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1-19 22:09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기고] 스마트폰 속 ‘검은 늪’에서 우리 아이를 구출하라

               고석희 순경

최근 지구대에서 근무하다 보면 청소년 범죄의 양상이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학교 폭력만큼이나 빈번하게, 혹은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문제가 바로 ‘청소년 사이버 도박’이다.

​관련 사건으로 경찰서를 찾은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우리 아이는 평소에 친구들과 모바일 게임만 좋아했지, 도박은 전혀 모릅니다.” 부모님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아이들의 스마트폰 속 세상은 믿음과 달랐다. 

아이들이 단순한 ‘게임’이라 여겼던 앱은 실제 현금이 오가는 불법 도박 사이트였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이미 감당하기 힘든 빚과 중독의 늪에 빠져 있었다. 이는 비단 뉴스에 나오는 비행 청소년만의 일탈이 아니다. 우리 지역 평범한 가정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번지고 있는 뼈아픈 현주소다.

​본격적인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경찰은 이 시기를 가장 우려한다. 아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방 안에서 스마트폰과 보내는 시간이 급증하는 방학은, 역설적으로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최고의 ‘대목’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무방비에 가까운 ‘접근성’과 교묘한 ‘위장술’이다. 성인 인증이 필요한 합법적 게임과 달리, 불법 사이트는 휴대전화와 계좌번호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1분 만에 가입된다. 

운영자들은 ‘달팽이 경주’, ‘사다리 타기’ 같은 미니게임을 앞세워 아이들의 경계심을 허문다. 

뇌과학 전문가들은 청소년기를 ‘브레이크 없는 스포츠카’에 비유한다. 전두엽이 미성숙한 이 시기에 ‘초심자의 행운’이 주는 도파민은 마약만큼 강렬하여, 아이들의 의지만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족쇄를 채운다.

​현장 경찰관으로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도박이 단순히 개인의 파산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강력 범죄의 ‘숙주’가 된다는 점이다. 돈을 탕진한 아이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대리입금’이라 불리는 불법 사채에 손을 댄다. 

살인적인 이자를 갚으려 편의점 절도, 중고나라 사기, 친구 갈취를 넘어 보이스피싱 수거책이나 마약 운반 같은 중범죄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도박 빚이 평범한 학생을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거대한 재난 앞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가정 내에서의 ‘관심’과 ‘탐지’다. 많은 부모님이 “설마 우리 애가”라며 방심하지만, 도박은 아이의 성품과 무관하게 파고드는 바이러스와 같다. 이번 방학, 자녀가 스마트폰 화면을 급히 가리거나, 이유 없이 용돈 부족을 호소하고, 고가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다면 도박 중독을 강력히 의심해야 한다. 특히 자녀의 계좌 내역을 확인하여 정체불명의 입금자나 반복적인 소액 이체가 없는지 살피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만약 도박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무조건 다그쳐서 아이를 숨게 만들어선 안 된다. 도박은 혼나서 고칠 습관이 아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질병’임을 인정하고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1336) 등 전문 기관에 즉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경찰 또한 겨울방학 기간 학교전담경찰관(SPO)을 중심으로 특별 예방 활동과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힘만으로는 이 은밀한 범죄를 뿌리 뽑는 데 한계가 있다. 도박의 늪에 빠진 아이의 손을 잡아줄 사람은 결국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와 어른들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클릭 한 번이 우리 아이의 찬란한 미래를 저당 잡히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지옥 같은 도박의 굴레에서 구해낼 골든타임은, 방학이 시작된 바로 지금이다.

/고석희 군산경찰서 나운지구대 순경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박 #청소년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