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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지역 북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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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2020년 전주새활용센터에서 열렸던 인디마켓 ‘장’은 난생처음 참가했던 지역북페어였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 우리 지역 서점과 출판사, 창작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던 소중한 기회였다. 배포받은 참가팀 식권을 들고 2층으로 내려가면 주민분들이 해주신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영혼마저도 가난할 때 건내받은 끼니는 그저 뱃속만 채우는 것이 아님을 아는 행정가나 기획자는 얼마나 있을까.

그 후 3년 뒤 2023년 ‘전주책쾌’가 열렸다. 전주시, 전주도서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립출판서점 기획자들이 만들어낸 민관협력의 파격적인 북페어였다. 연꽃 가득한 호수 위 연화정 도서관에서 펼쳐졌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 뒤에는 운영진들의 숨은 헌신이 있었다. 수많은 장서들을 순식간에 옮기고, 셀러들을 위한 모자 134개를 손수 제작하고, 갑작스러운 에어컨 고장에도 놀라운 대응력을 보여줬다.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셀러들에게는 매일 김밥과 간식이 제공되었다. 많은 셀러들이 감동하며 SNS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제2회 전주책쾌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과 연결된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열렸다. 옛 농협원예공판장을 리모델링해 더 넓고 쾌적했다. 1회 때 선비 분장을 하고 흥을 돋구던 청년 예술가가 2회 때는 도깨비로 변신해 어린이들과 함께 전통놀이를 하고 폐회 직전까지 남은 선물을 주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올해 진행되었던 제3회 전주책쾌는 기존 예산보다 반 이상 줄어든 열악한 상황 임에도 총 관람객 수가 1,000명 가까이 늘어난 7,800명, 타 지역 방문객은 11% 증가한 48%가 다녀갔다 한다. ”내년에도 또 했으면 좋겠다“ 남부시장 상인들도 매출이 올랐단다. 여행매거진 <책쾌맥>도 런칭되기도 했다.

2024년에는  ‘군산북페어’가 열렸다. 군산북페어는 군산시, 군산도서관, 소통협력센터 군산, 군산서점연합단체 군산책문화발전소가 함께 했다. 참가신청 방식부터 놀라웠다. 긴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포트폴리오 PDF 제출이 필요없었다. SNS주소 정도만 입력하면 끝나 무척 편리했다.

군산북페어가 열린 곳은 故김중업 건축가의 유작으로 알려진 군산회관(구 군산시민문화회관)이었다. 건축사적 가치가 높음에도 오랜 방치, 철거 위기와  '흉물'이란 오명을 딛고 사회실험과 베리어프리 입구를 만드는 등 갖은 노력 끝에 재탄생 된 곳이다.

개막 30분 전부터 관람객들의 긴 줄이 이어졌고, 총 6,600여 명이 다녀갔단다.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재즈바에서 열린 네트워킹 파티에서는 우리 지역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만났다. 꿈만 같았다.

군산북페어와 전주책쾌가 성공한 이유는 지역과 사람을 아끼고 오래된 것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 대전 유성호텔, 강원 아카데미극장처럼 철거 된 오랜 공간들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크다. 아직 전북은 오래된 공간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많은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 돼 있지만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지역 청년들에게 든든한 희망의 한면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전주 청년몰의 구호를 무척 애정한다. 더 많은 지역 창작자들과 상인들이 적당히 벌어 잘 살 수 있을 때까지, 이 따뜻한 북페어의 불씨가 계속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전정미 삐약삐약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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