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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은 단 하나뿐”⋯아흔 회장이 지켜온 금과들소리의 이야기

500여 년 동안 이어진 전통⋯"우리의 소리를 지키려는 주민들 의지"
“이제 금과들소리가 지닌 의미·가치를 모두가 알아 주길 바라는 마음”

김봉호 순창농요 금과들소리 보존회장. 보존회 제공

“제 평생 소신은 우리의 소리를 후대에 전수하는 것입니다.”

수십 년간 순창농요 금과들소리를 지켜온 ‘산증인’ 김봉호(90) 순창농요 금과들소리 보존회장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아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오늘도 금과들소리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본격적으로 금과들소리가 도약을 준비한 것은 1997년이었다. 당시 순창군 내 1개 면에 하나의 문화예술을 가지라는 군수의 방침에 따라 금과면 노인회를 중심으로 뜻을 모아 소리꾼 故(고) 이종호를 비롯해 주민들이 모였다. 

그렇게 금과들소리는 다시 무대에 섰다.

김 회장은 “정말 회원뿐 아니라 금과면 주민들 모두 금과들소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보존회가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민들의 응원은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보존회원들이 매일같이 운동장에 모여 북을 치고 노래를 불러도 소음 민원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막걸리와 팥떡을 들고 찾아와 응원했던 주민들이다.

김 회장은 “도·전국 단위 행사를 준비하면서 정말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며 “여름에는 연습이 끝나고 속옷을 비틀면 땀이 물처럼 흐를 정도였다. 그래도 시끄럽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들 우리 응원해 주느라 바빴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동체 정신은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향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앞서 두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김 회장은 전 한국민요학회장인 김익두 전북대 교수에게 조언을 구하며 다시 도전에 나섰다.

그 결과, 올해 국가유산청 국가무형유산 지정(인정) 조사 계획의 예능 분야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김 회장을 필두로 보존회원, 금과면 주민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금과들소리 보존에 힘쓰고 있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있다. 바로 회원 확보 문제다. 농촌 인구가 감소한 탓에 전승할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는 “단체 종목 특성상 최소 35명은 필요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40명은 돼야 한다“며 “2002년 대통령상을 받을 때만 해도 회원만 81명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작고하거나 요양 중이라 당시 멤버는 저 포함해 세 명만 남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 보존회원은 54명이다. 일부 40~50대 회원도 있지만, 평균 연령은 73세에 달한다. 보존회는 젊은층 참여 확대와 함께 실내 공연이 가능한 형태를 준비하는 등 금과들소리 정립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회장은 “실내 공연은 14~16명이면 가능하다”며 “공연 요청은 많지만, 무대 여건 때문에 응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사람이 50명이니까 무대에 올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실내 공연이 가능한 형태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수‘에 도전한 만큼 김 회장의 바람도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그는 “금과들소리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순창군뿐 아니라 도민, 전북도 모두 함께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는 꼭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받아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김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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