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0만 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에 전통문화와 무관한 외국 음식 패스트푸드 점포와 전동차 등이 난립하면서 정체성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한옥마을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전주시는 이들 업체의 입점을 제한하던 규제까지 폐지하면서 오히려 시가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시는 지난 7월 한옥마을의 허용 음식 품목과 전동차 대여업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전통문화구역 지구단위계획 변경 결정'을 고시했고 현재 시행되고 있다.
개정된 고시에 따라 전통음식만 판매할 수 있었던 한옥마을에서 일식·중식·양식 등 모든 음식의 판매가 가능해졌다. 또 한옥보전위원회의 심의를 통해서만 허용되던 전동차 대여업에 대한 입점 제한도 폐지됐다. 다만 시는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은 제한해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번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개정은 지나친 규제로 다소 정체돼 있던 한옥마을이 국제적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부여하고자 마련됐다"며 "지속 가능한 발전이 최우선인 만큼 한옥마을의 전통문화 보존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시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규제가 풀린 한옥마을의 모습은 전통과는 관련 없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가들이 가득해 이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한옥마을엔 '탕후루', '닭날개볶음밥' 등 외국 음식 점포가 난립해 주요 상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 전통 체험 공간은 찾는 이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다. 한옥마을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가 아닌 '가장 상업적인 도시'라는 비판도 지역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이미 한옥마을 거리를 점령한 전동차 및 전동바이크 역시 대여업 입점 제한이 폐지돼 이전보다 무분별하게 난립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고 실제 더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한 두 업체가 한옥마을에 둥지를 틀고 시작한 전동차 대여업은 최근에는 26개 업체가 400여 대 이상 운영할 만큼 성행하고 있다.
문제는 업체 대다수가 전동차 대여 과정에 운전면허나 안전모 유무를 확인하지 않으면서 불법 운행이 난무해 방문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015년 40대 남성이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다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숨진 사건에 이어 2017년에는 전동차가 행인 2명과 충돌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또 지난 6월에는 한옥마을 상가를 전동차가 돌진해 들이받는 등 관련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지만 행정의 규제는 닿지 않고 있다.
한옥마을사업소 관계자는 "가끔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왔을 때 직원이 현장에 나가 제재하곤 했지만 관련 조례가 폐지된 이후에는 어떠한 단속 및 계도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지자체가 전동차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선 안동시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안동시는 지난 202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에 전동차 불법 주행이 난무하자 1억 2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마을 입구에 차량관제시스템을 설치했다.
하회마을 관계자는 "수백 년 역사를 가진 하회마을의 정체성 보존을 위해 진입로에 차단기와 폐쇄회로 CC(TV)를 설치해 전동차 진입을 제한했다"며 "단속이 효과를 거둬 기존 10곳에 달하던 전동차 대여업소가 현재는 모두 사라졌으며 이에 만족해하는 방문객이 많다"고 했다.
국내 전통한옥 권위자인 남해경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전주 한옥마을은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계획한 관광단지가 아닌 일제시대 지역민 중심으로 자연 형성돼 향토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상징적 공간"이라며 "관광 목적의 상업적 개발도 좋지만 무엇보다 한옥마을이 제 정취를 잃지 않도록 전주시가 개발의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정책 고민을 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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