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예울마루 일군 주역에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제5대 수장으로 취임 베를린 필 유치 등 ‘글로벌 투트랙’ 전략으로 2036 K-컬처 올림픽 공략 4대 업그레이드와 ‘3H’ 비전으로 ‘다시 오고 싶은’ 전당 만들 것
생의 매 순간을 뜨거운 신명으로 채우는 사람. 맑은 표정과 눈빛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동력의 실체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내가 원하는 삶이야?”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돼 있다는 무서운 진리를 깨친 덕분이다. 이승필(62)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이름 앞에 붙는 ‘예술경영인’ 같은 정체성이 이를 증명한다. 청년 시절, 농과대학 진학을 후회하며 ‘가지 않은 길’을 선망했기에 이후의 삶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리라 몸부림친 결과일지도 모른다.
현재 그를 설명하는 주된 수식어는 여수 예울마루를 예술의 섬으로 일궈낸 주역, 전략가이자 시 쓰는 인문학자인데 이것도 범상치 않다. 대기업 입사 이후 사회공헌팀장과 GS칼텍스 재단 사무국장을 거친 그는 지방 발령을 자청했다. 그렇게 2012년부터 12년 동안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신규 조성 책임자와 초대관장으로 지내며 남해안권 거점 문화공간으로 안착시켰다.
지난 1일 전당에서 만난 이승필 대표는 자신을 “공간 경영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어느 도시공학자가 말했어요. 도시가 어떻게 시민을 환대하는가에 따라 시민과 도시가 변화한다고요. 저 역시 공간이 어떻게 관객을 환대하는가를 고민해요. 사람과 공간은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거든요.” 공간에 입힐 애티튜드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그의 몫. 그러니 공간마다 그의 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다.
조직 운영과 경영 방식에서도 그만의 서사가 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존중의 가치를 제1의 원칙으로 삼는다. 관객과 조직 구성원을 대할 때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겠다는 의지이다. 이제는 전당에 오는 관객들이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대표. 앞으로 그가 일궈낼 전당의 미래를 물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제5대 대표로 취임하신 지 한 달입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통과의례 같기도 하지만 전임자 송별식부터 주요 부서 업무파악‧구성원 면담, 기관장 방문인사 등으로 분주했습니다. 취임식과 언론 접촉 등을 통해 전당의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는 한 달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의 조직관리 경험과 예울마루에서의 현장 경륜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어떤 시너지를 낼까요?
“국내 예술계에서 설계와 시공부터 초기 세팅, 그리고 12년의 경영까지 한 호흡으로 책임져본 케이스는 드물 겁니다. 대기업 시절 기술과 마케팅, 노사관계 등 조직 관리의 근육을 키웠던 세월이 밑거름이 됐습니다. 제게 현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전문성을 증명할 가장 확실한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풍부한 현장 경험 때문일까요. 취임하자마자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핵심 소명 중 하나로 꼽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 혁신을 꿈꾸시나요?
“어느 건축전문가가 준공 25년이 지난 건물을 사람 몸에 비유하니 ‘일흔 살’에 해당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예울마루를 직접 짓고 관리해본 경험에 비춰봐도 그렇습니다. 공연장의 첨단 전자부품들은 5년만 지나도 부품수급이 어려워지고, 10년이면 내장재를 교체해야 하는 주기가 돌아옵니다. 그런데 전당은 지난 25년 동안 부분적인 유지보수만 있었을 뿐, 전면적인 리모델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 시기가 목전에 와 있습니다. 다행히 전북도와 전북도의회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공감해주셔서 올해 리모델링을 위한 기초 용역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리모델링을 하려면 예산 확보가 관건일 텐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십니까?
“최소 5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꺼번에 진행하기에는 운영 여건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마스터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수술을 집도하려 합니다. 방향은 명확합니다. 21세기 기술 변화를 온전히 수용하되 철저하게 ‘고객 중심’과 ‘효율 우위’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수 예울마루 시공 경험이 전당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설계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수준의 공연 유치를 언급하셨습니다.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왜 이러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전당은 연간 70건 이상의 기획사업을 치러낸 저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전북의 열망과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특히 2036년 전주올림픽을 ‘K-컬쳐 올림픽’으로 유치하려는 도민들의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전북을 주목하게 할 강력한 한방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를 ‘들여오는 기획’과 ‘나가는 기획’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들여오는 기획과 나가는 기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들여오는 기획’은 도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작업입니다. 지난 25년간 전당 무대에서 접하지 못한 세계 3대 오케스트라(베를린·빈·뉴욕 필하모닉) 유치를 꿈꿉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이 전주에서 울려 퍼질 때 그 감동은 ‘지역의 품격’으로 치환될 것입니다. 반대로 ‘나가는 기획’은 우리 원형 콘텐츠의 세계화입니다. 태권도와 동학을 결합한 <태권유랑단 녹두>가 선봉입니다. K-문화의 흐름을 타고 ‘녹두’를 넘어 ‘춘향’, ‘흥부’ 시리즈로 확장해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하겠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세계 수준으로 보여주는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태권도와 판소리를 결합한 소리킥 시리즈도 관심이 가는데요.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하려면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공연장이 단순히 대관만 해주는 곳이 아니라, 직접 작품을 만드는 제작극장이 돼야 합니다. ‘전북의 소리’라는 원형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버무려 낼 것인가,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태권소리극 ‘소리킥’ 시리즈입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라는 언어에 우리만의 깊은 맛인 판소리를 입히는 전략입니다. 최근 제작된 <태권유랑단, 녹두>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를 다루지만 인간의 보편적 화두인 ‘꿈’을 판타지적으로 풀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업적 명품이 되는 과정,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전북 14개 시군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매해 예술과 대중을 아우르는 70여 건의 사업을 펼칩니다. 특히 20년간 이어온 ‘찾아가는 예술극장’은 이제 단순한 방문을 넘어 세 가지 전략을 꾀하려고 합니다. 첫째, 현지 예술인의 자생적 생태계를 돕는 플랫폼이 되겠습니다. 둘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택트’ 중계로 오지까지 문화소외를 없애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내외 기관과 아티스트 풀(Pool)을 공유하는 광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겠습니다."
-프로는 성과로 증명한다”라며 강력한 휴먼웨이 업그레이드를 주문하셨습니다. 대표님만의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구성원의 수준이 전당의 수준이고 리더의 안목이 곧 전당의 안목입니다. 제가 성과를 강조하는 이유는 각자가 자기 분야의 프로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의 특성과 협력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것이 제 숙제입니다. 개인의 성과는 투명하게 인정하고, 조직 전체의 신명을 끌어올려 성과를 만들겠습니다. 사람이 바뀌면 공간이 바뀌고, 도민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성과로 증명하겠습니다.”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취임사에서도 밝혔듯이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콘텐츠 업그레이드, 휴먼웨어 업그레이드, 고객서비스‧안전‧ESG 업그레이드 등 4대 업그레이드를 통해 도민 문화예술 향유권 증진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오고 싶은 전당, 공연이든 전시든 다녀가면 힐링이 일어나는 3H(Hope‧Happy‧Healing)의 전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Δ 이승필 대표는
이 대표는 1964년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 송원고와 서울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GS칼텍스에 입사해 2007년부터 GS칼텍스재단 사회공헌팀장과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2012년부터 2024년까지 GS칼텍스 예울마루 초대 관장을 맡아 공연장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 문화예술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2011년 한국창조문학회에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여수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문예회관연합회 이사 및 호남제주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공연예술포럼과 공연예술경영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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