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 통과한 15명, 지난 11일 기량 겨뤄
군산 채진순 씨 대상…문체부장관상·상금 300만원·시낭송가 인증서 함께 받아
청주 최미영 씨 금상…상금 100만원
 
   구름재 박병순 시조시인 선양을 위한 ‘제7회 마이산의 메아리 전국 시낭송 대회’가 11일 진안문화의집 2층 마이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진안군이 주최하고 진안예총이 주관한 이번 대회는 전북일보, 진안문화원, 진안문인협회 등이 후원했다.
이날 대회에는 전주, 군산 등 도내는 물론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경기 등 전국 각지의 실력파 시낭송가 15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앞서 80명가량이 겨룬 예심(녹음파일 심사)을 통과해 본선 무대에 올랐다.
이날 행사에는 전춘성 군수, 동창옥 군의회의장과 군의원 다수, 전용태 도의원, 우덕희 진안문화원장, 유종구 진안예총회장, 구연배 진안문인협회장, 박주홍 진안생활문화예술동호회장 등이 참석했으며, 전북특별자치도애향본부 총재인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이 특별히 자리를 함께했다.
심사에는 김윤아 (사)시읽는문화 대표이사(심사위원장), 오선숙 한국재능시낭송협회장, 유미숙 전북대평생교육원 공연시낭송 전담교수, 김용자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박영우 경기대 명예교수 등 5명이 참여했다.
 
   대회 결과, 문화체육부 장관상과 시낭송가 인증서, 300만원의 상금이 함께 주어지는 대상은 채진순(군산) 씨가 차지했다. 채 수상자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무대에 오르는 ‘투혼’을 발휘했으며, 대상 발표 직후엔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해 눈길을 끌었다.
금상(1명·100만원)은 최미영(청주) 씨, 은상(2명·각 40만원)은 임정민(공주)·이미자(대구) 씨가 각각 수상했다. 동상(3명·각 20만원)과 장려상(8명·각 10만원)도 수여됐다.
참가자들은 구름재 시조시인의 시조 1편(지정시)과 애송시 1편 등 2편의 시를 연이어 낭송했다. 대회 전반부, 후반부 종료 직후엔 여러 곡의 성악 공연(김나라 소프라노, 박동일 테너 출연)이 솔로 또는 듀엣 무대로 펼쳐졌다.
 
   채 수상자는 수상소감에서 “한 달 전 어머니를 위해 장을 보러 가다 다리를 다쳤다. 몸이 불편해 포기할까도 고민했지만 악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아름답다는 생각이 커 밀어붙였는데 결과가 너무 좋아 믿기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유종구 회장은 개회사에서 “구름재의 시조에는 산, 들,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맑은 샘처럼 흐른다”며 “오늘 대회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말의 아름다움과 마음의 떨림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시의 잔치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춘성 군수는 축사에서 “진안군은 구름재 박병순 시조시인의 생가 복원에 이어, 이에 못지않은 의미를 가진 문학관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며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소중한 공간이 속히 완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정 총재는 축사에서 “이 대회는 안호영 국회의원 등의 노력으로 문체부장관상이 수여되고 상금 규모 역시 다른 대회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주옥 같은 구름재 선생의 시를 외워서 출전한 여러분을 깊이 응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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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순 시조시인은?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진안 부귀면 세동리 적천마을에서 태어난 박병순 시조시인은 ‘구름재’라는 호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지난 2008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가람 이병기를 잇는 한국 시조 문학의 거목이지만 행적에 걸맞은 조명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나라사랑과 겨레사랑 정신이 투철했던 그는 젊은 시절 한글전용 운동에 앞장섰고, 민족 문학의 한 갈래인 시조를 쓰면서 일생을 보냈다. 남긴 시조는 1000편가량이다.
진안공립보통학교, 대구사범학교, 전북대 국문과(1회), 전북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39년부터 1978년까지 전주사범초등 교사를 시작으로 진안농고, 전주고, 전주상고, 전라고 등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5년부터 1991년까지 전주대, 명지대, 중앙대, 한양대 등에서 시조창작론, 고전세미나, 시조가사론 등을 강의했다.
시조 최초 전문지 ‘신조’를 5집까지 발간했다. 11권의 시조집, 2권의 시조선집도 출판했다.
<현대문학>에 시조 ‘금만경’, ‘생명’, ‘철창일기’ 등을 발표하며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다. 1950년대 중반 ‘가람 시조 동호인회’를 조직하고 동인 시조집 <신조>를 내면서부터 한국시조문학 중흥의 기틀을 다지는 산파역을 맡았다. 민족의식에서 시조를 공부하고 창작했으며 나라사랑과 겨레사랑 정신 아래 한글과 시조를 높은 문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민족 고유의 정서에 기반해 혁신풍의 신조(新調)를 개척 발전시켰고 쉬운 한글로 웅숭깊은 뜻과 여운을 담아내는 시조시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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