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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나포 혜곡마을 김형산·이상임 부부】'산야초 효소'로 새로운 농촌소득원 도전

해마다 봄이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산야초(山野草). 서울 광진구에서 인테리어 업에 종사하던 김형산이상임 부부는 3남매의 자녀와 함께 부유하지는 않지만 여느 가정처럼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 왔다. 연립주택에 살던 이들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이웃에 사는 중학생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알게 됐다.심한 아토피로 피부가 짓물러 교복까지 젖어 귀가할 정도로 증세가 심했지만 효소 치료를 시작하면서 점차 아토피 증세가 호전돼 가는 광경을 지켜보게 됐다. 특히 이들 효소가 산과 들에 피어나는 산야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인 이상임 씨는 산야초의 매력에 푹 빠져 직접 산과 들로 산야초를 채집하러 다니기 시작했다.하지만 서울에서 산야초를 구하는 것이 시간공간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느낀 부인 이 씨는 남편 김 씨와 함께 남편의 고향인 군산 나포면으로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나포리 혜곡마을에서 빈집을 찾은 부부는 제대로 된 귀농귀촌 정보수집도 없이 2011년 7월 2일 결심 한달여만에 이사를 감행하는 등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출가하고 수도권에서 직장과 대학생활을 하면서 부부 둘만의 귀촌생활이 시작됐지만, 막상 서울 집을 매각하고 융자금을 변제하고 나니 금전적으로 빠듯했다.당장 호구지책을 위해 일당제 일을 나가는 등 힘든 농촌생활이 시작됐지만,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야초가 이들 부부에게 위안이 됐다.시간만 나면 산야초 효소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산과 들로 다니며 때로는 밤 9~10시까지 산야초를 수집해 옹기 항아리에 담아 효소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했지만 항아리 마련조차 여의치 않았다.특히 이들 부부에게 이웃들과의 생활문화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귀촌생활에 최대 위기가 찾아 왔다.쓰레기를 소각하는 이웃에게 분리수거하면 될 것을 왜 태우느냐고 물어 보았다가 주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 것이다.이 일로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지 고민도 했지만, 여기에서 포기하고 떠나면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기필코 성공해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과정에서 먼저 귀촌해 옆집에 살고 있던 조옥선(75) 할머니가 큰 위로가 되면서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이와 함께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프로그램도 알게 돼 농촌생활에서 필요한 교육과 지원을 정식으로 받으면서 부부의 귀촌생활은 안정세에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집수리까지 말끔히 마쳤다.이제 올 여름만 지나면 귀촌과 함께 담기 시작했던 100여종의 산야초 효소들이 2년의 숙성기간을 마치기 시작한다.김형산이상임 부부는 각각의 항아리를 2~3일 간격으로 저어주며 완숙된 효소들이 모습을 드러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부부는 효소를 활용해 벼농사 이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마을에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효소 카페도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채취할 수 없는 약초들을 재배하기 위한 재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신청해 선정되는 경사를 맞았으며, 효소 판매를 위한 식품판매허가 취득을 추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또 쌀뜨물 등 천연재료들을 사흘 간 숙성시킨 후 4주 이상의 과정을 거친 비누, 샴푸와 세제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귀촌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에 자녀들도 "귀촌 이후 모든 일을 엄마와 아빠가 손발을 맞춰가며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격려를 보내고 있다.김형산이상임 부부는 "최소한의 준비기간을 2년으로 잡고 준비해 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수입을 가늠할 수는 없다"며 "아직 숙성기간이 지나지 않고 판매 허가도 취득하지 못했는데 벌써 효소에 대해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이어 "그동안 선도농가를 찾아다니며 1일 8시간씩 받아 온 귀농귀촌 교육이 무작정 귀촌으로 좌충우돌하던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서울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늘 허덕이며 살아 왔는데, 귀촌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너무 좋고 주변에서도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일권
  • 2013.05.29 23:02

【군산시 귀농귀촌 정책】농지 임차료·농기계 우선 지원 등 타지역과 차별화

군산시는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2017년까지 귀농귀촌 400세대 유입을 목표로 각종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시는 베이붐 세대의 대거 은퇴가 시작되는 등 귀농귀촌에 관심이 고조된 시기적 흐름에 발맞추어 타 지역과 차별화 된 정책을 마련했거나 마련할 방침이다.차별화된 지원 정책으로는 귀농귀촌인이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 할 수 있도록 '귀농귀촌인 지원 조례' 제정을 꼽고 있다.시는 조례를 근거로 1억원까지 연3% 1년거치 5~10년 상환 조건으로 귀농인 뿐만 아니라 귀촌인까지 자체적으로 귀농귀촌 창업자금을 융자해 준다. 여기에 정부 귀농 창업자금 2억원(연3%, 5년거치 10년 상환)까지 받게 되면, 개인별 최대 3억원까지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다.또 쾌적한 주거 환경 제공을 위해 농가 주택 신축 또는 구입 시 4000만원까지 융자해 주며, 내년부터 이사 비용으로 세대당 50만원을 보조해 줄 예정이며, 귀농인의 농가주택 수리비를 가구당 500만원 이내에서 보조해 준다. 특히 군산 지역의 토지 가격이 타 군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농지구입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농지 임차료를 지원하고, 중소형 농기계 우선지원, 비가림 하우스 지원 대상 우선 선정 기준을 마련해 시행함으로써 귀농초기 안정적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이밖에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상담 지원, 각 작목별 영농정보 및 기술지도 교육. 농기계임대, 귀농귀촌 현장실습지원, 수도권귀농학교 운영 등을 하고 있으며 귀농귀촌 종합정보관리서비스를 통해 빈집정보, 농지정보, 멘토링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착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기획
  • 이일권
  • 2013.05.29 23:02

창업자금·영농정보·상담지원 등 귀농인 조기정착 초점

부안군이 최근 농어촌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는 귀농귀촌인들을 유치하고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군은 부안지역에 정착하려는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우선 귀농창업자금을 최대 2억원(연3%, 5년거치 10년 상환)까지 융자 지원하고 있다. 농가주택신축 또는 구입 시에도 융자를 4000만원까지 지원한다. 또 연 2% 1년거치 1년상환을 조건으로 영농안정기금을 3000만원까지 지원하며 주택수리비도 가구당 500만원 이내에서 보조해준다. 영농정보도 제공한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귀농귀촌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작목별 영농정보를 매월 제공하는 한편 농어민신문을 1년간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상담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센터를 통해 여성들의 상담을 지원하고 있으며 농업기술센터 내 귀농귀촌 종합상담실도 설치, 운영 중이다.농업택지 정보와 농지가격 자료 제공은 물론 농촌빈집정보 자료 제공 등 귀농귀촌 관련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특히 민간조직을 통한 귀농귀촌 네트워크 활성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부안군 귀농귀촌협의회가 출범해 귀농귀촌인들 상호간 협력과 동시에 성공적인 귀농사례를 상호 교환하는 등 조기 정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와 함께 16개 농업관련 단체들과 토착 지역민들과도 친목도모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나아가 녹색농촌체험마을 등 특화마을과 재능을 가진 귀농인들을 연계, 일자리 창출 등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부안군 농업축산과 관계자는 "최근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부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으며 문의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며 "귀농귀촌인들이 부안 군민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해 질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 및 정책들을 발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양병대
  • 2013.05.22 23:02

【부안 하서면 정착 2년차 석승인씨】"초보지만 하우스 참머위로 '부농' 꿈 도전"

'농부의 마음으로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성공적인 제2의 삶을 일구려 합니다"석 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는 37년 동안 개인사업과 회사생활을 해오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할 나위 없이 가득했다" 며 "무엇보다 건강 악화로 힘들어 하시는 부친과 모친을 모시기 위한 게 귀촌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8형제의 장남이라는 석 씨의 이 같은 결정은 형제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부친과 모친을 돌봐야 하는 형제들에게 부담을 덜 수 있게 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형제간 우애가 더더욱 돈독해졌다는 것이다.석 씨는 지난 1년 동안 귀농교육과 블로그 운영 교육을 받고 벤처농업대학을 다니며 농업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또 쇼핑몰 플레너 3급, 산업건설기계운전교육 등을 통한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부안군 참머위작목반을 결성해 부반장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급기야 참머위를 소득사업으로 추천받아 전문 강의와 선진지 방문 등 참머위 재배에 나섰다.현재 귀농창업자금으로 논(답) 2필지를 구입하고 시설하우스도 4동을 선정 받아 현재 참머위 재배가 한창이다. 물론 현재 매출은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내년 2월말까지 시설하우스 한 동당 1600만~2000만원 상당의 소득 발생으로 순소득 4000만원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시설하우스 4동을 추가해 연봉 1억원에 도전하겠다고 계획이다.석 씨는 "평소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면서 "초보 농군의 기본은 교육생 농부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지금보다 나은 희망을 하나하나 심어 제2의 삶의 엮어가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귀농귀촌에 대한 만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밭에서 직접 키운 싱싱한 야채와 주변 야생에서 자라는 먹거리는 가족들을 위한 최고의 건강식이라는 것.석 씨는 "산, 들, 바다 등 천혜의 자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흙 내음과 벗 삼아 사노라면 아무리 몸이 고되고 힘들어도 누구를 탓하고 부러울 것이 없으니 나라님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부인 조단녀(51)씨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도 내비쳤다.석 씨는 "집사람도 처음에는 교통문화의료소통의 어려움을 들어 불평을 했었다" 며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적응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미소를 띠었다.최근에는 자연산 미나리를 지인들에게 보내주면서 농산물 직거래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석 씨는 "아직도 농촌생활이 서툴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야생 자연산 미나리를 20㎏ 5박스를 지인들에게 보내줬더니 고맙다는 전화를 걸어와 직접 가꾸고 있는 농산물의 구매의사를 보였다" 며 "도시민의 숨어 있는 감성을 자극해 또 다른 농산물을 직거래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귀농귀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직언했다.석 씨는 "귀농귀촌인 중 대다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2억원의 창업자금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며 "귀농교육과 사업조건을 갖추고도 실질적인 대출조건은 금융권 대출의 담보능력인 만큼 우선적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난 뒤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실패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 씨의 손에는 삽자루가 쥐어져 있다. 도시생활 중 항상 손에 쥐어져 있던 펜 보다 삽자루가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 석 씨는 농부로 부안군민으로 제2의 삶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 아닐까?

  • 기획
  • 양병대
  • 2013.05.22 23:02

【고창 고수면 정착 4년차 김한성씨】푸른잔디에 솟아나는 '억대 부농의 희망'

'옛날 잔디'는 묘지나 정원에 최적인 잔디로 (사)고창군귀농귀촌협의회 김한성 회장이 운영하는 '옛날잔디영농조합법인'의 브랜드명이다. 김한성 회장은 2009년 3월 가족과 떨어져 혼자 고창군 고수면 고향으로 귀농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등으로 반대하던 아내는 그해 8월에 세 자녀와 함께 내려 왔고, 4년이 지난 지금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생명력이 강한 잔디는 재배가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잡초제거를 손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일손이 많이 가는 작목이다. 2만평 넓은 잔디밭을 볼때는 아득하지만 어느 새 일이 마무리 되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과 보람을 느낍니다. 잔디는 묘에 많이 쓰는 작물이라 납품시간을 절대 어겨서는 안됩니다. 납품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른 새벽에 자동차 불빛만을 의존해 온 가족이 작업을 해야 하는 때가 많습니다."김 회장이 잔디농사를 시작하게 된 인연은 20여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년 전 김 회장의 아버지는 우연히 잔디 집산지(전남 장성군 삼서면)를 지나가다 잔디를 갈아 엎는 걸 보게 됐다. "옛날 잔디는 키가 작고 병충해에 강하지만, 생육 기간이 길어 수익이 맞지 않아 신품종으로 바꾸기 위해 갈아 엎는다"는 농부의 말을 듣고, '키가 작고 병충해에 강한 옛날잔디의 장점을 이용해 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김 회장 아버지는 4~5년이 지나면 썩음병으로 죽는 요즘 잔디에 비해 생명력이 강한 옛날 잔디의 장점을 부각 시킨다면 판매가 괜찮을 것으로 판단하고 잔디 재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장묘 문화의 변화로 판매량이 줄어들고 힘이 들어 농사일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4형제 중 아무도 승계하지 않으면 잔디 농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아버지의 말씀을 쫓아 김 회장은 귀농을 결심했다. 김 회장은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힘들게 일군 사업에 너무 쉽게 손을 대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다는 평소의 생각과 미래의 농촌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귀농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물론 그도 모든 귀농인들이 겪듯이 시골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키면서 가족에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오랜 세월 동안 닦아 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시작했음에도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트랙터, 진동롤러 등 기계화로 부족한 일손을 채웠으며, 형님을 설득하여 귀농하게 했다. 고창군농업기술센터의 귀농귀촌학교를 통해 정착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김 회장은 "농사도 중요하지만 귀농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며, 이런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노하우를 나누는 것이 귀농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김 회장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곧바로 후배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동료들과 우여곡절을 거쳐 (사)고창군귀농귀촌협의회를 설립하고, 임기 3년의 초대회장을 맏아 귀농귀촌인들의 중심에서 그들의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돕고 있다.김 회장은 "고창군은 복분자, 수박, 불루베리, 인삼, 고추, 땅콩, 고구마, 풍천장어, 오디 등 특산물이 많아 귀농지로 선택하는데 유리하다."며 "이미 작목반이나 연구회를 통해 기술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고, 판로도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되며, 또한 귀농귀촌T/F팀의 영농상담과 귀농 정보 제공 등은 귀농귀촌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이곳으로의 귀농을 권한다. 그는 또 "직업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 귀농에 도전해 보라"며 "앞으로 몇년 후면 지금 귀농한 사람들이 각 마을을 이끌어 가게 될 것이며, 부지런한 귀농귀촌인이 늘어 갈수록 농촌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고 확신한다.

  • 기획
  • 김성규
  • 2013.05.15 23:02

TF팀 가동 6년간 총 3860명 새 둥지… 전국 귀농 1번지 부상

고창군은 2007년 전북 최초로 귀농인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귀농귀촌학교 운영, 농가주택수리비 및 영농정착금 지원 등 체계적으로 귀농귀촌자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갈수록 증가하는 귀농귀촌인의 불편 해소와 욕구 충족에 한발 더 다가서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귀농귀촌 TF팀'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그 결과 2012년까지 6년간 총 3860명의 귀농귀촌인이 고창에 새둥지를 틀었다. 특히, 2011년 494세대 1298명, 2012년 787세대 1465명이 귀농귀촌하여 전국 최고의 귀농귀촌 1번지로 부상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고창군에 정착한 귀농귀촌인 중 50대 이하 가구가 83%를 차지하여 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과 인구 감소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성과들을 인정받아 '2012 대한민국 귀농귀촌 페스티벌'에서 우수지자체로 선정되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기관표창을 수상했으며, 농식품부 공모사업인 '2013 도시민 농촌유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6억원(국50%, 도10%, 군40%)의 사업비를 3년간(2013~2015)지원 받게 되었다. 또한 지난 4월 25일 조선경제i(대표 김영수)가 주관하고 조선일보조선TV한국마케팅학회에서 후원한 '2013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대상' 귀농귀촌도시 부문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로 선정되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창군은 앞으로도 이론과 실습을 병행할 수 있는 맞춤형 Family 5563 정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육생을 찾아가는 교육마케팅을 전개하기 위해 수도권 귀농예정자 고창반 교육을 신설할 계획이며, 소규모 귀농귀촌마을 기반조성과 재능 있는 귀농귀촌인을 활용한 집 고쳐주기, 체류형 둥지 등 주거안정을 위한 거주공간 확보, 지역민과 갈등해소를 위한 집들이, 귀농귀촌인 유치 우수마을 시상, 지역민과 함께하는 한마음대회 등을 추진하여 귀농귀촌인이 고창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 기획
  • 김성규
  • 2013.05.15 23:02

순창 동계면 정착 김석균씨 "흙·볏짚·왕겨로 친환경 보금자리 만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자연의 재료로 따뜻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 순창군에 생태건축학교와 교육전시관을 만들어서 기술을 같이 나누고 직접 만든 집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지난달 순창군에서는 도내 최초로 이색적인 귀농귀촌 페스티벌이 열렸다.이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그는 '흙으로 만드는 따뜻한 세상'이라는 부스를 운영하면서 흙과 볏집을 이용해 집을 짓는 방법을 직접 실습을 통해 설명하면서 흙사랑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다른 곳보다도 특히 인기가 좋았던 이 부스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흙 집에 대한 동경을 이끌어냈다."벽에 볏짚을 채우고, 거기에 흙으로 미장하면 된다.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가지고 지으면 단열이 잘돼 연료비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그의 설명을 듣고 예비 귀농귀촌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김씨는 지난 1월 8일 순창군으로 귀촌했다.정읍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주에서 다녔고, 졸업 이후 진안, 장수, 무주, 나주, 충남 공주 등에서 다양한 직업을 거치다 결국 농촌에 정착하겠다는 마음으로 순창을 찾았다.전라북도 내에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고 있을 때 순창군귀농귀촌지원센터장인 이수형씨의 소개로 순창에 오기로 결심했다.15년동안 생태건축을 하면서 귀농귀촌센터의 강사로 일해 온 인연이 순창으로 오게 만든 것.순창에 오겠다는 결심과 함께 생태건축학교와 전시관을 지을 생각부터 했다. 김씨는 자신이 구상하는 적당한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순창 이곳저곳을 찾아다녔고 다행히 동계면에 알맞는 장소가 있었다.창고를 매입해 생태건축 교육관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은 5월부터 7월까지 2개월가량 소요된다. 일단 교육관이 지어지면 주위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예비 사회적기업도 신청할 계획이다.김씨는 "이미 충남 공주에서 생태건축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경력이 있기에 여럿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면 집을 지을때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순창에서도 교육관과 전시관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면 생태협동조합을 만들고, 따뜻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흙집을 지을 계획이다"고 말했다."많은 주변 사람들이 자연의 재료로 따뜻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자신의 기술을 함께 나누고 생태를 활용한 다양한 정책 개발에도 온 힘을 쏟아부을 작정이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김씨는 이어 "실제로 흙집을 지었으며, 왕겨나 볏집 가지고도 충분히 따뜻하고 아토피나 기관지염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실제로 3개월된 아이가 모세 기관지염에 걸렸을 때 집안환경이 아이의 건강을 헤칠수 있다고 생각한 김씨는 흙집을 짓기 시작했다.친환경 재료인 흙과 볏짚, 왕겨를 이용해 집을 짓자 아이의 건강은 좋아지고 집안은 따뜻해졌다. 70만원이 들어갔던 한달 연료비가 딱 절반인 35만원으로 줄었다. 그때부터 흙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흙이나 볏짚, 왕겨, 돌 등 자연재료들이 많은 이런 농촌에서 사는 것이 무작정 좋다"는 그는 15년간의 건축을 하는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지난 2009년 진안 데미샘마을에선 '엄니들 겨울쉼터 만들기'라는 흙건축 워크캠프를 운영하고 실제로 농촌 어르신들이 겨울내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물론 구들놓기부터 구들돌, 짚과 흙, 아궁이, 볏짚, 창문 등 옛날식 구들장 흙집을 만들어 마을 주민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다. 그곳 어르신들은 두고두고 고맙다는 말을 지금까지 한다고 하니 구들장에 허리 지지고, 온 몸을 지지는 그 맛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나주 담틀집에서는 창호지로 만든 창을 만들어 주는 등 15년동안의 생태건축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다.연극과 풍물에만 10년을, 청년문학회 활동으로 시를 쓰고, 리포터까지, 병원 원무과장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으나, 결국 대학원은 다시 건축을 전공하게 된 그는 "건축이 자기의 천직"이라고 말했다.흙 속에서 흘려 보내며 흙이 손에 익고 건축이 눈에 익어가다보니 "집이란 기술로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철학을 지어가는 것이구나" 깨달았다는 그는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을 꿈으로 삼아 오늘도 내달리고 있다.● 김석균씨가 꿈꾸는 귀촌세상 - 역사문화가 살아있는 농촌 롤 모델 창출김석균씨가 순창에 오기까지는 특히 이수형 귀농취촌센터장의 힘이 컸다.두 사람이 지향하는 귀촌에 대한 꿈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올해부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수형 센터장은 '귀농귀촌인 유치와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를 위해 맞춤형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지역민과 귀농귀촌인이 상생할 수 있는 농촌인프라를 만들어간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있다.특히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농촌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농촌문화를 만들어가며, 시골에서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할 계획이다.또 농촌공동체를 위한 귀농귀촌 우수정착모델을 만들어 순창이 2015년까지 귀농귀촌하기 가장 좋은 지역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이 본부장은 김석균씨와 함께 젊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지역에 맞는 적정기술을 널리 보급할 예정이다. 이들은 또 생태건축과 개량화덕, 보일러, 태양열 등 자연재료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폭넓게 살아갈 수 있는 기술 보급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며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서 진정한 귀농귀촌의 롤 모델을 만들어갈 작정이다.

  • 기획
  • 임남근
  • 2013.05.08 23:02

임실 청웅면 정착 4년차 김종규씨 부부

낮에는 호미로 밭을 갈고 밤에는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사랑하는 이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 간다는 임실군 청웅면의 귀농인 김종규씨(50).△직장인에서 농부가 된 사연 귀농 4년차인 그는 장수가 고향이건만, 지금은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 연동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생산하는 농업인이다.남들은 한창 실패를 거듭하고 이론과 실습을 배우며 적응력을 키워 나가는 시점이지만 김씨는 주변의 좋은 인연으로 초기부터 귀농에 성공한 케이스다.장계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전주에서 학업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 3년여 동안 천안에서 직장생활을 가졌다.천성이 남의 밑에서 일하는 성격이 아닌 탓인지 사표를 썼고 이때 만난 부인의 고향 전주로 내려와 식당을 열었다.새벽부터 시장을 보고 밤 늦게 가게문을 닫아야 하는 와중에도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아 세상사는 재미가 이어졌다.이같은 생활은 12년간 반복됐고 애초부터 생리에 맞지않은 부부는'인생을 삭막하게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감에 젖게 된 것.이쯤에는 자녀들도 학업을 마치고 직장도 구할 나이여서 구질구질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지난 2009년 이들 부부는 온갖 냄새로 찌들은 식당일을 과감히 접기로 결심하고 귀농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앞으로 어떻게 하나'에 대한 첫 행보로 김씨는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완주군 삼례읍의 한 딸기농원을 무작정 찾았다.염치를 불구하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에게 그는"어떻게 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라고 당돌한 질문을 했다.노인 왈"농사는 죽을 때까지 해도 끝이 없는 반면에 쉬운 일만은 아니지"라며"하지만 정년이 없으니 열심히 하면 평생 직장이라네"였다.△임실군 청웅면으로 귀농식당생활을 접고 1년여의 시간을 통해 그는 농사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고향을 찾아 친구도 만나보며 다양한 정보취득에 나섰다.그런던 차에 관심을 끈 것은 친구로부터 들은 임실군 청웅면 원예농가에 대한 정보였고 형수의 고향과 아버지의 묘소가 있다는 점에 자신을 가졌다.2010년 무작정 청웅면사무소를 찾았고 친절한 공무원으로부터 당시 청웅시설원예 회장으로 있던 최동선씨를 소개받았다.시설원예 전문인 최씨를 만난 것은 그에게 커다란 행운이었고 최단 기간 귀농생활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거처할 주택과 시설하우스를 설치하는 농지를 빌리는 데도 최씨를 비롯한 원예협회 회원들이 앞장서서 도움을 줬다.뿐만 아니라 준비기간에도 회원들은 틈틈이 자신들의 농장에 김씨를 초청,기본적 농사정보와 실질적 기술도 전수했다.형제같은 친절과 사랑에 부부는 감동했고 이같은 배려로 그해 가을에는 1500㎡(500평) 규모의 연동하우스를 마련했다.작목은 청웅원예 회원들이 주작으로 하는 큰토마토를 선택, 처음부터 실패없는 귀농생활을 목적으로 결정했다.하지만 거처할 주택을 구하지 못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처음부터 발생했다.신축도 생각했지만, 농사자금으로 쓰여질 거금을 불필요한 곳에 투자하기에는 너무도 액수가 컸다.팔기를 원하고 주택 임대를 꺼리는 시골이기에 골치를 앓았지만 회원들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다행히 문제는 해결됐다.식당 경영으로 축적된 자금 1억5000만원이 시설하우스와 임대비 등으로 투자됐고 부족한 돈은 농협에서 대출을 받았다.첫 수확은 예상과 달리 신기하게도 결실을 맺었고 판매를 통해 돈을 거머쥔 이들 부부는 자신감이 충만했다.물론 이 과정에는 시설원예 농가를 찾아 발이 닳도록 끊임없는 배움에 주력했고 실패에 따른 정신적인 고통도 겪어야 했다.첫 수확으로 5000만원이라는 생산비를 건진 김씨는 이듬해인 2011년 하우스를 3배 규모인 4500㎡(1500평)으로 확대했다.● 김종규씨의 큰토마토 재배- 토경양액 방식으로 5㎏들이 1만 2000상자 생산주작목이 큰토마토인 김종규씨의 농장은 8월께 심은 모종을 6개월 후인 2월에 정식, 4월 수확을 거두는 방식을 택했다.가격 변동이 심한 까닭에 여름 수확보다는 겨울을 갓 지난후 시장에 내다 팔아야 제값을 받기 때문이다. 모종 이식후 성장까지의 기간은 120일이 걸리지만 이때부터 8개월간은 연속적으로 수확에만 전념한다.하지만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까닭에 소득의 대부분을 난방비로 소비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기름을 이용하는 난방비의 규모가 농가에 따라 1개월에 800만원 가량이 소비되지만 전기 등을 사용하면 500만원 정도에 그친다. 올들어 그의 연동하우스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대추형방울토마토와 방울토마토 2종이 심어진 가운데 성장중에 있다.재배농법은 토경과 양액재배 방식을 택했으나 토경재배의 경우 기술이 부족해 장수와 완주, 남원 등지의 전문 생산단지를 찾아 농법을 익혔다.이같은 방식으로 귀농 3년차인 지난해는 5㎏상자 1만2000개를 생산, 최고가인 3만원의 가격으로 판매 목표를 달성했다.판매방식은 농장에서 직접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온라인과 원협 공판장 등지에서 전량을 소비, 걱정이 없었다. 김씨는"무턱대고 농촌에 정착하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며"사전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필요한 정보를 완전히 습득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한다.그는"주변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성공한 특별 케이스"라며"모두가 그렇게 적응하는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고 지적했다. 현재 김씨가 생활하는 청웅면에는 지난 2009년 이후 모두 28세대의 귀농자가 몰렸으나 단 1명의 실패자가 없을 정도로 농업환경이 좋은 곳이라고 자랑했다.그는"비교적 짧은 시간에 성공했지만 조만간에 순소득 1억원의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며"귀농자가 원하면 받은 만큼 되돌려줄 생각"이라고 포부도 밝혔다.

  • 기획
  • 박정우
  • 2013.05.01 23:02

【무주 부남면 정착 3년차 강희동씨 부부】"표고 항암효과 체험 버섯농사 결심했죠"

요즘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농촌에서 넉넉한 여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은퇴 이후의 여유로운 삶을 위해 '귀농'을 꿈꾸기도 한다. 도시에서 교사와 공무원으로 바쁘게 살다가, 3년 전 무주군으로 귀농한 부부가 있다. 부남면 굴암리 산자락 아래, 천 여 평의 표고버섯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희동, 조윤기 부부가 주인공이다.남편은 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아내는 복지원 원장으로, 각자 일에 파 묻혀 사느라 부부가 오붓하게 대화할 여유도 없이 대전에서의 도시생활은 바쁘게 흘러갔다. 이런 이들의 일상에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교직에서 퇴직한 후 사업을 하던 남편이 위암 선고를 받은 것. 사업을 할 때 건강이 많이 안 좋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지나친 것이 큰 병으로 이어졌다. "바쁜 도시생활 중에도 시간 나면 근교 산에 많이 다녔습니다. 암 수술을 받은 후 공기 맑은 시골에 살고 싶었고 종종 다녔던 아름다운 무주 덕유산이 생각나, 무주 산골짜기에 요양 차 들어오게 되었습니다."강희동 씨는 "암 수술 후에 여건상 대전에서 생활했는데 공기가 안 좋아서 인지,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져 무주로의 귀농을 결심했다."고 한다. 2009년 부부는 마침내 대전 생활을 정리하고, 무주의 청정 자연 속에 정착했다. 부남면 굴암리 산자락이 그들 부부의 새로운 터였다. △암 환자로 '표고버섯 효능' 체험하고 귀농 후 '버섯 농사' 선택막상 귀농은 했는데 '무엇을 할 것이냐?' 생각하니, 병원에 있을 때 식단에 표고버섯이 자주 나온 것을 떠올렸다. 표고버섯은 약리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암환자로서 직접 체험해보고 '표고의 효능'을 확신하게 되었다. 부부는 이전에 도시에서 선생님, 사장님, 원장님이라는 직함을 모두 버리고, 순수하게 농촌의 아저씨, 아줌마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농장 이름을 '강 아저씨 조 아줌마 표고농장'으로 지었다."귀농을 결심하고 시장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암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표고버섯을 생각한 것이죠. 암을 직접 겪어봤기에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부부가 1년 동안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표고가 있는 곳은 어디든 견학했고 현장교육도 많이 다녔습니다. 버섯은 바람, 햇빛, 온도 3박자가 잘 맞아야 합니다. 또한 밤낮의 일교차가 큰 것도 버섯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인데, 무주는 남쪽에서 유일하게 고랭지 지역이어서 지형적으로나 기후적으로 버섯에 잘 맞는 최고의 지역이지요."강희동 씨는 귀농인이면서 환자로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물만 가지고 키울 수 있다는 것도 표고버섯을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암에서 완치되었다. 맑은 공기를 맡고 농사지으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무엇보다 귀농 후 마음이 편안해서 빠르게 회복되지 않았을까. △여러 버섯농장 다니면서 터득한 '버섯의 특색'을 벤치마킹아내 조윤기 씨는 "여러 버섯농장을 다니면서 버섯이 자라는 환경과 특색을 배우면서 우리만의 것으로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표고버섯은 바람과 햇빛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따라서 재배방법 역시 자연에 맞춰야 합니다. 시시각각 자연을 관찰하여 여기에 맞춰 작업을 해나가죠. 단순한 일은 아닙니다. 농사일을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은 변화 많은 자연과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에 좋은 '표고버섯'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는 부부의 열정과 노력이, 성공의 열매를 맺게 했다. 귀농 후 비교적 빠른 시간에 부부는 억대 수익을 올리는 부농이 되었다. "우리에게 시골 '아줌마'와 '아저씨'는 '제 2의 직업'입니다. 신기하게 도시에서 일할 때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깨가 자주 아팠는데 여기 와서 아픈 것이 싹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자연과 벗 삼으며 생활하니, 아저씨 병도 완치되고, 둘 다 마음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매일 표고버섯이 자라는 과정 보면, 늘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매일 아침 6시에 농장에 나와 우리 버섯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기대하며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귀농 후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이 점점 커져나가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들뜨며 이야기하는 조윤기 씨의 모습에서 '꿈 많은 소녀'의 설렘과 열정이 느껴진다."매일 표고버섯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한 느낌"이라는 강희동, 조윤기 부부.함께 일하며 땀 흘리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부부간에 금실도 더 좋아졌다는 부부는 "정말 귀농을 잘 했다"고 생각한단다. "단, 귀농은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므로, 확실하게 선택했다면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도 들려주었다. 인생 후반전에 과감히 시도한 귀농. 이들 부부는 오늘도 무주 산자락 표고 농장에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 기획
  • 김효종
  • 2013.04.17 23:02

【무주군 예비 귀농인 신고제】도시민 귀농 전에 정보·자료 제공 '안정정착' 유도

2020년까지 연 간 200가구의 이주민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한 무주군은 '예비 귀농인 신고제도'를 운영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귀농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2007년 26가구 77명에서 출발한 무주군의 귀농귀촌인구는 연간 '08년도 25가구 67명, '09년도 30가구 69명, '10년도 16가구 43명, '11년도 28가구 55명, '12년도 18가구 34명으로, 무주군은 '예비 귀농인 신고제도'가 도시민들의 귀농을 유도하는 장치가 되는 한편, 안정적인 귀농을 돕는 기반도 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 '예비 귀농인 신고제도'는 귀농에 관심이 있는 도시민들이 주소를 이전하지 않고도 예비 귀농인 신고(방문, 전화, 팩스)를 하면 무주군으로부터 귀농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로, 귀농인 지원센터로부터 자세한 상담과 현장 안내 등도 받을 수 있다.2013년 도시민 농촌유치지원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기도 한 무주군은 3년 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6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게 됐으며, △도시민 농촌유치지원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주거 공간 및 새내기 실습농장을 조성하는 것을 비롯해 △정주의향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홍보물홈페이지 제작운영, △이주준비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귀농관련 소식지 제작, △예비 귀농자 무주투어, △이주실행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귀농귀촌학교 운영, △이주정착단계를 위한 전문가 모니터링 등의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외에도 △귀농귀촌인 권리장전 제정, △예비 귀농인 신고제 운영, △한국농업연수원과의 협약을 통한 안정적 정착 유도 등 10대 이행과제를 수립해 추진하며 살기 좋은 귀농허브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 기획
  • 김효종
  • 2013.04.17 23:02

【진안 어은동마을 정착 임종남씨 부부】"45년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 된장·청국장 담가요"

대한민국 농촌은 역사상 세 차례의 귀농 경험을 갖고 있다. 첫 번째가 일제강점기에서 일어난 브나로드 운동이고, 두 번째는 70~80년대 농촌운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생태귀농이다. 특히 최근의 귀농자 특징을 보면 유기농업을 통한 건강한 먹거리 생산과 생태 공동체의 마을 만들기에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안의 정책과 미래상에 일치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귀농관련 전문가들은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춘 진안을 귀농1번지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귀농, 꿈과 현실의 차이 올해로 귀농 11년차인 임종남씨(40). 그는 토종 도시남자이다. 전주에서 태어나 학교도 모두 전주에서 나왔다. 아내 윤혜경씨(38)를 만나 맞벌이 부부생활을 하던 그가 귀농을 생각한 것은 딸 채은(11)이가 태어나면서다. 그는 "우선 삭막한 도시생활이 싫었고,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2003년 10월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그는 가족과 함께 진안읍 어은동마을로 귀농했다. 어머니가 하고 있는 장류 사업에 뛰어들 결심을 하고 내린 결정이어서 진안의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농촌생활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마을 어르신들과의 관계도 어색했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임씨 가족에게 처음해보는 농촌생활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40kg 짜리 10포대 정도의 적은 양으로 청국장과 된장을 만들었지만, 판매하지 못했다. 임씨는 "45년 동안 전주에서 소규모로 장류 판매를 하고 있는 어머니의 가업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장류사업을 시작했지만, 한 3년간은 재료비 값도 못 벌었다"고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 "순애할매된장입니다" 힘들어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을 담글 때면 어머니를 모셔와 45년 손맛의 비법을 배우고, 어은동 깊은 계곡 물을 끌어와 사용했다. 홈페이지도 개설하고 아내가 생각해낸 '옥션', '지마켓' 등 인터넷쇼핑몰에 상품을 올려 판매하는 방식으로 판로확보에도 변화를 줬다. 그러면서 서서히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6년부터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늘었다. 현재는 연 4~500개의 된장과 청국장, 청국장환을 판매한다. 이를 통해 연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 마을의 두뇌이자 머슴 '마을간사'가 되다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마을주민들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더불어 사는 농촌 마을에서 이웃과의 관계는 도시와 달리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진안군에서는 젊고 능력 있는 인재를 마을간사로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신청했다. 마을간사는 진안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뒷받침하며, 마을의 두뇌가 되어 마을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마을의 머슴이 되어 집안일을 거들어 주기도 한다. 그는 간사로 활동하며 마을 화합에 힘썼다. 크고 작은 행사마다 찾아가 일을 거들었다. 마을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주민들 의견을 모아 마을사업계획을 세우고 전라북도 향토산업마을만들기사업에 공모해 1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아직도 완전히 정착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을 만큼 진안이 좋아졌다"며 "귀농 초반에는 일주일에 3일 정도 전주에 나가 친구도 만나고 했는데, 지금은 3달에 한번 나갈까말까 한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재문
  • 2013.04.10 23:02

【진안군 귀농1번지 프로젝트】도시에서 쌓은 경험·능력 발휘하도록 지원

진안군의 귀농1번지 조성 프로젝트는 이 마을 간사제를 모태로 해서 태어났다. 귀농인은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틀을 과감히 깨고 그들이 도시에서 쌓은 전문 능력을 농촌에서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로 귀농1번지 조성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의 '도시민 유치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2007년부터는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2009년까지 3년간 10억을 지원받아 도농교류 및 귀농귀촌활성화센터 상근인력 보강, 전원마을사업, 마을조사단 운영, 마을숲해설사 양성, 마이 평생학습지도자 양성 등 도시에서 쌓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왔다. 이밖에도 예비 귀농인 상설 전담기구 설립운영, 홈페이지 운영, 귀농체험용 빈집 정비, 귀농학교 운영, 집들이 비용 지원, 귀농인 지역사회 기여 및 창업지원 사업 등 다양하게 추진한다. 그 결과, 귀농인은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틀을 과감히 깨고 그들이 도시에서 쌓은 전문 능력을 농촌에서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로 귀농1번지 조성사업을 펼쳐 2009년부터 50명에 가까운 귀농인이 농사만 짓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진안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곽동원 마을만들기 담당은 "그 예로 대도시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다 귀농하신 분이 있는데 '농촌에서 집짓기'라는 책을 발간해 귀농인 뿐만 아니라 집짓기에 관심이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고,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농기계나 오래된 골동품을 하나둘 모아 인근 폐교를 마을박물관으로 만든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안군 전체 귀농인은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759세대 1800명이다. 2007년 3월 229세대 499명에서 7년여 만에 530세대 1351명이 늘었다. 특히 이 중 50~60%가 40~50대 젊은 귀농인이다. 지금 진안군은 이름 앞에 귀농 1번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는 기존 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이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고 화합하면서 힘을 합쳐 나갈 수 있도록 힘써 온 결과이다.

  • 기획
  • 이재문
  • 2013.04.10 23:02

【완주 경천면 김두순씨】참매실·감·대추 발효식품으로 익어가는 '부농 꿈'

인생 황혼기 부부가 귀농귀촌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경우, 대개 남편은 농촌 지향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부인은 도시적인 삶을 원하는 사례가 일상적이다.하지만 김두순씨(56) 부부는 그 반대이다. 김씨는 농촌생활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던 남편을 꼬드겨, 농토를 산 것도 모자라 아예 번듯한 집까지 지었다.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을 묻고 또 물어 찾으니, 김두순씨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주위를 둘러보니 꽃봉오리를 막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나무 꽃에 둘러싸인 집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난생 처음 농사꾼의 길"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완주군 신흥계곡 일대에 자주 등산을 오면서, 눈에 딱 들어오는 땅이 있었어요. 그 곳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결국 땅 매입으로 이어졌죠."무작정 좋아 사들인 땅에서 김두순씨는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 컨테이너 박스에서 휴식을 취하며 나무 가꾸기에 빠져들었다. "매입한 땅에는 이미 심어진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를 둘러보던 중 땅 밖으로 노출된 뿌리가 가여워 듬뿍 복토작업을 벌였어요. 그런데 감나무들이 시름시름 죽어갔습니다. 동네 농부에게 물으니 감나무는 그렇게 키우는게 아니라는 거에요." 평생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왕초보 농부의 비참한 실패극이었다. 농삿일의 노하우를 하나씩 배워나가던 김두순씨는 8000여㎡(2500여평)에 매실나무를 심었다. 봄이면 누구보다 먼저 피어나는 매화꽃도 즐기고, 매실로 만든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실패에 실패 거듭한 초보자농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곳 저곳 매실나무에서 장송곡이 흘러나왔고, 메말라 죽는 나무 숫자가 늘어만 갔다.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에 충실했던 늦깎이 농부는 2011년 이곳에 아예 살림집을 짓고 삶의 공간을 옮겼다. 익산에서 플랜트 사업을 하는 남편 박성전(58)씨는 부인이 만든 완주군 경천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출퇴근했다.처음엔 농촌생활이 달갑지 않았던 남편이 주말이면 팔을 걷어붙이고 농삿일에 뛰어들었고, 이젠 제법 농사꾼 자세도 갖춰나갔다. 나무 관리와 잔디 관리에 쉴 틈이 없으면서도, 언제나 입가엔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부부가 15년이란 세월 동안 키워낸 나무는 감나무 100여 그루, 매실나무 100여 그루, 대추나무 50여 그루이다. 특히 이들 부부가 기르는 매실은 희귀한 품종인 참매실. 아는 이들마다 앞다퉈 예약, 재고가 남아날 시간조차 없다.△이젠 2차산업으로 진출판매 품목도 단순한 생과에서 가공식품으로 확대 되면서 부가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김두순씨가 현재 취급하는 품목은 매실 효소곶감말린대추민들레장아찌매실장아찌쑥선식 등이다. 단순히 과실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이를 가공한 제품들이다.가공식품도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말리면 곶감이 만들어 지는 줄 알았어요. 햇볕 좋은 날 감을 깎아 말렸는데, 곶감도 되기 전에 감이 흐물거리며 변질 되었어요. 공부하는 농사꾼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도 깎는 시기가 따로 있다는 걸 뒤늦게 안 초보 농군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농사 공부에 나선 농사꾼김두순씨는 완주군농업기술센터가 해마다 운영하는 순환농업대학의 발효식품 과정에 2011년 입학해 효소 만드는 방법을 공부했다. 1년 과정으로 진행된 농업대학도 성에 차지 않아 지난해 두 번째로 농업대학에 입학했다.여기에서 배운 기술은 매실효소 생산으로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배운 발효 관련 지식이 체계화되면서 매실효소도 고품질화 되었다.내친 김에 창업교육까지 이수했다. 김두순씨는 지난해 완주 거점가공센터의 아카데미 창업교육에 참여해 농업을 산업화하는 지식을 익혔고, 센터가 보유한 설비를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로컬푸드와일드푸드 연계 김두순씨의 제품은 알음알음으로 이어지며 전국망을 구축했다. 한번 맛본 사람들의 추천으로 서울경기도 등 수도권을 비롯 경상도까지 진출했다. 전주 등 전북권은 물론이다.또 지난해 열린 와일드푸드축제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한편 로컬푸드 1번지인 완주군이 구축한 로컬푸드 직매장에서도 시식회를 벌였다.아직도 수입면에선 걸음마 단계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한걸음씩 나아갈 요량이다. 김두순씨의 현재 한달 평균 매출액은 100여만원을 막 넘어선 수준. "경제적 측면서 살림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농촌에 산다는 즐거움, 여기에 더한 삶의 질 향상에 만족한 인생 후반기를 맞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인에겐 경제적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귀농을 결심하려는 사람에겐 주민들과의 소통도 큰 난점. 김두순씨는 마을주민들에게 농사 수업을 받으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한편 운주면 지역 귀농귀촌인들의 모임에 참가, 농사 정보와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 기획
  • 김경모
  • 2013.04.03 23:02

【귀농·귀촌 돕는 '완주군 순환농업대학'】지속가능한 농업·농촌 만들 핵심리더 육성

완주군 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완주군 순환농업대학'이 귀농·귀촌인들의 정착을 실질적으로 돕는 농업 사관학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나갈 핵심리더를 육성한다는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순환농업대학은 이론과 현장감각을 두루 갖춘 농업 전문가들을 해마다 배출하면서, 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귀농·귀촌인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입학생 120여명 가운데 귀농·귀촌인이 43명에 이른다.개설학과도 완주군의 농업 현실에 맞춰 시설원예과·축산경영과·발효식품과·농식품창업과 등 4개 과정으로 운영된다. 초보 농사꾼인 귀농·귀촌인들도 연간 8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는 이 과정을 수료하면 준프로의 반열에 오른다.강사진도 해당 분야의 정상급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인사로 구성된다. 부학장인 김복기 농업기술센터소장은 "센터의 농촌지도사, 농촌진흥청과 연구소의 담당자, 대학과 컨설팅 업체의 전문가, 선진농업인들을 강사로 위촉한다"며 "수업 내용도 실제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로 짜여진다"고 설명했다.특히 순환농업대학 교육과 로컬푸드 산업이 만나면서 귀농·귀촌인과 지역 농업인들이 안정된 유통망을 확보, 상승효과를 거두고 있다.

  • 기획
  • 김경모
  • 2013.04.03 23:02

【경제연구원 생활 접고 익산 정착한 이환철씨】"표고버섯 커가는 모습에 농사일 자신감 붙었죠"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은 정말 편안합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다고 할까요."10년 넘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잘나가는 국내 경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2년 전 익산으로 귀농한 이환철 씨(52)는 시꺼먼 피부나, 흙 묻은 옷차림, 무엇보다 자신의 밭을 찾는 사람들을 환하게 맞아주는 영락없는 농사꾼이 되어 있었다.이 씨는 "작년 심었던 양상추는 투자비 대비 200%정도 이윤을 얻었는데 인건비와 잡비를 감안하면 손해 봤어요. 그런데 고추농사는 500%정도, 재미를 좀 봤습니다."라며 싱글벙글했다.경제용어가 술술 나오는 이씨를 바로보고서야 그가 경제연구원에서 활동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케 한다.이 씨는 1988년 원광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이듬해에 프랑스로 유학가 10년 동안 공부한 경제전문가다.귀국한 뒤 대한경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단독 강좌를 개설해 운영할 정도로 업계에선 인정받던 유망한 전문가였다.그러던 그가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귀농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건 2008년께.시간만 나면 시골로 내려와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에 복숭아, 매실나무 등을 심었다.틈틈이 귀농인 교육을 온라인으로 100시간 이상 받으면서 마음을 굳혔다. 각종 작목부터 기계사용법, 농약사용법, 토양관리 등 농사 관련 지식을 습득했고, 경실련에서 주관하던 도시농부학교에서도 공부를 마쳤다.3년에 걸쳐 귀농을 준비했던 그는 2011년 3월 사표를 던지고, 귀농을 실행에 옮겼다.이씨는 "도시생활이 지겨웠고, 스트레스가 온 몸을 감싸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시골에 내려와 땀을 흘리면 그게 그리 즐거웠다"고 했다.이렇게 2년 전 익산으로 귀농한 이씨는 요즘 표고버섯 재배에 한창 빠져있다. 그는 1동에 150평가량 되는 하우스 8동에서 표고를 재배하고 있다.처음에는 초보농사꾼이 키우기엔 어렵다는 말에, 지난해 2동에서 표고를 시작해 8동으로 번식했고, 지금은 아주 잘 키우고 있다.이씨는 "표고는 보통 1년반 정도 길러야 수확이 가능한데,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잘 크고 있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며 "처음에는 어렵다고 해서 망설였는데 버섯이 커가는 모습에 자신감도 붙고 있다"고 말했다.하우스에서 표고를 기르며, 논농사와 사과배를 키우는 자그마한 과수원, 텃밭을 활용한 고추상추 등 다양한 농사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연과 가까워지며 농촌의 문제점도 발견해가고 있다.그는 "지난해 심었던 양상추와 고추농사 모두 성공했다"면서 "하지만 양상추는 유통구조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제값을 받지 못했지만, 고추는 서울의 지인들과 직거래를 통해 높은 이윤을 남겼다"고 했다.그래서 이씨가 표고버섯 재배를 하며 남는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바로 유통구조 개선 즉 직거래 활성화와 농민들이 직접 2차 산업에 진출하는 방안을 연구한다.최근에는 익산시귀농귀촌연합회를 만들어 귀농하는 이웃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전하기도 한다.이씨는 "저도 귀농을 2년 넘게 준비했는데 다양한 정부의 지원이나, 자치단체의 보조사업을 모르고 넘어간 경우가 상당했었다"며 "특히 귀농을 앞둔 분들이 어떤 작목을 선택할지, 어떤 경험을 쌓아야 되는지 정보를 한데모아 제공하는 모임이 필요해 익산시의 도움을 받아 결성했다"고 말했다.이어 "농촌의 가장 큰 문제점은 1차 산업에 머물면서 고수익을 올리지 못하는데 있다"면서 "직거래를 활성화시키는 유통구조 개선이나, 농촌에서도 가공산업을 통한 2차 산업에 뛰어드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씨는 쌀 농사의 경우 가공식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강화하고, 상추와 같은 쉽게 상하기 쉬운 채소나 과일의 경우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 활성화'를 강조하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가고 있다.특히 일상에 찌들어져 있던 서울생활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귀농으로 사라졌고, 가정의 행복도 되찾았다고 했다.아버지의 귀농모습을 지켜본 뒤, 사회에 정착해 가는 두 자녀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음을 보람있게 생각하며, 농촌생활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아울러 올해 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하는 이씨는 "올해 5천본에서 5000만원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고, 앞으로 1만5000본에서 2만본으로 확대해 연간 2억원 수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처음 귀농을 반대하던 집사람도 힘을 보태며 이제는 서로 만족해하고 있다"고 행복해 했다.

  • 기획
  • 김진만
  • 2013.03.27 23:02

【익산시 귀농·귀촌정책】창업·주택·농기계 구입비 등 도시민 정착 지원

익산시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에게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조기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경제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식과 자본인구의 증가를 꾀하고 농업농촌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정착시켜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시는 우선 귀농에 나서는 도시민들에게 귀농창업자금과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귀농창업자금은 2억원 한도로 5년거치 10년 상환으로 이율은 3%로 저렴하다. 주택자금도 4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또한 농가주택수리비를 가구당 5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하며, 귀농인들의 소규모시설 즉 저온창고나 농기계 구입 등 생산기반사업에도 귀농인당 1500만원까지 보조하고 있다.이외에도 귀농현장실습비를 귀농인에게 5개월동안 매월 80만원씩 지원하고, 귀농인을 교육시키는 선도농가에도 5개월간 매월 4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이같은 다양한 귀농지원정책에 따라 익산시에는 2009년 귀농정책자금을 지원받는 귀농인이 8명, 2억원에 그쳤지만, 2010년 11명 4억원, 2011년 20명 10억원으로 큰 폭 상승했다. 아울러 귀농가구도 2009년 17가구였지만 2011년 20가구, 2012년 68가구로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아울러 지난해 10월 익산시귀농귀촌연합회(회장 이환철)가 창립되면서 많은 귀농인들이 다양한 지원정책에 대한 교육을 받고 귀농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했다.익산시귀농귀촌연합회 이환철 회장은 "준비하고 귀농에 뛰어들어도 많이 미흡한 점들이 나타난다"며 "많은 정보 취득과 교육을 통한 지원에 귀농귀촌연합회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진만
  • 2013.03.27 23:02

【부안군 귀농·귀촌사업 지원】창업자금 최대 2억·여성농업인센터 운영

최근 들어 힐링 바람이 거세다. 특히 도시민들이 농업농촌에 대해 깊은 향수를 느끼고 있다. 급기야 새로운 삶을 농어촌에서 일궈나가려는 귀농귀촌인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이 가운데 전국 지자체들은 이들 귀농귀촌인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부안군도 마찬가지. 군은 귀농귀촌인들을 유치하고 이들이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군은 부안지역에 새롭게 둥지를 트는 도시민을 위해 귀농창업자금을 최대 2억원(연3%, 5년거치 10년 상환)까지 융자 지원하고 있다. 농가주택신축 또는 구입 시에도 융자를 4000만원까지 지원한다. 또한 연 2% 1년거치 1년상환을 조건으로 영농안정기금을 3000만원까지 지원하며 주택수리비도 가구당 500만원 이내에서 보조해준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귀농귀촌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작목별 영농정보를 매월 제공하고 있다. 농어민신문을 1년간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상담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센터를 통해 여성들의 상담을 지원하고 있으며 농업기술센터 내 귀농귀촌 종합상담실도 설치, 운영 중이다.농업택지 정보와 농지가격 자료 제공은 물론 농촌빈집정보 자료 제공 등 귀농귀촌 관련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특히 민간조직을 통한 귀농귀촌 네트워크 활성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부안군 귀농귀촌협의회가 출범해 귀농귀촌인들 상호간 협력과 동시에 성공적인 귀농사례를 상호 교환하는 등 조기 정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16개 농업관련 단체들과 토착 지역민들과도 친목도모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나아가 녹색농촌체험마을 등 특화마을과 재능을 가진 귀농인들을 연계, 일자리 창출 등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군 농업축산과 관계자는 "최근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부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으며 문의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며 "귀농귀촌인들이 부안 군민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해 질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 및 정책들을 발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양병대
  • 2013.03.20 23:02

"농사, 고정관념 깨고 문화와 접목 새 브랜드 창출"

"농업이 가지고 있는 다원적 기능을 살려 사회적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새로운 농업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저희가 농사짓는 땅이 곧 도화지입니다. 그림을 그리 듯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지요."이들은 농사짓는 땅의 일부를 만남과 소통,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여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 한다는 것이다.언뜻 듣기엔 한가한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연상시키지만, 그들의 농사면적은 버거울 만큼이나 많아 보였다. 더욱이 농사한번 지어보지 않은 초년생이기에 그 어려움은 더욱 커 보이는데도, 마음만은 내내 여유롭다.그들은 지난해 처음으로 논을 밭으로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노지고추 7260㎡, 오디 3300㎡, 매실 1320㎡를 지어 수확물 일체를 직거래로 판매했다. 여기에 더해 올해 2640㎡의 밭에 복분자를 심어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으며, 블루베리를 심기위해 3300㎡의 밭을 조성했다. 또한 비닐하우스도 330㎡ 규모로 손수 지었다.그들은 그런 바쁜 농사일에도 틈틈이 농장속에 쉼터와 숲길을 만들고 농장주변에 꽃을 심고 가꾸는 등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듯 농장을 그려가고 있다.'도화지쉼터'로 이름 지은 오디농장의 소나무 숲은 운치있는 방부목 데크를 설치하고, 돌과 나무 그리고 꽃으로 단장한 작은 노천극장을 마련했으며, 잔디를 심어 정감있게 배치했다.작년 한해 이곳엔 500여 명이 넘는 많은 이들이 찾아와 견학과 체험을 했으며, 작은 이벤트와 동네잔치도 열었다고 한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는 그들, 동네에선 이미 일벌레로 소문이 자자하다. 덕분에 마을 주민과의 화합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우리에게 일은 곧 놀이입니다. 놀이는 신나고 즐거운 일이지요. 일과 놀이의 차이, 놀이와 일의 경계를 무너뜨려 일을 놀이화 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도화지농업이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얼마전에 마을입구에서 오디농장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만들었다는데 마치 오래전부터 있었던 옛 길처럼 보였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 서있는 당산나무 주변에 통나무의자, 국화꽃으로 단장한 작은 쉼터를 마련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잠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공간을 배치했다.그들은 공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농업이란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비우고 연계하며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힘든 농사일이 재미있는 놀이가 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좋은 농업은 물론 경쟁력도 함께 생성된다"고 애기한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신선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언어조차도 농사입니다. 정감 있는 말이야 말로 가장 큰 농사 밑천이지요. 얼씨구~ 지화자~ 같은 말처럼 흥을 돋우는 언어들은 모두 뿌리깊은 농경문화의 소산입니다. 농업을 다소 천대시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농업과 농촌은 항상 돌아가고픈 마음의 고향입니다."언어도 농사라고 말하는 그들의 핵심키워드는 감성과 정(情)이다. 힘든 농사일을 놀이로 변화시켜 즐거운 일로 만들어 내는 것, 농업이 가지고 있는 다원성을 찾아내어 사회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접속시켜 농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스스로 높이는 것 등이 그들이 추구하는 감성농업인 듯 하다.테마가 있는 감성농업은 그린 투어리즘(green tourism)으로 각광받을 수 있는 훌륭한 농업자원으로서 많은 도시민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므로, 부르는 농업자원을 조성하여 이를 활용한다면 지역경제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도화지농업의 씨알농원은 귀농1번지 고창에서 새로운 농업문화를 선도할 것입니다. 농업에 문화를 접속하고 지난해 보다 더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인문강좌, 음악회, 길투어, 씨알축제와 같은 문화행사와 자매결연을 통한 농원 방문객을 고창의 손님으로 유치하여 우리지역의 새로운 농업브랜드와 허브기지로서 역할에도 최선을 다 할 계획입니다."이름은 본질을 바라보는 창문일 것이다. 도화지 농업 속에 담긴 그 속뜻을 다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려는 삶과 농업 마인드는 잘 볼 수 있었다. 삶의 철학과 자신들의 인생을 담아 그림처럼 그려내는 도화지농업!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브랜드요 고창농업의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 기획
  • 김성규
  • 2013.03.13 23:02

【고창군 귀농·귀촌사업 현황】총 787가구 1465명 정착…올 22개 사업 20억 지원

지난해 전북도 발표에 따르면 귀농귀촌인이 가장 선호하는 정착지로 고창군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2012년까지 고창군에 정착한 귀농귀촌인은 787가구 1,465명으로 집계됐으며, 50대 이하 가구가 83%를 차지하여 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과 인구 감소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13년에도 고창군은 적극적인 도시민 유치를 위해 △귀농인 영농정착금 지원 △소규모 귀농귀촌마을 기반조성 △귀농귀촌유치 우수마을 지원 △귀농인 농가주택수리비 지원 △도시민 유치프로그램 △Family 5563 정착 프로그램 등 22개 사업에 20억원의 예산을 확보, 투입할 계획이다. 기타사업으로 귀농인창업자금 및 주택신축자금 융자(연3%, 5년거치 10년상환, 2억원 이내), 귀농인 농지구입자금 융자(연2%, 3년거치 5년상환, 5천만원 이내)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또한, 농업기술센터 내에 귀농귀촌TF팀을 상시 운영하여 귀농귀촌인들에게 영농상담 및 귀농정보를 원스톱으로 제공하여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귀농귀촌TF팀 관계자는 "전북 최초로 출범한 (사)고창군귀농귀촌협의회와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정착한 귀농귀촌인의 네트워크를 더욱 활성화 시키고 차년도 도시민 유치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기획
  • 김성규
  • 2013.03.13 23:02

'메론' 불모지 장수 고랭지에서 첫 2기작 성공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와 대학까지 마친 서울토박이 사업가가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귀농을 결심하고, 장수에 둥지를 튼 뒤 이제는 '억대 부농'을 꿈꾸고 있다. 장수군 장계면 송천리 신기마을에 터를 잡은 귀농 3년차 조일형씨(54)가 주인공이다. 손재주가 좋았던 조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친환경 일회용품 사업에 뛰어들어 12년간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 대한 향수가 많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원예반에서 활동하며 '환갑이 넘어서는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그는 우연히 장수를 지나는 길에 장수의 풍경에 빠져들었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0년 51세에 당초 계획을 앞당겨 홀로 귀농을 감행했다.농촌으로 가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하면서 삶의 질도 높아질 거라고 믿고 귀농을 했다는 조씨. 그는 처음에는 장계면 금곡리 동정마을의 빈집을 얻고 하우스 1700㎡(500여평)을 빌려서 처음 농사를 시작했다. 본인에게 적합한 품목, 작업량이 적은 품목, 고소득 품목을 찾기 위해 20여가지 품목을 시험재배한 결과 장수지역에서는 다소 생소한 메론을 선택했다. 당시 주위에서는 '장수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작목'이라며 재배를 만류했었다. 하지만 그는 장수의 고랭지 특성을 살리고 기술만 제대로 갖춘다면 어느 지역보다 고품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난 2011년 1700㎡(500평)의 하우스에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농사는 물론 메론에 대해 초년생이던 그는 모르는 것은 책과 인터넷에서 또 메론의 주산지인 전남 곡성을 수차례 방문해 하나하나 배워가며 재배에 나섰다. 결국은 성공이었다. 1기작에 당도가 15~17브릭스 이상으로 타지역의 10~12브릭스보다 우수하고, 외관이 좋고 과육이 단단하며 아삭아삭한 메론이 결실을 맺었다. 메론 생산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해 현재 살고 있는 신기마을로 자리를 옮겨 군의 시설자금을 지원받고, 귀농인창업자금을 융자받아 땅 5620㎡(1700평)을 구입해 집을 짓고, 하우스 2644㎡(800평)를 마련했다. 영농일지를 써가며 지극 정성으로 메론 재배에 매달린 그는 지난해 장수군 최초로 2기작에 성공해 순소득 3000만원을 올렸다. 아직은 고소득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적은 자본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한 모범적인 귀농사례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7명으로 구성된 올팜메론작목반을 운영하며, 메론 재배의 선구자 역할은 하고 있는 그는 장수에 메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쓰기 시작해 오는 2015년에는 메론 지침서로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장수메론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 나무 1주에 2과 생산을 목표로, 내년에는 5000만원 소득을, 7~8년 뒤에는 억대소득을 올린다는 당찬 포부를 이루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또 메론의 불모지였던 장수에서 메론 수출의 길도 열겠다는 게 그의 꿈. 장수에서 제2의 인생은 살고 있다는 조씨는 "농업은 재배환경이 다른 만큼 지역적인 특성을 많이 받는다"며 "장수의 지형적기후적인 특성을 잘 살리면 최고의 메론 생산지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메론 재배는 부부간의 노동력으로 2300~3300㎡(700~1000평)정도 할 수 있고, 큰 투자 안하고 1년차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목"이라며 "귀농자들에게 메론이 새로운 소득작목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귀농 1년차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던 그는 "이제 그때를 잘 넘기고 나니 마을에서도, 같이 농사를 짓는 작목반에서도, 서로 협동하며 힘들어도 재밌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귀농을 하면서 집부터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면서 "먼저 농지를 구하고 자신에게 맞는 작목을 선택해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해 자리를 잡은 뒤 집은 지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농사는 어떠한 작목이든 준비기간이 2년은 필요하고,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리기 까지는 3년이 걸린다"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 정익수
  • 2013.03.06 23:02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