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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군도의 교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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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3월 어느날, 중국 시안에서 농부들이 우연히 지하에 묻힌 방 하나를 발견했다. 훗날 고고학자들은 6,000구가 넘는 실물 크기의 병사와 마차, 철제 농기구 등을 출토했다. 중국을 순방하는 외국정상이 가장 먼저 찾는 진시황릉의 발굴 역사다. 1975년 어느날, 신안 증도 인근에서 어부 그물에 중국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왔다. 이후 정부는 10년 동안 발굴조사를 통해 유물 2만4000여점과 28t 무게 동전 800만개를 찾아냈다. 때는 1323년 중국 원나라때 절강성 닝보항을 출항해 일본 규슈의 하카타항으로 가던 무역선(=신안선)이 항해 도중 한국의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이다. 배의 규모는 최대 길이 34m, 너비 11m로 200여 명이 승선하는 이 무역선의 발견은 국내 수중고고학의 서막을 올린 일대 사건이었다. 유사 사례는 전북에서도 있었다. 2020년말, 고군산군도 일대에서 고려청자 등의 수중문화재가 나왔다는 민간 잠수사의 신고를 받고,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지금까지 선유도 해역을 특정해 꾸준히 조사를 벌여왔다. 앞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는 2002년 비안도, 2003~2004년 십이동파도, 2008~2009년 야미도에서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됐는데 십이동파도에서 고려청자를 실은 옛 배의 잔해들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고군산군도 해역은 대형 선단들이 닻을 내리고 머물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고대부터 중국을 오가는 교역선들이 이 해역을 중간경유지로 기착했고 조선시대에는 조운선의 항해 루트였던게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년간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선유도 앞바다의 조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여서 좀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진행된 것은 전체 조사대상 면적(23만5000㎡)의 3% 에도 미치지 못한다. 과거 해상 활동의 주요 기점이었던 고군산군도 일대에서 발굴한 유산의 수는 무려 1만 6000여 점이나 되지만 지금 학수고대 하는 것은 바로 옛 교역선이다. 보물을 가득 싣고있는 고선박 말이다. 사실 그동안 수중문화재 도굴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2004년 전북 군산 비안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128점을 훔쳐 몰래 판매하려고 한 일당이 붙잡혔고, 2005년에도 군산 야미도 해역에서 유물 약 320점을 불법 인양한 도굴범이 검거돼 이듬해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2008년에는 충남 태안선 수중발굴에 참여한 잠수부가 가치가 높은 고려청자 19점을 빼돌리려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국가유산청은 지난달 26일 선유도 수중 발굴 현장을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 이곳이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내 수중 발굴 역사는 1970년대 신안 해저 조사를 기점으로 본다면 반세기 가량 되는데 과연 선유도가 신안, 태안 마도에 이어 제3의 고선박을 내어줄지 모두가 숨죽여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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