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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미 ‘Eternal Reflection(영원한 빛)’전] 금빛, 그 영원한 에너지

금의 영원성, 변하지 않은 빛을 사랑한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Eternal Reflection(영원한 빛) 채은미 개인전이 지난달 21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금색 큐브(Cube, 정육면체)로 만든 나비와 하트 시리즈, 평면작품과 설치작품 등 총 36점을 보여준다. 채은미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한 후 색채를 공부하기 위해 20여 년 전 일본 도쿄예술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일본화 전공 교수가 무릎을 꿇고서 경건하게 화폭에 금박을 입히는 광경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 후 작가는 금박 작업을 시작한다. 금박 회화를 필두로 금박 작업은 몇 년 후 큐브와 자개로 입체적인 3D 작품으로 발전한다. 작가는 금뿐만 아니라 자개와 옻(접착제)이 가진 영원성에 매료되었다. 수도자가 하는 수행처럼 금박 작업은 세밀한 드로잉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후에 큐브에 하나씩 금박을 입히고, 자개를 얇게 저며 옻으로 붙이는, 고도의 정교하고 고된 노동을 오랜 시간 거친 후에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작가 자신이 먼저 몰입하고 매료되어야 관람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작품은 금을 선호하는 중국과 홍콩, 중동뿐만 아니라 스웨덴에서도 많은 관람객을 매혹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시리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랑의 영원성을 희구하는 인간의 염원을 작가는 금빛 큐브로 모던하게 구사했다. 핑크빛 하트 4개가 사랑스럽게 오손도손 모여 있는 작품도 놓칠 수 없다. 또 다르게 돋보이는 작품은 200호 대형 작품 Eternal Sunshine(화양연화)이다. 순금으로 도금한 수백 개 큐브로 만든 바탕에 자개로 만든 나비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나비 날개에 핀 꽃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로 작가 인생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아픔을 딛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 작가의 심정이 반영된 듯이 보인다. 전시회에서 금빛은 찬란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금속이지만 무겁지 않고 모던하고 세련됐다. 제목처럼 영원히 반사될 듯하다. 금은 광채도 빛나지만 연성도 금속 중 가장 좋다. 작가는 금이 유연하고 부드러워 작업할 때 위안을 준다고 유연성을 강조한 바 있다. 작가에게 위안을 주는 금의 유연성은 괴테가 말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에서 여성적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작품을 둘러보고 난 뒤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빛, 나비, 꽃, 시, 인생, 영원, 사랑, 불멸.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8.12.03 20:20

[메간 헤스 아이코닉전] 당당하고 우아한 패션 일러스트

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브 생 로랑) 패션아트로 불리는 패션일러스트레이션 메간 헤스 아이코닉전이 지난 10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G층 1, 3관에서 열리고 있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 메건 헤스(Megan Hess) 작품 390여 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코코 샤넬을 그린 작품, 미국 TV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를 표현한 소품, 협업한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아이코닉한 작품, 파리와 뉴욕의 패션 이야기, 패션 하우스 인테리어, 1000개의 꽃으로 만든 핑크드레스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펼쳐진다. 호주에서 태어나 호주 그리피스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한 메간 헤스는 영국에서 활동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헤스는 드라마보다 책으로 먼저 나온 섹스 앤 더 시티삽화를 그리면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개성과 특징을 간결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은 선으로 묘사하는, 그녀의 섬세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삽화의 성공으로 전 세계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을 하게 된다. 헤스는 현재 유명한 호텔 체인 Oetker Collection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맡고 있으며 많은 브랜드와도 협업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메간 헤스와 20세기가 낳은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메간 헤스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사람은 코코 샤넬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품격과 멋이다. 약간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간소한 복장이 더 멋있다. 여성에게 가장 아름다운 색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다. 시대를 앞서간 샤넬의 어록은 모던함에서 메간 헤스의 패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일까, 메간 헤스는 검정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핑크를 많이 사용한다. 전시 제목처럼 시대의 아이콘들이 대거 등장한다. 당당함과 용기를 갖춘 자신감이 넘치는,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들이다. 영원한 아이콘 오드리 헵번, 코코 샤넬,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 등 20세기를 풍미했던 패션 아이콘들과 버락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와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가수 레이디 가가 등 21세기의 아이콘들의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인다. 패션의 완성은 그 옷을 입은 여성이다. 세상의 많은 여성들이 명품에 집착하지만, 자신이 명품이 되면 더 이상 명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8.11.13 19:57

[‘유영국의 색채추상’전] 산과 자연의 본질을 찾아서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유영국1916~2002) 유영국의 색채추상전이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4일부터 10월 7일까지 열리고 있다.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유영국의 작품 24점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유학시절(1935~1943)과 1964년 신문회관에서 열었던 첫 개인전 이후의 주요 작품들이다. 작가의 유학시절을 보여주는 사진과 한국 추상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각종 아카이브 자료들도 포함된다. 주로 산이라는 모티브를 강렬한 색과 분할된 면으로 비구상적 형태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정사각형 캔버스에 주로 황색과 적색의 산을 주제로 한 추상화는 원숙기에 이른 유영국의 추상 언어를 잘 보여준다. 유영국의 산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직선과 점으로 형성된 삼각형으로 기하학적 질서를 갖춘 그만의 추상세계다. 그는 색채를, 특히 삼원색과 뉘앙스가 있는 강렬한 색채를 한국미술에 도입했다. 인간은 타고난 능력과 주변 환경, 역사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1916년 강원도 울진(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예술가로서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시기적으로는 일제강점기로, 강직한 성격의 유영국은 예술가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동경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전위예술 작가들과 교류하고 사진적인 기법을 통해 기존의 회화적인 한계를 넘어 구성주의적 방식을 추구한다. 그렇게 유영국은 기초를 다진 후 1938년 일본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하였다. 1964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자연을 포함해 격동하는 세계를 선과 면, 색채로 기하학적 구조와 질서로 환원하는 작업을 펼친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절대추상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천부적 재능만이 아니라 일생 수행하듯이 철저하게 끊임없이 노력한 그는 수많은 걸작을 세상에 남겼다. 현대 추상미술의 세계적 거장 마크 로스코는 색채나 형태를 부각시키지 않고 비극과 운명, 아이러니와 관능성 등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무겁고 어둡게 추상화했다. 반면 유영국은 대상은 자연이었고, 그것을 탐구해온 형태는 비구상을 바탕으로 한 추상이었다.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했다. 지난 2016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유영국, 절대와 자유 회고전 150여점을 보러 갔던 필자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의 그림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색과 면, 선으로 그렇게 함축적이며 심플하고 아름다운 현대적인 그림은 처음이었다. 그 때의 여운이 다시 새롭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8.09.18 19:33

['로메로 브리토' 특별전]사랑·행복·희망의 에너지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그것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행복의 나눔과 공유에 있다. 피카소에 마티스의 색을 입힌 모던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로메로 브리토(1963~, Romero Britto) 한국 특별전이 서울 용산 아이파크 대원뮤지엄에서 지난달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Love 사랑, Happy 행복, Hope 희망라는 3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회화와 조각, 디즈니와 영화 속 캐릭터 콜라보, 유명 인사를 모티브로 한 작업 등 120여점을 선보인다. 그의 초기작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전시 제목은 Color of Wonderland(환상의 나라의 색채). 1963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로메로 브리토는 어린 시절 독학으로 신문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브리토는 청년이 된 후 프랑스를 여행하며 20세기 대표적 예술가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대 초 브리토는 마이애미 거리에서 신문지에 강렬한 색채로 그린 작품들이 성공하자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그 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현하며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브리토의 스타일은 입체파와 팝아트, 그래피티가 결합된 것이다. 그는 선명하고 밝은 색상과 굵은 선, 상상력이 넘치는 패턴 등을 사용한다. 예술과 예술가들이 긍정적인 변화의 주체라는 믿는 브리토의 그림은 생동감과 활력이 넘쳐난다. 특히 대중적인 이미지, 장난기 많은 테마, 창의적인 자신의 서명 등 팝아트적인 그의 작품은 앤디 워홀, 키이스 해링과 같은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검정색으로 패턴을 그린 브리토의 작품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브리토의 그림은 라틴과 남미 문화, 남부 플로리다 문화를 보여주며 유머감각과 장난스러움, 대중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경쾌한 이미지로 그는 애플, 펩시콜라, 디즈니와 같은 주요 기업 등을 위한 광고와 그래픽을 제작하기도 한다. 브리토의 작품이 삶을 즐기고 사랑하는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철학은 이기적인 현대인에게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다. 그는 250개 이상의 단체들에 시간과 작품, 자원을 기부해 왔다. 현대사회는 행복의 나눔과 공유가 얼마나 절실한 세상인가.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8.07.24 19:36

['니키 드 생팔'전] 유년시절 상처, 예술로 치유

우리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선함과 창조력, 어리석음, 악마와 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내부에 간직하면서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20세기 대표적인 현대작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 1930~2002)이 남긴 말이다. 화가와 조각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류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을 소개하는 니키 드 생팔展 마즈다 컬렉션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부터 9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여년간 니키 드 생팔과 우정을 쌓고 그녀의 작품을 수집한 일본인 요코 마즈다 소장품 127점을 전시하는 특별전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니키 드 생팔은 어린시절 경험한 성폭행과 이른 결혼생활에서 오는 가부장적인 권위로 인해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는 내적 치유를 위해 미술치료를 시작하며 삶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니키는 고통과 상처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하여 1961년 관람객의 영혼에 예술적 총격을 가한 사격 회화(shooting)를 펼친다. 물감이 담긴 봉지를 작품에 부착시켜 총을 쏘는 방법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물리적 폭력과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정신적 강압을 고발한 퍼포먼스다. 니키는 세상에 사격 회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몇 년 후 화려한 색채와 생기발랄한 모습을 한 나나시리즈를 탄생시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모습의 도발적인 여성을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방에 깨트리는 조각품들이다. 여성 그 존재 자체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인간은 태어남으로써 만남이 시작된다. 부모, 친구, 선생, 연인, 동반자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특히 예술가에게는 동반자의 만남이 중요하다. 니키는 스위스 조각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를 만나면서 잃었던 인간애를 회복하고 사랑과 작품 활동을 같이 한다. 니키는 팅겔리의 영향으로 작품에 건축적 요소를 작업에 더한다. 예술혼이 무르익은 니키는 유쾌한 환상세계 타로공원(Tarot Garden)을 만든다. 니키가 일생의 꿈이었던 타로공원은 이탈리아 카파비오에 세워져 공사 기간만 20년에 달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신화와 전설이 혼합된 상상력으로 지어진 타로공원은 니키의 환상적인 작품들로 대중들에게 치유와 기쁨을 선사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한 상처로 성장을 멈춘 한 영혼이 예술을 통해 치유를 하고 자신 안의 살아 숨 쉬는 어린 아이를 해방시키는 50여년의 긴긴 여정. 내면의 깊은 분노와 절망감을 기발함과 유쾌함, 기쁨과 재치, 도발과 발랄함으로 끊임없이 대치시키는 한 영혼의 분출하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놀라운 세계였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8.07.12 19:59

['샤갈 러브 앤 라이프'전]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만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러시아가 낳은 20세기 거장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 남긴 말이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 러브 앤 라이프展’이 지난 5일부터 9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이스라엘 미술관이 기획, 샤갈과 그의 딸 이다(Ida)가 직접 기증하거나 세계 각지의 후원자로부터 기증받은 샤갈 작품 중 150여 점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를 열망했던 샤갈은 1919년 러시아를 떠나 ‘빛, 자유, 기술의 연마’를 찾아 프랑스 파리로 간다. 루브르미술관과 화랑을 다니며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입체파와 야수파 등 당대 화가들의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를 한다. 이렇게 파리에서 보낸 샤갈은 60년 동안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양식을 구축하게 된다. 내면의 시적 호소력과 화려한 색채의 대비가 뛰어난 그림을 그린다. 샤갈은 어린 시절 가난하지만 따뜻한 고향 비테브스크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꽃다발과 어릿광대, 날아다니는 연인들, 환상적인 동물들, 성서의 예언자들, 지붕위의 바이올리니스트, 유대인 등 샤갈은 사랑하는 대상을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로, 원근법과 시공을 초월한 스토리로 구사한다. 그의 그림은 꿈과 상상력 그 자체다. 샤갈의 예술과 인생에서 아내 벨라 로센벨트를 빼놓을 수 없다. 벨라는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샤갈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와 모델, 조언자가 된다. 벨라는 샤갈의 화폭에서 천사처럼,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리고 샤갈의 영원한 여신이 된다. 전시의 포스터로 선정된 ‘사랑하는 연인들과 꽃’이 눈을 사로잡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행복에 겨운 황홀감을 상징하듯 붉고 노란 꽃들이 라벤더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그림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옷을 라벤더로 표현한 점이 좋고 그림의 반을 차지하는 배경으로 샤갈이 특별히 사랑한 색 블루가 사랑스럽다. 블루는 어떠한 명도나 채도에도 아름답고 어떠한 색과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창조주도 하늘을 블루로 했을까.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색도 블루다. 이번 전시는 유화가 적어 아쉬웠지만 전시회에서 준비한 멀티미디어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음악과 함께 이번 전시회에 빠진 샤갈의 걸작들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평면의 그림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행복한 인생을 산 샤갈의 색채의 향연에 나도 절로 행복해진다. 꿈결 같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8.06.14 19:52

['알렉스 카츠, 모델&댄서'전] 단순하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 알렉스 카츠와 부인 아다. 미국 현대 초상회화의 거장 알렉스 카츠의 알렉스 카츠, 모델&댄서전이 지난달 25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롯데문화재단과 알렉스 카츠 스튜디오 공동주최로 초상화와 풍경화, 설치작품을 포함한 70여점을 전시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92세의 고령에도 열정적으로 작업한 카츠의 최신작 캘빈 클라인, 코카콜라 시리즈를 최초로 공개한다. 카츠는 그의 뮤즈이자 아내 아다를 끊임없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알렉스 카츠(Alex Katz 1927~)가 처음으로 아내 아다(Ada Del Moro 1928~)를 만난 것은 1957년 뉴욕 카츠의 전시회에서였다. 첫 눈에 아다에게 반한 카츠는 1년 후 아다와 결혼한다. 젊고 매력적인 아다부터 그 후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나이가 들면서도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있는 아다를 그려왔다. 지난해 그린 것을 포함하면 250점에 달한다. 알렉스 카츠는 1927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카츠는 19세가 되자 뉴욕 맨해튼에 있는 쿠퍼 유니온 대학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모리스 캔토에게 드로잉에 기초한 회화와 당시 유럽 화단을 주도한 전위적인 예술형식을 배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자 카츠는 1950년대의 회화적 감성을 지닌 그림들과는 완전히 결별하고 팝아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의 그림은 거리의 광고판(빌보드) 같다. 팝아트의 그림과 거대한 스케일의 빌보드의 결합은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그는 빌보드에 23명의 여인 모습을 그렸다. 특히 여인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그 모습을 과감하게 자르고, 심플하게 확대해 그렸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얼굴의 주름 같은 미세한 것들도 생략했다. 현대적이다. 나는 서로 다른 것들을 같은 방식으로 그리는 것 대신, 어떻게 하면 같은 것을 다르게 그릴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고 카츠는 자신의 미학을 말한다. 미국의 한 화가는 세상은 그의 그림으로부터 시작한다고 극찬을 한 바 있다. 카츠는 도시의 광장에 커다란 크기의 광고판이 주는 현대적 매력과 장점을 알아 챈듯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본 대상을 강력하고 심플하게 표현, 현대적인 그림으로 완성한 점이 돋보인다. 카츠와 같은 예술가가 그린 그림이 그렇듯이 우리의 평범한 삶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술가의 삶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자신만의 그림, 즉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 유일(唯一)하고 유한(有限)한 존재인 인간. 그래서 더욱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8.05.20 20:03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 여자는 '대지'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대지다. 이렇게 자신과 여자에 대한 정체성을 말한 사람은 이성자(李聖子, 1918~2009) 화백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성자 화백의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이 오는 7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회화 및 판화 127점과 드로잉과 포스터 등이 포함된 아카이브를 전시하는 회고전이다. 이성자는 1918년 경남 진주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짓센여자대학을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이성자는 의사와 결혼, 세 아들을 두었으나 1950년 결혼생활에 파경을 맞이한다. 프랑스어를 배운 뒤 1951년 아들 셋을 남겨두고 훌쩍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 그랑드 슈미에르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스승인 앙리 고에츠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에 매료돼 추상작업을 하게 된다. 몇 년 후 그녀는 스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1960년대 만리 타국에서 그녀는 어머니와 세 아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향수를 형상화한 작품 내가 아는 어머니로 프랑스 화단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자신의 동양적인 유산에서 나온 오묘한 성격을 간직하고 서양미술의 흐름 속에 용기 있게 합류한 동양의 예술가라는 평과 함께 동녘의 대사라는 별칭도 얻게 된다. 한국적 사상과 정서가 긷든 그녀의 추상화는 프랑스 화단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작품에는 음과 양, 동양과 서양, 기계와 자연, 죽음과 생명, 자연과 인공, 정신과 물질 등 대립적인 요소들이 조화와 상생의 철학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형식이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는 칸트의 철학처럼 그녀는 예술가의 작품에는 반드시 내용, 즉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생 그렇게 작품 활동을 했다. 그 후 그녀는 추상화 외에도 판화, 도자기 작업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이번 전시는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됐다. 조형 탐색기(1950년대)는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추상작업을 처음 시도했던 시기. 여성과 대지(1960년대)는 자신의 여성성과 모성을 대지로 표현했다. 음과 양(1970년대)은 미국 여행 후 대도시의 고층 건물과 문명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그녀는 대립된 요소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도모한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1980년대)은 한국과 프랑스를 수십 번 오가며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극지의 오로라를 비롯한 자연과 우주를 심플하게 형상화했다. 반원 모양의 색동 띠들이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달관한 듯,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보이는 뛰어난 수작이다. 1950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이혼한 후 여인보다는 여자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프랑스로 떠난 것은 시대를 앞 선 신여성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이혼이 흔치 않은 시절이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외국으로 공부하러 간 용기는 놀랍기만 하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와 끊임없는 변화를 열정적으로 추구,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둔 이성자 화백은 지금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위 어디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을까.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8.04.24 20:56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전] 이토록 우아한 '종이'

하얀 종이를 마주하면 마음이 설렌다.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릴 땐 무엇을 어떻게 그릴까. 글을 쓸 땐 무엇을 어떻게 쓸까하고 약간의 긴장감마저 들면서 가슴이 떨린다. 종이를 사용한 예술작품 전시회에 갔다. 서울 경복궁 옆 대림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7일부터 5월 27일까지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0팀의 아티스트들이 종이라는 특수한 속성에 집중, 종이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종이에 감성을 입혀 바람, 별 빛, 햇살 등과 같은 자연적 현상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전시회다. 첫 번째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페이퍼아트계의 가우디라 불리는 리차드 스위니(Richard Sweeney)의 작품 ‘고요한 새벽의 별 빛’이 시선을 압도한다. 새까만 배경에 종이를 입체적으로 접어 만든 대형 설치 작품으로 내 자신이 우주 공간에 부유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제목처럼 새벽의 별빛들이 물결치듯 우아하게 일렁이는 우주 조각품 같다. 짐앤주(Zim&Zou)는 강렬한 비주얼의 페이퍼 아트를 구사하는 프랑스 듀오 디자이너다. 그들의 작품 ‘거리에서 만난 동화’는 제목처럼 화려한 여러 색깔의 색종이를 사용, 거리의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동화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완다 바르셀로나(Wanda Barcelona) 디자인 스튜디오 작품 ‘꽃잎에 스며든 설렘’은 4000여 개의 종이 꽃송이들과 투명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을 이용한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흐드러지게 핀 하얀 등꽃송이들이 천장으로부터 길게 늘어져 내려진 공간은 마치 등나무 숲속에 들어선 것 같다. 숲속 길을 돌아서면 하얀 등꽃송이 사이에 그라데이션을 한 천연색 꽃송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디자인 그룹 ‘마음 스튜디오’는 ‘그곳에 물든 기억’이란 제목으로 연분홍빛의 종이 갈대로 산책로를 이룬다. 갈대들은 사방을 둘러싼 거울에 반사되며 끝없이 펼쳐져 천장의 은은한 빛과 함께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몽환적인 음악까지 더해져 잠시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이번 전시는 필명이 ‘오밤’인 이정현 작가가 각 섹션마다 종이작가와 콜라보를 한 연출이 신선했다. 오밤 작가의 시구를 섹션마다 전시 공간 바닥에 조명을 쏘아서 읽을 수 있게 한 아이디어는 인상 깊었다. ‘너의 하늘로 내려가/ 깜깜한 너의 밤에/옅은 빛이라도/ 보태어 주고 싶어서’ ‘그 많은 것들 중/ 너는 왜 하필 꽃이어서/ 걷던 나를 멈추게 해/ 너만 바라보게 만들어’ 이번 전시회는 종이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만나는 시공간의 선물이었다. 하얀 종이를 다양한 기법으로 접고, 다양한 모양으로 잘라 붙이고, 여러 색깔의 색종이를 접어 붙이고, 늘어뜨리거나 세워서 환상적인 작품을 만든 작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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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8.04.12 18:44

[재일미술가 '오일-Zero(無)의 외침'전] 조국에 대한 그리움 오롯이

일본의 고흐, 한국의 고흐라고 평가 받는 재일미술가 오일(吳日, 1939~2014)의 하정웅컬렉션 오일-Zero(無)의 외침展이 지난달 17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일 작가 작고 3주기를 기념, 광주시립미술관과 수림문화재단에 소장된 하정웅컬렉션 300여점 중 선별된 80여점과 함께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는 영상이 포함된 회고전이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오일 화백은 1960년대 일본 앙데팡당전과 재일 조선청년전, 평화미술전을 시작으로 2000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재일의 인권전에도 참가한 바 있으며 생전에 35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일본의 고흐, 한국의 고흐라고 일본의 한 평론가가 오일 작가를 지칭한 것은 그가 고흐처럼 불세출의 화가지만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일동포들의 삶이 그러하듯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오일의 인생역정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1945년 원폭투하 때 다행히 온 가족은 살아남았고, 7세가 된 오일은 할머니가 계신 조국 경남 거창으로 귀국하여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 6년여를 그 곳에서 보내게 된다. 그는 가난하지만 정겹고 따사로운 조국의 풍광을 경험하게 된다. 어디에나 흔히 볼 수 있는 시골풍경이 어린 오일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과 경험을 안겨준다. 그 후 일본에 돌아온 오일은 여러 직업을 거치며 방랑하다 19세에 화가가 되기 위해 도쿄로 간다.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 제도적인 미술학교에서 배운 그림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예술혼을 독창적으로 구현한다. 그는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원색으로 주로 인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그는 원색을, 특히 우리의 전통적인 오방색으로 화폭을 가득 채운다. 여인들이 입은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 농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무렵 붉은 노을, 누런 들판, 푸른 하늘 등 오방색을 주로 사용했다. 그의 작품에는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머리에는 물동이를 인 시골 아낙네를 그린 작품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1970년대 오일은 새롭게 추상작업을 시작한다. 자유분방한 선과 색채로 러시아 순수추상화가 칸딘스키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직선과 원을 사용한 또 다른 추상화는 구성주의 대표적 화가 몬드리안의 면 구성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그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작품 향수는 빛나는 태양 아래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의 젊은 여인이 한 손은 물동이를 잡고 한 손은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있다. 어린 아들이 옆에서 젊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있어서일까. 이 모자상은 태양보다 더 찬란한 모습이다. 아마도 작가가 어머니와 헤어져 지낸 어린 시절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간 전시회가 새로운 작가를 만난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제목 제로(無)의 외침은 유치진의 시 깃발 중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시구와 오버랩 된다. 내가 좋아하는 단순한 형태와 선명한 색상의 오일의 작품들이 우연히 발견한 보물 같다. 어린 시절 만경평야가 펼쳐진 외갓집에서 본 듯한 여인들의 모습이 그리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늘 가고픈 그 시절,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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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8.04.01 19:09

['피카소 1932-사랑·영향력·비극'전] 화폭에 살아 있는 그의 연인들

▲ 파블로 피카소 작품 꿈(1932). 피카소, 그 이름 하나로 설명이 필요 없는 예술가. 피카소 1932-사랑, 영향력, 비극이란 타이틀로 런던 테이트 현대미술관에서 지난 8일부터 9월 9일까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932년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창작한 그림, 소묘, 조각 등 100여점의 작품과 가족사진도 포함되어 작품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특별전이다. 인터넷 상으로 테이트 현대미술관 피카소전시회에서 주요 작품 여러 점을 관람하고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피카소 전시는 피카소가 라이벌인 앙리 마티스에게 끼친 영향력, 피카소의 정신분석학에 관한 지대한 관심, 어린 연인 마리테레즈 발터에 대한 열정 등을 보여준다. 전시회의 중심인 마리테레즈 누드화 3점 모두 전시되는 특별전으로 피카소의 작품과 삶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탐색할 수 있으며, 특히 그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기회다. 1932년 50대를 맞이한 피카소는 인생과 예술가로서 황금기를 구가한다. 피카소의 네 번째 연인이자 영감의 원천인 뮤즈 마리테레즈는 피카소보다 28년 연하였다. 작품 누드, 초록 잎과 상반신, 검은 안락의자 안의 누드, 거울 세 작품은 마리테레즈가 모델로 피카소 작품 중 관능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피카소가 5일 만에 완성한 이 누드화 3점은 1932년 이후 동시에 전시된 적이 없었고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3점 모두 테이트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또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대여한 거울 앞의 소녀는 거울 앞 빛나는 마리테레즈와 거울 속 울고 있는 모습을 대비한 균형미가 뛰어난 수작이다. 작품 꿈은 고개는 옆으로 젖히고서 꿈을 꾸는 듯, 사랑에 취한 듯 눈을 감은 마리테레즈 초상화는 서정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꿈은 선명한 색과 다른 작품과 다르게 검정색으로 여러 번 덧칠하지 않고 가는 곡선으로 그린 피카소의 걸작 중 걸작이다. 이 작품은 미국 라스베가스 한 카지노 부호의 소유였으나 화폭에 동전만한 구멍이 나, 2006년 1억39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세간에 퍼진 피카소의 여성편력에 대해 피카소와 마리테레즈 사이의 손녀 다이애나 피카소는 할머니 마리테레즈는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와 소묘의 모델이었고 할아버지 피카소는 마리테레즈를 평화와 자유의 여신처럼 신성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 게르니카와 큐비즘의 시작을 알리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비롯해 에로틱한 누드화, 그로테스크한 작품 등 다양하고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피카소의 70년간 지칠 줄 모르는 창작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여러 명의 연인이자 뮤즈에서일까. 연인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영감을 받아서일까. 아름다움을 향한 피카소의 열정과 창작력은 놀랍기만 하다. 내가 마주친 피카소 작품 중 젊은 날 미술책에서 본 꿈은 여전히 나의 꿈이자 환상이다. 잊을 수 없는 옛사랑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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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15 18:22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인간은 어디까지 걸어야 할까

전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20세기 천재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남긴 말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 한국특별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21일부터 4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조각, 회화, 판화, 사진, 영상 등 총 120점이 전시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01년 스위스 이탈리아 국경 인근마을에서 태어났다. 알베르토 아버지 조반니 자코메티는 어린 알베르토가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알아본다. 1919년 제네바 미술공예학교에 진학한 자코메티는 아버지의 지원과 격려를 아낌없이 받았다. 졸업 후 1922년 파리로 간 자코메티는 프랑스 시인 앙드레 부르통을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자들과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0여년이 지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에서 벗어나 경이로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자코메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거칠고 강한 인상의 입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조각이든 그림과 데생이든 대상이 주변과의 관계와 거리, 크기, 색깔, 움직임, 심지어 생명력 등을 자신의 시각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리하여 전후 위태로운 인간의 실존을 딛고,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앙상한 뼈대로 죽을 힘을 다해 걸어가는 사람이 완성되었다. 걸어가는 사람은 일생동안 예술적 모험과 도전을 끊임없이 모색한 자코메티의 불멸의 작품이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라고 자코메티는 연극 대사의 독백처럼 글을 남겼다. 사무엘 베케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우리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건 말이야 인간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무대장치는 자코메티가 맡았다. 문학과 미술에서 두 거장이 만나 불후의 연극이 만들어졌다.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끝없이 올려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시지푸스가 떠오르는 전시다. 한 예술가의 고독과 불안, 지난한 삶의 여정이 추위를 무색케 한다. 나는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가 자문해본다.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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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5 18:42

['알렉산더 지라드-디자이너의 세계展'] 상상력 뛰어넘는 세련미

알렉산더 지라드- 디자이너의 세계展이 지난해 말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1907~1993)의 작품 총 7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라드는 건축, 상업,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디자인한 작품을 4부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세련된 감각의 작품들이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지라드는 유년기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낸 후 런던과 로마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와 192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디자인 커리어를 쌓았다. 인테리어, 건축, 가구, 텍스타일, 소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상업디자이너다. 구조적이며 유기적일 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패턴까지 풍부하고 다양하게 디자인했다. 색상 또한 화려하고 선명했으며 당시 그의 디자인은 모던 리빙아트와 포크아트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시는 4부로 나뉜다. 1부는 지라드가 런던과 로마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드로잉과 수집품을 보여준다. 다양한 아파트 드로잉과 인테리어, 라디오와 턴테이블 등을 디자인했다. 2부는 색, 패턴, 텍스타일 작품을 선보인다. 1950년대 지라드는 허만 밀러社의 텍스타일 디자인 디렉터로서 1970년대 초까지 300여점의 텍스타일과 벽지를 디자인하여 허만 밀러사의 대표 상품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화려한 색상과 이색적이며 장식적인, 심지어 의인화시킨 패턴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3부는 기업에서 토탈디자인으로 옮긴 지라드의 작품들이다. 미국 브래니프 항공사로부터 의뢰를 받은 지라드는 7가지 색상을 이용해서 기업의 로고, 비행기의 외관과 내부, 식기, 탑승객 라운지, 실내가구 등 토탈디자인을 맡았다. 4부는 수집과 설치로 지라드가 십대부터 모으기 시작한 수집품을 보여준다. 포크아트 수집가로서의 열정과 영감을 준 실제 소품들을 볼 수 있다. 그의 상상력의 근원을 추측할 수 있다. 전시회를 마치고 나오니 지라드의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 압도되었다. 지라드의 모던하고 기학학적인 패턴과 스타일이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웠다. 특히 따뜻하고 밝은 색상과 아기자기한 조합이 행복을 선사한다. 동짓달에 꽃 본 듯 신선하다.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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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0 23:02

['색채의 황홀: 마리 로랑생' 특별전] 우아하고 몽환적인 시선

잊혀진 여인은 가장 슬프다.라는 시 구절을 남긴 시인이자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983~1956) 전시회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지난 9일부터 내년 3월 11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림, 일러스트, 데생 등 160점 특별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벨 에뽀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몽마르뜨 카페 세탁선에 모여 밤새도록 떠들고 마시며 예술을 논하던 때였다. 그 중에는 마리 로랑생을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루소, 기욤 아폴리네르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마리 로랑생은 초기에 그곳에서 만난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몇 년 후에는 그들의 화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선과 색상들을 활용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흐르는 듯 부드러운 곡선과 여성스럽고 우아한 색상을 사용했다. 로랑생은 주로 동화 속의 요정이나 아름다운 소녀들이 파스텔 색채로 환상이나 꿈을 꾸는 듯 감각적이며 신비로운 화면을 창조했다. 로랑생은 시대를 앞서갔다. 블루, 그린, 핑크 등의 색깔을 회색과 미묘하게 배합하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현대적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한 색 블루와 사랑스러움을 상징하는 핑크, 특히 산호색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우아함은 대비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를 구현했다. 로랑생 그림 속 여인들은 독특하게 보인다. 로랑생의 그림에는 눈썹이 없거나 옅게, 눈은 눈동자가 없이 타원형의 검은색으로 칠한 얼굴이 많다. 영혼의 창인 눈을 그렇게 그린 것은 자신이 사생아 출신임을 감추고 싶어서일까. 코도 분명치 않게, 입은 조그맣고 여성스럽게 그렸다. 그림에는 자연, 꽃, 새, 강아지 등을 등장시켜 더욱 환상적으로 보였다. 로랑생은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 중에는 샤넬의 초상화도 있었다. 샤넬은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자신이 아니라며 로랑생에게 돌려보냈다. 샤넬은 초상화 속에서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외롭게 일인용 의자에 앉아 당시 나이 40세밖에 안됐지만, 황혼 속 어둡고 지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과 고단한 삶을 이어온, 감추고 싶은 샤넬의 복잡한 내면을 로랑생은 압축해 표현했다. 이 작품은 로랑생의 걸작으로 꼽혔지만 아쉽게도 이번 전시회에는 빠졌다. 로랑생은 자신을 비롯해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만,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려도 결국 자신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전에 로랑생은 발레단 의상과 무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시인으로서도 재능을 펼쳤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뮤즈이자 연인이었던 로랑생은 그와의 애절한 이별을 잊혀진 여인은 가장 슬프다로 표현했다. 전시회에서 준비한 영상 로랑생의 생애 중 말년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죽기 며칠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로랑생은 하얀 드레스를 입히고 장미꽃 한 송이와 아폴리네르가 보낸 편지를 가슴에 안겨 묻어달라고 유서에 남겼다.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한 73년의 삶을 로랑생은 그렇게 마감한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7.12.22 23:02

[갤러리현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전] 파편의 틈에서 자유로운 상상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9월 21일부터 11월 5일까지 영국 개념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개인전 All in All을 개최하고 있다. 30여점의 회화작품으로 2012년 이후 갤러리현대에서 5년 만에 열린 개인전이다.1941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크레이그-마틴은 미국 예일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당시 화단을 주도했던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 현대미술을 경험하고 미술작업을 시작했다. 1966년 영국으로 돌아온 19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재직하며 영국의 젊은 미술가(YBA)들을 양성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흄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길러냈다.일상과 예술의 경계선에 대한 크레이그-마틴의 탐구는 그의 작품세계의 주제다. 메모리스틱, 차량운전대, 코르크 마개뽑이, 선글라스 등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이 대상이 된다. 대상의 끝을 잘라버리고 몸통만 보여줘 파편과 파편들로 화면을 배치하는 기법이다. 이렇듯 크레이그-마틴은 전통적인 회화와는 전혀 다른 기법을 사용하며 회화를 보는 개인의 내재된 무의식과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회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바라보기를 촉구한다.크레이그-마틴은 제자들에게 너 자신을 표현하라고 주문하며 자신의 정체성이 들어간 작품을 만드는 것을 항상 강조했다. 너 자신이 행복하고 몰입할 수 있는 작업을 하라고 덧붙였다. 또한 컬러가 작품을 섹시하게 한다고 말한 그는 더 극단적으로 가라고 주장하며 강렬한 원색을 즐겨 썼다. 그렇다고 형광색은 오히려 작품을 생기 없이 만든다고 쓰지 않았다. 간결한 형태와 결합된 색상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다르게 만든다. 간단명료한 색과 형태는 너무 단순해서 강렬하게 다가온다.그는 끊임없이 일상과 예술의 경계선에 서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국 현대미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과 작년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76세인 크레이그-마틴은 지금이 자신의 최고 전성기라고 한다.그는 초록과 파랑, 하늘색과 노랑, 파랑과 핑크, 보라와 파랑 등 원색을 세련되게 써서 좋다. 단순하고 클로즈업한 형태도 또한 모던하고 신선하다. 간결미의 극치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라는 크레이그-마틴의 말을 되뇌어 본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7.10.17 23:02

[중국의 독보적인 거장 '치바이스'전] 강인한 생명력 넘치는 붓놀림

오만한 중국이 사드보복을 점점 거세게 하는 가운데 중국의 독보적인 거장로 알려진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 작품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7월 31일부터 10월 8일까지 치바이스- 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라는 타이틀로 총 136점을 선보이고 있다.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특별전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삶이 계속되듯이 양국의 문화교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반가운 전시다.치바이스는 호남성 상담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공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는 독학으로 시서화각(詩書畵刻) 4예를 익혔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로 자연과 일상의 흔한 소재를 팔십 여년에 걸쳐 무수히 반복 묘사했고, 그 결과 대상의 본질과 미의 질서를 마스터했다. 그는 주로 꽃, 새, 풀, 벌레 등 살아있는 생물을 그렸다. 그 생생함은 생명력 그 자체다. 가슴에 삼라만상을 품고, 손끝으로 조화를 이루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게 된다.철저한 노력가인 치바이스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픔을 견딜 수 없었을 때와 죽기 전 십여 일 만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렸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치바이스는 서구 열강의 침공, 청조 패망, 서구문명과 공산주의 득세, 일본의 침략 등 격변의 20세기를 관통하며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했다. 생활 주변에서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풍자와 해학으로 녹여내며 자연스럽게 평화사상을 표출했다.전시회 그림 병아리와 풀벌레에서 오동통하게 그려진 병아리는 생동감과 어린 생명의 사랑스러움이 넘쳐난다. 보고 또 보고 싶다. 귀여운 어린 손자를 보고 또 보고 싶듯이. 새우는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물소는 유유자적하며 놀고 있는 듯, 평화와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오이 넝쿨과 청개구리에서 주렁주렁 달린 오이와 개구리는 시골의 한가하고 느긋한 한 때가 느껴진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냥 편안하다.그는 또한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고향산천과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림 그리듯이 시를 지었다고 술회했다.나는 예술가의 얼굴과 영혼의 거울인 눈을 보기 좋아한다. 사진 속 치바이스는 만년에 인자하고 평화로운 얼굴이었고 눈은 깊고 깊었다. 거장다운 모습이었다.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 난 후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자연과 예술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가 새삼스럽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7.09.19 23:02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림 라시드' 展] 곡선의 멋…21세기 시적 디자인

세계 3대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전이 지난 6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디자인이란 우리의 삶을 시적미학적실험적감각적감성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라고 카림 라시드는 자신의 미학을 피력한 바 있다.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감각적인 미니멀리즘(Sensual Minimal ism), 또는 센슈얼리즘(Sensual ism)이라고 지칭하며 3000개가 넘는 작품을 디자인했다. 300개 이상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기록도 세웠다.지난 1996년 그가 디자인한 가르보 쓰레기통(Garbo Trash Can)은 기존의 사각의 틀을 깨고 곡선으로 미국에서만 수백만 개가 팔리고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 MA)에 영구 컬렉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카림 라시드는 이집트인 화가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 196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어릴 적 캐나다로 이주한 후 몬트리올 엑스포 67에 가는 행운의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곡선으로 완벽한 궁형의 20층 돔, 입방체, 다각형, 유리판과 알루미늄판이 교체하는 건축물 등 일곱 살의 어린 카림 라시드의 눈을 사로잡았다. 전시된 건축물들은 지울 수 없는 인상과 각인을 남겼다. 또한 이민자들이 모여든 캐나다의 다문화도 그를 글로벌한 세계인으로 키웠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대학을 다닌 그에게 이탈리아의 문화와 대학 강의는 그의 디자인과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현대는 인간이 만든 무수한 물건들로 넘쳐난다. 대부분 직선으로 되어있다. 조물주가 만든 인체와 자연에는 직선으로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곡선을 사용해 가장 시적(詩的)인 디자인을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동시에 실용적이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자연스럽게 흐르듯 유려한 곡선으로 디자인한 그의 작품들은 심플하고 혁신적이며 모던하다. 또한 화려한 색상의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핑크를 많이 사용했다.그는 핑크는 긍정적이며 속세에서 초연한, 고상한 색이라 생각한다. 또한 명확하며 낙관적인 에너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며 핑크를 가장 사랑하는 색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핑크를 사랑하는 점도 나와 같고, 강렬한 색상과 심플하며 감각적인 디자인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의 보색 대비는 천박하지 않고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신세계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7.07.28 23:02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사진과 명화 이야기'전] 패션, 명화를 입다

패션(Fashion)은 패션(Passion)이다. 즉 열정이다.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VOGUE like a painting) 사진과 명화 이야기전이 지난 6월 24일부터 10월 7일까지 열리고 있다. 125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가 엄선한 1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명품드레스 및 오브제, 환상적인 영상까지 제공한다.보그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만들어 봅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보그전은 미술사에 있어 시대를 상징하는 명화에서 받은 영감을 매력적인 사진으로 옮겨놓았다. 특히 바로크시대의 카라바조에서 시작해 마티스, 잭슨 폴락 등 현대작가까지 명화의 고전에서 받은 영감을 사진작가들이 보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명화를 재탄생시킨 전시회다. 이번 전시는 세월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명화처럼 패션사진의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풍경화 오필리아를 사진작가 머트 알라스와 마커스 피고트가 해석한 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밀레이의 명화에는 은은한 갈색의 드레스를 입은 햄릿의 비극의 주인공 오필리아가 꽃을 들고 수초가 무성한 연못에 얼이 빠진 채 가로로 떠있다. 반면 사진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초록의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잎사귀들 사이에 세로로 연못 바위에 어깨를 뉘이고 있다.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고 주체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오필리아는 운명에 끌려가지 않고 선택하는 현대적 여성인가.마티스의 추상화 다발에서 영감을 받은 사진작가 세실 비튼의 작품은 마티스처럼 색종이를 오려 장식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한 팔을 머리위로 올리고 다른 한 팔은 하얀 밀짚모자를 잡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멀리 내려다보는 사진이다. 여인의 도도한 표정이 맘에 들고, 솟아오르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원화를 재구성한 구도도 돋보인다.최근 화제에 오른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에 출연한 틸다 스윈튼이 나온 작품도 눈에 띄었다. 독특한 마스크의 소유자 틸다 스윈튼이 한옥의 대문에 기대어 흰색의 블라우스와 검정색 바지투피스를 입고 눈을 살짝 내려감은 사진도 모델만큼이나 독특했다.명화, 사진, 패션, 사물, 인간, 자연. 무엇을 보든 열정을 가지고 넓고 깊게 보는 안목을 키워야 본질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7.07.21 23:02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 생명력 넘치는 자유로운 붓질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이 지난 3일부터 8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 1876년~1958년)는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를 이끈 프랑스 모던아트의 거장이다.인상파 화가들은 한국 대중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마티스를 제외하고는 야수파 화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고흐와 고갱, 세잔 등 후기인상파가 한국에 주로 소개됐었다.바이올린 연주자와 사이클 선수로도 활약했던 블라맹크는 20대 초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그는 1901년 유럽 미술계에 새로운 영향을 끼친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를 보고 큰 감동과 자극을 받았다. 이후 앙리 마티스를 만나고 앵데팡당전에 처음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야수파의 격정적인 표현을 구사하기 시작했다.1905년 살롱 도톤에 블라맹크 등 몇 명의 화가들의 주관적이며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작품들이 전시된 후 야수라는 말이 처음 붙여졌다. 야수파 화가들은 자연을 그리되 감정의 격정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원색들을 캔버스에 도발적으로 대담하게 채우기 시작했다.1907년부터 블라맹크는 야수파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는 회색과 흰색, 검은색에 가까운 청색을 두껍게 칠한 풍경화로 방향을 바꾸었다.폴 세잔의 말년 작품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으나, 뛰어난 구도는 어느 화가도 구사하지 못하는 그만의 것이다. 그는 생명력이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속도감이 있는 필치로 무겁지만 보석 같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는 자신만의 뚜렷하고 투철한 프랑스 표현주의 양식을 확립한 것이다.그는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그 풍경과의 관계를 기교 없는 솔직함과 모든 형식주의를 거부한, 거칠지만 자유로운 붓 터치로 구사했다. 특히 눈 내린 겨울 풍경화들은 수직선과 사선의 강한 힘이 느껴지며 흑과 백의 날카로운 대비로 블라맹크 내면의 휘몰아치는 고독과 고뇌가 피부에 와 닿는다. 심지어 비장하고 고절(高絶)하기까지 하다.나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어떠한 것도 원한 것이 없었다.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본 것을 그렸다.라고 그는 유언을 남겼다. 블라맹크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향유하며 감사하는 행복한 화가의 삶을 살았다.보석 같은 새로운 화가의 발견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며 부럽기까지 하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7.06.05 23:02

[광주시립미술관 '진원장: 꿈의 정원'전] 우리 마음 속 꿈의 정원은

지난달 13일부터 7월 16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원장: 꿈의 정원전이 열리고 있다.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진원장 화가는 자신만의 빛과 색채, 조형미를 통해 꿈의 정원을 보여주고 있다.고흐가 프랑스 남부에서, 마티스가 모로코와 지중해에서, 고갱이 타이티의 강렬한 태양 밑에서 화려한 색채를 구사했듯이 전남 해남이 고향인 진원장 화가도 마찬가지다. 진원장 화가도 남도의 뜨거운 태양의 세례를 받았다.청보리와 완두콩, 무꽃과 배추꽃, 새들이 어우러진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자연을 단순화한 형태와 빼어난 색감으로 표현했다. 특히 항아리와 달, 버드나무 등 우아하지만 독특한 필치로 서정적인 꿈의 정원을 구현했다.그의 작품은 평면적이다. 원근을 초월한 평면으로 여러 부분으로 분할된 면은 명암에 의해 대비를 드러낸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도 평면적이다. 클림트의 작품은 금색을 많이 사용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이지만 전혀 천박하지 않고 독특하며 품격이 있다. 반면 진원장 화가의 작품은 차분하며 서정성이 넘쳐나면서 품위가 있다. 그는 연륜이 쌓인 중견화가답게 관조를 넘어선 자유를 구가하고 있는 듯하다.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과 비현실감도 느껴진다. 꽃에 둘러쌓인 소녀의 옆모습이나 잠든 모습들이 그러하다.일본의 천재적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1990년 작품 꿈(Dreams)의 장면이 떠오른다. 한 시골 소년이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언덕에서 무지개를 쫓아다니는 봄 풍경이었다. 진원장 화가의 꿈의 정원이 있듯이 우리들도 꿈이 있고 꿈의 정원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 문화일반
  • 서유진
  • 2017.05.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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