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8:20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정치 chevron_right 자치·의회
자체기사

[3.15의거 64주년] 17살 소년이 일군 민주주의 "잊혀선 안돼"

민주주의 초석 김주열 열사, 3.15 의거 64주기
평소 의롭고 성실, 국민이 함께 사는 민주주의 열망
현 시대에서도 불의에 맞서 거리를 뛰쳐나가 앞장설 것
국가 유공자로 채택된 어머니 고 권찬주 여사에 대한 관심 호소

image

64년 전 불과 17살 소년이었던 김주열 열사가 열망한 사회와 정치관은 무엇이었을까.

김주열 열사는 3.15 의거 시위에 나서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도 길거리에 나섰다. 

그러나 행방불명된 지 27일 후인 1960년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된 그의 주검은 처참, 그 자체였다. 눈에는 최루탄이 박힌 채 몸은 바닷물로 퉁퉁 불어있었다.

마산상고 합격증과 입학은 뒤로 한 김주열 열사의 희생은 4·19 혁명에 도화선이 됐고, 후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주의 초석을 놓았다.

김주열 열사는 1944년 남원 금지면에서 4남 2녀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면 '산수(80세)'의 나이다.

6명의 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막냇동생 김길열(68·현재 서울에서 택시운전자)씨가 어머니와 형, 누나들에게 들은 김주열 열사는 형제지간에서도 유독 똑똑했다고 한다. 김주열 열사 실종 당시 동생 김 씨의 나이는 5살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에, 의리가 있었고 인내심도 많았다고 한다. 남들보다 특출나다 보니 학생 때부터 동네에서 한글을 모르고 지내던 아이들을 모아 공부도 가르쳤다고 한다.

원래 김주열 열사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가세가 서서히 기울었다.

결국 금지중학교 졸업 이후 학비가 별로 들지 않은 철도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1960년 3월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를 재학 중인 조카 김병오(89·11대, 14대 국회의원) 옹의 자취방에 한 달간 머물렀다. 당시 김주열 열사는 김 씨에게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보고 자문과 상의를 구했다고 한다.

철도고등학교 진학에 낙방한 김주열 열사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공짜로 밥은 얻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모가 거주하던 마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마산으로 향한지 2주 만에 김주열 열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병오 옹은 "(김주열 열사는) 아주 성실했고 착했다. 본인처럼 가난한 사람들, 고등학교조차 진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회를 바꾸고 싶어 했다"며 "누구나, 언제나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사회와 우리 국민이 함께 사는 민주주의를 원했다"고 회고했다.

마산상고 입학 동기이자 3.15 의거에 참여했던 김영만(79) 씨가 이야기하는 김주열 열사는 평소 의로운 성격에 용기가 대단했던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했고 품성이 굉장히 착하고 순했다.

김주열 열사가 염원하던 민주주의는 우리가 교과서에 적혀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만 씨는 "주열이가 살아있다면 지금까지도 나와 친한 친구였을 것"이라며 "현 시대에서도 불의에 맞서 거리를 뛰쳐나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선거로 심판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image
고 권찬주 여사가 생전에 아들 김주열 열사의 묘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우리 사회가 놓친 부분이 있다. 바로 김주열 열사 어머니인 고 권찬주 여사다.

권 여사는 김주열 열사가 실종된 이후부터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 달 동안을 매일 같이 국회와 마산 일대를 뒤지다시피 헤맸다. 지난해 4월에는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김길열 씨는 "어떤 면에서는 형보다 어머니가 더 빛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형의 묘와 불과 50m 떨어진 어머니 산소에 올라가는 길목이 엉망이다. 나이가 있는 나까지 세상을 떠나면 산소를 돌봄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전라북도와 남원시가 힘을 보태 형과 못지않게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15의거 #64주년 #김주열 열사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정치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