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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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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오랜 강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인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영토분쟁이 유난히 잦았다. 1337년부터 116년 동안이나 지속됐던 백년전쟁 역시 영토 싸움이 원인이었다. 승리는 프랑스에 돌아갔지만, 휴전과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두 나라 도시들이 입은 폐해는 컸다.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항만도시 칼레도 그중 하나였다. 도버 해협을 끼고 있던 칼레는 광석이나 목재 등을 수입하는 항구로 발전하면서 전쟁 초기부터 영국군의 공격을 받았다. 13469월 영국군이 칼레항을 포위했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고 저항했다. 그러나 식량이 바닥나자 더 버티지 못하고 항복해야 했다. 정치적 보복과 수난이 시작됐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칼레의 유지 여섯 명의 목숨을 요구했다. 칼레의 시민은 용감했다. 칼레의 가장 큰 부자 유스타슈 생 피에르가 앞장서자 여섯 명 유지들이 뒤를 따랐다. 에드워드는 여섯 명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일곱 명이 칼레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이들은 교수형에 처해질 여섯 명을 결정하기 위해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을 빼기로 했다. 그런데 끝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에르였다. 그러나 나머지 여섯 명은 동요하지 않고 교수대에 섰다. 놀랍게도 이들은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 3세 왕비의 간청 덕분이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수난을 겪었던 칼레는 1598, 251년이 지나고서야 긴 식민 치하를 벗어나 다시 프랑스령이 됐다. 그리고 용감했던 칼레의 시민은 시대와 국가의 경계를 넘어 후세의 영웅이 됐다.

총선 결과가 심상치(?) 않다. 21대 국회에 이어 지속되는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야권의 몸집은 더 커졌다. 되돌아보면 여소야대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20032월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때도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탄핵 역풍이 따랐지만, 한때 탄핵소추로 대통령직무가 정지됐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역대급 여소야대. ‘야대의 중심(?)에는 창당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원내 3당이 된 조국혁신당이 있다. 12, 거대 야당인 민주당 의원 수에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수지만 이미 시작된 조국혁신당의 거센 혁신 바람이 숫자에만 갇히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이 소수 야당 초선 의원들의 결기와 활동이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득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고 나섰던 피에르와 여섯 명 유지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이 새삼스러워진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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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 ##여소야대 ##칼레의시민들 ##백년전쟁
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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