단되면서 방치됐던 동베를린의 빈 건물들을 찾아온 젊은 예술인들이었다.

이들 중 한 그룹이 동베를린의 ‘Mitte’ 거리에 폐허로 남아 있던 건물을 발견했다. 1907년 쇼핑센터로 지어졌으나 파산한 이후 다양하게 활용되다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관리하면서 프랑스 전쟁포로 수용소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1943년 연합군 공습으로 건물 대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아 훼손된 상태로 남아 있던 이 건물의 소유자는 연방정부. 이 일대는 재개발 대상 지역이어서 건물도 철거될 상황이었지만 예술가들이 들어오자 계획은 중단됐다. ‘스쾃(squat, 예술가들의 무단점거)’이 가져온 성과(?)였다. 예술가들의 빈집 점거는 불법이었으나 당시 독일 정부는 동베를린의 빈 건물을 작가들의 작업실로 내주는 일에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그즈음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뒤를 이어 베를린을 찾아온 것도 이 덕분이었다.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던 건물은 각국 작가들의 작업실로 바뀌었다. 이후 30여 년, 독일 현대미술의 한 축을 이끌어온 공간 타클레스가 그곳이다‘Mitte’ 거리에 흉물로 남아 있다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이 된 쇼핑센터(?)의 변신은 놀라웠다. 개방된 창작 공간은 자유롭고 다양한 실험실이 되어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거리도 활기를 찾았다.

스쾃이라는 낯선 영역의 예술운동이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고 기능하여 도시의 환경과 삶을 바꾸어낸 현장은 흥미롭다. 방치되어 있거나 폐허가 된 공간이 창조적인 공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심의 빈 공간이 주목받기 시작한 지 오래다. 도심의 빈 공간은 오래된 도시의 원도심 쇠퇴가 가져온 산물이지만 이제는 이 빈 공간들이 원도심의 공동화를 해결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새롭게 변신한 이들 공간이 의외의 기능을 부여하는 덕분이다. 숨죽이고 있던 거리가 활기를 찾고 주민들의 삶에 향기가 넘치는 현장을 마주하는 일은 즐겁다. 도시재생을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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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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