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잊혀진 문신(文臣)이 있다. 바로 이계(伊溪) 신공제(申公濟·1450~1522)다.
이용엽 진안역사박물관 운영위원장이 최근 펴낸 <한국서화사에서 묻혀진 이계 신공제의 고찰>(신아출판사)은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서예사적 업적을 새롭게 조명한 연구서다.
저자는 오랜 기간 한국 서화사와 조선 전기 문인서예의 흐름을 탐구해온 연구자다. 이번 저서에서는 특히 신공제가 집자·간행한 것으로 알려진 <해동명적(海東名蹟)>을 중심으로 한국 서예사의 주요 전통과 명적(名蹟)들의 서풍을 비교·분석하며, 조선 서예의 형성과 전개를 새롭게 해석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이계 신공제의 해동명적과 한국서화사의 고찰’에서는 신공제의 생애와 서예적 업적을 다루며, 그가 활동하던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세밀히 추적한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받은 신공제’로부터 시작해, <해동명적>에 수록된 문종대왕·성종대왕·최치원·김생·신덕리·신장 등의 서첩을 원문과 번역문을 통해 분석했다. 이어 ‘온진정 중건기’와 ‘신도비명’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적 필치와 예서·초서의 미적 균형감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2부 ‘정부인 순창설씨의 역사적 고찰’은 신공제의 배우자이자 조선 전기 여성 문인으로 기록된 정부인 순창설씨(淳昌薛氏)를 다룬다. 『권선문첩(勸善文帖)』의 서화에 담긴 여성의 예학적 전통과 조선 여성 교화의 문화사적 의미를 탐구했다. 설씨 부인은 신공제와 교유한 문인층뿐 아니라 후대 여성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인물로, 저자는 승례문 편액(承禮門 扁額)에 드러난 그녀의 서예 감각과 신덕리·임명대군·유진동 등 동시대 문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녀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3부 ‘고령신씨 가문의 글과 그림’에서는 신공제의 후손인 신윤복(申潤福)과 신경준(申景濬)으로 이어지는 고령신씨 가문의 예술적 전통을 탐색한다. 특히 ‘신윤복 도록(畫譜)’을 중심으로 그의 회화세계를 재조명하며, 가계(家系)와 화풍(畵風), 대표작의 출처, 묘소 등과 관련된 체계적 연구를 덧붙였다.
이 책은 단순한 서예가의 평전이 아니다. 서화사 속에서 소외된 한 문신과 그 가족이 남긴 기록을 통해, 조선 중기 예학·문학·예술의 교차점을 읽어내려는 학문적 시도다.
이용엽 위원장은 “이계 신공제는 지역에서도, 가문 내에서도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인물이라 ‘신공제 신도비명’과 ‘해동명적’의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며 “신공제는 조선 서예사에서 『해동명적』을 편찬한 문인으로, 그 안에는 서풍의 변천과 미학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전국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고, 경기도 이계 선생 묘역까지 찾아가 이장 작업을 함께해주신 신방수 회장님 등 문화재 보존에 헌신한 분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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