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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기본소득, 더 늦기 전에 :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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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저성장과 인공지능(AI) 혁명이 겹쳐지며 한국 사회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성장률은 2%대에 머물고, 청년 실업과 불안정 노동은 일상이 되었다. AI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뿐 아니라, 사무직·운송·서비스 등 중간 기술 직종까지 자동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산업의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생산성의 열매는 소수 자본에 집중되고, 대다수 시민은 소득과 일자리의 불안정 속으로 밀려난다. 부의 집중과 중산층의 붕괴가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이유다.

이제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일정한 현금이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기술·경제 구조 변화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존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토대다.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여전하다. 막대한 재정 부담, 근로 의욕 저하, 보편성과 형평성의 딜레마 등 여러 비판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런 논쟁이야말로 우리가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할 이유다.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이 가능한가’의 찬반 구도가 아니다. ‘어떤 기본소득이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 대안을 줄 수 있는가’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프레임 속의 논쟁이 아니라, 현실적 해법을 찾기 위한 공론화다.

이미 한국 사회는 여러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일시적 기본소득의 형태로 지급되었고, 지역화폐를 활용한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입증됐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전북 순창군은 전국 7개 시범지역 중 하나로 선정돼 2026년부터 모든 군민에게 매달 15만 원을 지급한다. 농촌의 고령화와 소득 불안정 문제를 완화하고, 지역 내 소비 순환을 촉진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 모델을 실험하는 사회적 실험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돈을 나눠주는 정책’이 아니라, 변화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모색이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다. 기본소득은 시민이 최소한의 경제적 독립을 갖고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이며, 나아가 모두가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기반이다.

기본소득 논의는 더 이상 일부 정치인의 공약이나 이념적 논쟁에 머물러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 나아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문제다. 재원 마련의 어려움, 제도 설계의 복잡함, 형평성 논란 모두가 공론의 장에서 다뤄져야 할 과제일 뿐, 논의를 멈출 이유는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저성장과 인구 감소, 기술혁신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새로운 경제 질서와 사회적 연대를 모색할 수 있는 전환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대와 지역, 계층, 정치적 입장이 참여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기본소득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대화를 시작할 시간이다. 늦기 전에.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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