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연구소 춘향 학술토론회서 ‘장재백 가계’ 조명 송광록 이후 공백기 규명… 남원 소리 전승 축 재구성 강도근으로 집약된 동편제 정수… 보존·창조 사이 과제
‘판소리의 성지’ 남원.
춘향가와 흥보가의 배경이 된 이곳에서 ‘가왕’ 송흥록(1801~1863)은 산유화조를 개발하고 진양조를 완성하며 판소리를 민족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그의 소리는 남원·구례·순창·고창 일대로 퍼져나가며 동편제라는 큰 흐름을 형성했다.
통상 동편제의 계보는 송흥록-송광록(동생)-송우룡(아들)-송만갑(손자)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계보를 지역 중심으로 들여다보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송우룡과 송만갑은 주 활동 무대가 구례였고, 송광록 역시 말년을 익산에서 보낸 것으로 파악된다. 결과적으로 송광록 이후 한동안 남원에서는 뚜렷한 명창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공백기’가 존재한다.
이 공백을 메운 인물이 바로 명창 장재백이다. 30일 남원 ‘안숙선명창의여정’에서 열린 판소리연구소 춘향 제3회 학술토론회에서는 이 장재백 가계가 남원 판소리 전승의 핵심 축으로 다시 호명됐다.
최동현 군산대 명예교수는 “장재백은 김세종의 직계 문인인 동편제 소리꾼으로 남원 판소리 전통을 이어갔다”며 “송광록 이후 남원 판소리는 장재백 가계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고 밝혔다.
핵심 축은 두 갈래로 뻗는다. 하나는 유성준, 다른 하나는 김정문이다.
장재백의 질녀(동생의 딸) 장주이는 명창 유성준의 아내다. 유성준은 송우룡의 제자로 ‘수궁가’와 ‘적벽가’에 뛰어났고, 이를 후대에 전한 인물이다. 그의 문하에서는 임방울, 김연수, 정광수, 박동진 등 현대 판소리를 대표하는 명창들이 배출됐다.
또 다른 축은 김정문이다. 유성준의 누나 유준은 김정문의 어머니이고, 김정문의 아내 장봉선 역시 장재백 가계다. 사제 관계와 혈연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김정문은 송만갑의 소리를 계승하며 남원을 대표하는 명창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제자로는 강도근, 박록주, 박초월 등이 있다.
김정문 이후 남원 판소리를 대표한 김영운은 김정문의 조카이자 강도근의 매형이다. 이처럼 혼인과 혈연으로 촘촘히 얽힌 인맥은 특정 개인이 아닌 하나의 계보로 이어지며 남원 판소리의 맥을 이었다.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한 인물에게서 집약된다. 동편제의 정수를 지켜낸 명창 강도근이다.
강도근(1918~1996)은 김정문과 송만갑, 유성준에게서 소리를 배운 뒤 쌍계사에서 7년간 독공하며 자신의 세계를 완성했다. 이후 남원국악원 창악강사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고,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의 소리는 ‘철성(鐵聲)’이라 불렸다. 청댓잎이 날리는 듯한 높고 단단한 음색은 동편제 특유의 강건함을 상징한다. “나는 자작은 안 한다. 배운 그대로만 한다”는 그의 말은 원형 보존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다. 안숙선, 이난초, 전인삼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승의 의미를 둘러싼 제언도 이어졌다.
최혜진 한국공연문화학회 명예회장은 “남원 판소리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아카이빙하는 작업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맥을 잇는다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동반하는 과정”이라며 “소리꾼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역사회와 여러 주체가 함께 참여해 남원 소리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미나 안숙선명창의여정 관장은 “스승에게서 받은 소리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며 “남원 소리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세계와 호흡하는 전승 기반을 만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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