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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에 빠지지 말고, 세계에 직접 접촉하라

철학자 장자(莊子)는 보통을 훨씬 넘어선 그의 시각을 기록으로 남겼다. 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은 하늘이 하는 일을 알면서, 인간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다.(知天之所爲, 知人之所爲者. 至矣.) 「대종사」 편 첫머리에 등장하는 말이다. 지금부터 2000년도 훨씬 전에 이렇게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사를 개괄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원래 인간은 두 세계를 겹쳐 놓은 무대에서 사는데, 하나는 자연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문명의 세계다. 자연은 인간이 없을 때부터 존재했으며, 사실상 인간과 상관이 없던 세계다. 문명은 오롯이 인간이 건설한 세계다. 인간은 이 두 세계 외에 다른 세계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이 두 세계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알게 된다면, 그는 지적으로 가장 탁월한 능력자다. 설령 가장 탁월하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이 두 세계에 대하여 균형 잡힌 이해를 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높은 단계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세계를 다 아는 것은 나처럼 적당한 지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래서 한 쪽이라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제도적으로 합의한 결과,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 영역을 구분한다. 즉 문과와 이과를 각자 선택하여 우선 한 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문과와 이과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냐고 물으면 가장 많은 답으로 수학Ⅱ를 든다. 수학Ⅰ은 어떻게 해보겠는데, 수학Ⅱ까지는 자신이 없을 때 문과를 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수학Ⅱ가 부담이 안 되는 사람이 이과를 간다. 그러나 문/이과를 선택하는 데에 이보다는 깊은 의미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과를 가서 배우는 학문을 보자. 철학, 사학, 문학, 정치, 경제, 법률, 신문방송학 등등이다. 이과로 진학한 다음에는 주로 생물학, 물리학, 지구과학, 천문학, 수학, 화학 등등을 배운다. 이렇게 나눠놓고 보면, 두 영역을 가르는 기준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물어보자. 이 지구상에서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인간이 갑자기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치자. 그렇다면 문과에서 배우는 학문 분야는 인간이 사라져버려도 여전히 남아 있는가? 아니면 함께 사라져 버리는가? 함께 사라져 버린다. 똑같은 질문을 이과 학문 대상들에게도 할 수 있다. 인간이 모두 사라져버려도 이과에서 배우는 학문 대상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문/이과를 선택할 때, 인간이 사라져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 관심이 있으면 이과를 가고, 인간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져버리는 것에 관심이 있으면 문과를 가는 것이라고 알 수 있다. 인간이 개입되어 있느냐 개입되어 있지 않느냐가 관건이다.세계를 통괄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형을 추구한다면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것보다는 당연히 문/이과를 함께 다루는 교육 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세계는 문(文)과 이(理)의 두 영역으로만 되어 있고, 이 두 영역은 인간의 실존적 전체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하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을 다 알면 가장 높다는 장자의 통찰은 얼마나 정확한가. 이제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모두 이해한 가장 지적인 인격이 태어났다.자연 세계와 문명 세계의 이치를 모두 아는 사람은 얼마나 위대할까? 그 정도의 사람이 하는 일은 또 얼마나 거창할까? 하늘이 하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을 모두 아는 비범한 높이의 인격을 가진 사람을 창조한 장자는 이런 높이의 사람이 가지는 구체적인 효과를 다음처럼 말한다. 천수를 누리고 중도에 요절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적으로 최고의 단계다.(終其天年, 而不中道夭者. 是知之盛也.) 지적으로 최고의 단계에 이른 사람이라면 무언가 초월적이고 추상적이고 월등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거의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그렇게도 높은 단계의 지적인 완성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고작 요절하지 않는 것이라니! 뭔가 갑자기 촌스러운 골목 모퉁이를 도는 착각이 들 정도다. 최소한 자유나 행복이나 정의나 완벽함이나 성스러움 등이 나올 줄 알았는데, 고작 천수를 누리는 정도라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도대체 죽는다는 일은 무엇일까? 인간이 실제 생활에서 감당하는 구체적인 일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이보다 큰일은 없다. 그런데 지식에는 끝없이 분화하는 속성이 있다. 무한히 분화하면서 한없이 확장한다. 지식의 분화에는 원심력이 작용하고, 실재 세계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지식의 분화에 몸을 맡긴 사람은 진짜 세계로부터 계속 이탈하고 벗어날 수밖에 없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무한 분화하는 지식을 따라 원심력에 몸을 맡기면 매우 위험하다는 경고판을 장자는 이미 「대종사」편 앞의 「양생주」 첫머리에 세워 놓았다.(吾生也有涯, 以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그는 지식이란 실재 세계, 즉 구체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개념이라는 것은 실재 세계의 손님일 뿐이다.(名者, 實之賓也. 「逍遙遊」) 세계 그 자체는 구체적으로 유동한다. 그것이 실재이고 진짜이다. 지식이란 원래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진짜 세계를 개념이나 관념의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지식은 진짜가 아니라, 진짜를 개괄하는 것일 뿐이다. 당연히 지식이나 이론은 진짜 세계일 수 없다. 지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세계를 믿지, 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어설픈 지식인은 지식이나 이론을 화려하게 나열한다. 하지만, 높은 단계의 지식인은 투박하더라도 세계에 대하여 직접 말한다. 세계를 사유하지, 사유를 사유하는 일을 하지 않고 구체적인 세계에 직접 접촉한다. 장자는 구체적인 세계에 직접 접촉하고, 거기서 성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지적으로 완성된 사람이 보여주는 경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지적인 완성은 현실에서 검증될 뿐이다.우리는 지식 생산국이 아니라 지식 수입국이다. 지식은 구체적인 진짜 세계를 밭으로 삼아 바로 거기서 출생한다. 지식 수입국은 밭에서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을 모른 채, 수확된 이론 체계만을 가져다 쓴다. 생산 과정을 모른 채 이론을 수입한 나라는 그 이론을 바로 진리로 여긴다. 밭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으면 밭을 터전으로 삼지만, 그 과정을 모른 채 수확물을 수입만 해서 쓴다면 수확물 자체를 보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생산 과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주도권을 세계에 두고, 이론을 수입한 나라의 사람들은 주도권을 세계가 아니라 이론에 둔다. 당연히 지식 생산국에서는 세계가 변하면 이데올로기나 이론을 바꾸며 변화해 가지만, 지식 수입국은 한 번 받아들인 이론을 끝까지 믿으며 절대 바꾸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론으로 진짜 세계를 통제하려 든다. 한 쪽은 변화하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한쪽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지식과 실재 세계를 대하는 이런 태도의 차이가 바로 독립과 종속을 결정해버린다.조선 시대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패망의 기운에 붙잡힌 고려 말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 성립된 나라인 조선은 고려하고는 전혀 다른 통치 구조나 이데올로기를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성리학(性理學)과 중앙집권 관료체제를 선택한다.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 때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유학적 이데올로기다. 조선은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시기에 성리학을 받아들여 그것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정하고 난 후, 줄곧 원래의 성리학 모습을 지키려 매우 노력한다. 하지만 중국은 ― 물론 왕조가 교체되는 정치적 격변을 동반하였다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 구체적인 현실 세계의 사회 경제적 조건이 달라지면 바로 거기에 맞춰 이데올로기를 바꿨다. 그래서 같은 유학이라도 명나라 때에는 양명학(陽明學)으로 변하고 청나라 때에는 고증학으로 변한다. 다시 조선을 보자.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하면서 성리학을 이데올로기로 채택한 후 사상 논쟁의 핵심은 모두 누가 더 성리학의 원래 모습을 철저히 지키느냐에 집중되었다. 순수 집착에 빠진 조선의 엘리트들은 사회 경제적 조건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중국에서 들어온 진리로서의 성리학을 손톱만큼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한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 혹은 아젠다나 비전 같은 것들이 그 사회가 처한 요구와 일치하였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그 사회가 처한 현실적 요구와 비전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바로 비효율이 쌓이기 시작한다. 비효율이 쌓여가면서 국가는 허약해지고, 길을 잃는다. 조선은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맞춰 바꾸는 대신, 현실을 이데올로기에 맞추려는 노력만 했다. 세계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해진 이론에 꿰맞추려 한 것이다. 진리를 지키려는 순수한 집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 효율적이며 실재적인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는 이 흐름을 줄곧 유지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론에만 집착하는 일을 장장 200년 동안이나 한 것이다. 200년 동안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변함없이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 국가는 극단적인 비효율에 빠져 허약해졌다. 결국 1592년 일본의 침략 앞에 맥없이 당하는 치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이론 틀에 세상을 맞추려 하지 않고,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 대담하게 이론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중국은 그 이론을 생산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론을 생산한 나라는 이론이 현실이라고 하는 밭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시선의 무게 추를 이론에 두지 않고, 직접 현실에 둔다. 구체적인 세계와 현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지, 이미 정해진 이론을 금과옥조로 여기지 않는다. 이론은 그저 현실에서 생산된 부산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이론을 수입한 나라는 이론이 생산되는 그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채, 이미 생산된 이론만을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이론을 불변하는 진리로 여기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바꾸면 바로 정의롭지 않은 변절자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세상의 진화는 현실에 기반을 둔 변절자(혁신가)가 해내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근본주의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적인 완결성은 구체적인 현실에 시선의 무게 추를 두고, 거기서 사유의 밭갈이를 하는 우직함에서 드러날 뿐이다. 그 밭갈이의 완성은 또 이 세상에서 가장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 앞에 좌우된다. 지식의 원심력을 극복하고, 실재의 중력을 항상 느껴야 한다. 그것이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사는 길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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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8 23:02

이룬 공을 차고앉지 말라

성공한 사람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한 번 성공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또 다른 성공을 이루고 싶어 할 텐데, 그것을 못 하도록 하는 가장 센 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성공 기억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한 번 강력한 성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대개 성공할 때 사용하였던 그 방법과 섬광 같았던 결정의 순간을 짜릿한 신화의 중심 줄기로 붙잡게 된다. 하지만, 그 신화의 줄기가 다시 자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월이 그리도 무정하기 때문이다. 세월은 원래 있던 환경을 지우고 전혀 다른 환경을 세워가며 질주해 나간다. 이 동작은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할 때 발을 딛고 있던 그 상황과 조건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한 번 더 성공을 꿈꾸는 그 사람이 마주해야 할 상황은 언제나 새롭고 처음 직면하는 것이다. 이러한데도 성공 기억에 갇힌 사람은 새롭게 나타나는 조건마저도 과거에 했던 그 성공의 기억으로 다루려 한다. 움직이는 세상을 자신의 기억 속에 가두려는 무모한 시도와 다르지 않다. 한 번 더 큰 성취를 이루고 싶다면, 우선 그 짜릿한 기억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기억은 과거이고, 한 번 더 해야 할 성공의 결정적 순간은 이미 과거를 벗어난 환경 앞에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조건 앞에서 어떻게 새로운 결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이다. 노자는 말한다.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功成而不居) 공을 차고앉았다는 말은 바로 성공 기억에 갇혔다는 뜻이다.노자는 처음에 이 말을 정치적인 의미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정치인이 지속적인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성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남는 생명력 있는 권위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우선 자기가 이룬 공, 바로 그것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룰 때 사용하였던 방법에 고착되서는 안 된다. 에리히 프롬은 말한 적이 있다. 어떤 혁명가가 자신이 타도하려고 하는 대상을 타도하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그것은 이미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에 불과하다고. 왜 진실한 표정을 지은 채 혁명가로 자처하며 목숨을 불사하던 헌신적인 사람들이 혁명을 이룬 후에는 쉽게 비판받고 버림받는가. 그것은 혁명 대상을 타도하고 나서 그 자리를 차고앉으려 시도하면서 이미 자신이 타도하려던 그 대상과 부지불식간에 닮아 버리기 때문이다. 정치 자체를 상승시키지 못하고, 정권만 교체한 형국이다. 혁명의 기운이 감돌 때, 백성들이나 국민들이나 시민들은 모두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다른 세상은 다른 정치로만 가능하다. 혁명가들은 대개 다른 정치를 제공하겠다고 선동하지만, 결국 타도 대상이 앉았던 자리에 자신이 앉음으로써 다른 정치의 길은 요원해져 버린다. 정치가 상승하는 길은 사라지고, 권력만 교체된다. 이 정권이 저 정권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치의 발전이지 정권이나 권력의 교체가 아니다.당연히 혁명이라는 공을 이룬 후에는 그것을 차고앉으면 안 된다. 왜 아직도 현대의 유일한 혁명가로 체 게바라를 드는지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는 쿠바를 혁명시키고 나서 쿠바의 권좌에 눌러앉지 않았다. 바로 다음 혁명지인 볼리비아를 향해 떠났을 뿐이다. 체 게바라에게는 혁명만 있었지 권력이라는 의자에 앉으려는 정주(定住)의 욕구가 없었다. 그래서 혁명을 또 혁명하며 비로소 유일한 혁명가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서 들리는 익숙한 혁명가의 이름들은 사실 반항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정권 교체를 강조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는 권력의 교체는 있을지 몰라도 정치의 상승을 기대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이런 반항아들은 스스로를 혁명가라 자처하고, 자신들이 했던 반항의 활동을 혁명적이었던 것으로 포장한다. 진실한 혁명가는 스스로를 혁명가(革命家)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단한 혁명만 있기 때문에 자기를 어떤 집안(家)에 앉혀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집안(家)의 의자에 앉아 혁명을 말하려 하는 순간 그는 바로 반항아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반항아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타도하고 난 후, 바로 그 자리를 차고 앉아 바로 정주(定住) 형태의 집안(家)을 이루어버린다. 혁명이 성공한 그 순간을 차고앉는다. 혁명의 기억에 갇힌다. 이렇게 하여 앞으로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이 혁명의 기억을 가지고만 재단한다. 그 기억에 맞으면 선이고, 그 기억에 맞지 않으면 반동이다. 혁명의 깃발이 바로 완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모든 혁명의 과실은 역사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조작된 기억으로 담장을 친 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가 버린다. 어쩔 도리가 없이 혁명의 동네는 이 집안의 지배를 받는다. 역사가 더 흐르고 싶어도, 동네가 더 진보하고 싶어도, 혁명을 지속하고 싶어도, 혁명 시기 쌓인 증오를 벗어버리고 싶어도, 화해하고 싶어도, 다른 새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어도, 혁명의 그 기억에 갇힌 집안에 발목이 잡혀 있는 한, 한 발짝도 떼지 못한다. 혁명이란 지속적으로 혁명될 때에만 혁명이 된다. 권력의 교체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의 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진보적 혁명도 결국은 보수화되고, 혁명가들은 또 다른 권력자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 공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그것을 차고앉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다.혁명의 기억에 갇히지 않음으로써 정치 발전을 이루고 새 세상을 펼친 예로는 중국의 유방(劉邦)을 들 수 있겠다. 유방은 항우와의 치열한 전투를 거쳐 승리자가 된 후, 한(漢)이라는 이름을 단 새로운 정치 마당을 펼친다. 황제가 되어 새 정치를 펼치고 있는 유방에게 육고(陸賈)라는 신하가 말한다. 황제께서는 이제 경전을 공부하십시오. 여기서 경전은 철학이나 문학 혹은 역사 등 경세의 근본에 관한 학문을 가리킨다. 그러자 유방이 화를 내면서 말한다. 나는 경전 공부 없이도 말 잔등에 올라탄 채 천하를 차지하였다. 이런 경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자 육고가 차분한 어조로 대들며 재차 주장한다. 말 잔등에 올라탄 채로 천하를 차지했다고 해서, 말 잔등에 올라탄 채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유방의 위대한 점은 육고의 이 충고를 그 즉시 알아들었다는 데에 있다. 육고의 지도 아래 유방은 바로 경전 공부에 들어가는데, 이런 경청(傾聽)의 능력으로 유방은 천하를 차지할 때의 기억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혁명의 그 기세와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유방도 분명히 말 잔등에 올라탄 형상으로 국가를 다스리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공이 이루어질 때의 그 기억에 갇히지 않고 바로 변신을 감행하였다. 혁명가에서 국가 경영자로 변신함으로써 오히려 혁명을 완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통치자들은 모두 권력을 잡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결국 권력을 잡을 때의 그 기억에 갇혀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정치인에서 국가 경영자로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공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그것을 꿰차고 앉은 결과다.통치자들이 연이어 정치인에서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에 실패하면, 나라의 진보나 진화는 어느 단계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지 70년 만에 한계에 갇혀 긴 시간 새로운 출로를 찾지 못함으로써 탄력을 상실하고 낡아버렸다. 한계에 갇혀 늙어버린 형편의 내용은 무엇인가. 공을 이룬 후에 그것을 꿰차고 앉은 결과다. 늙었다는 평가를 받기 전까지의 우리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직선적 발전을 구가하였다. 바로 해방 후 건국, 건국 다음의 산업화, 산업화 다음에 민주화를 시대적 요구에 맞춰 잘 해낸 것이다. 건국산업화민주화의 직선적 역사발전은 국가에 효율을 가져다주어 사회 각 부문이 모두 탄성 있고 탄력 있었다. 풍모가 젊고 싱싱하여 도전적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까지 내달리고 난 다음에 우리는 그 다음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목표가 설정되어야만, 그 목표를 새로운 사명으로 삼아 나아가면서 이미 이룬 공을 꿰차고 앉는 퇴행적 탐욕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다음의 새로운 목표가 서지 않고 있으니,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의 공을 꿰차고 앉아 있고, 산업화 세력은 산업화의 공을 꿰차고 앉아 있으며, 심지어는 건국 세력까지도 건국의 공을 꿰차고 앉아 있다. 꿰차고 앉아서 자신이 세운 공(功)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민낯이다. 화려했던 그 성공의 기억을 붙들고 해왔던 얘기를 계속 해대며 자신의 입장을 권력화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정권이나 세력에 묻지 않고 역사에게 묻는다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제 건국 세력도 과거이고, 산업화 세력도 과거이며, 민주화 세력도 과거이다. 각 세력 집단들은 우선 자신이 벌써 과거가 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가 되었음을 인식해야만, 자신의 공을 꿰차고 앉지 않을 각성이 가능하고, 이 각성이 있어야만 새로운 탄력과 탄성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새 정치라 하고, 새 역사라 하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공이 이루어져도 그것을 차고앉지 않는 일(功成而不居)은 노자 철학의 핵심인 무위(無爲)의 한 형태이다. 노자에 의하면, 무위로만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무위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無不爲) 독일의 문호 괴테는 스스로를 뱀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허물을 벗고 항상 새로운 시작을 시도한다는 뜻이다. 괴테만큼의 성취를 이루고 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괴테의 성취는 부단한 허물벗기의 결과다. 허물을 벗는 뱀은 살고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마침내 죽을 수밖에 없다. 공(功)이라는 허물에 갇히면 안 된다.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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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31 23:02

역사의 진보는 필부들의 몫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의 여파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또 정국은 대선과 개헌 논의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한 마디로 혼돈의 시대다.이에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현 상황을 풀어보는 인문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세상보기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월 1회 게재된다.중국에 명나라 말엽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활동한 고염무라는 사상가가 있다.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립을 목도한 그는 『일지록』(日知錄)이라는 책에 세상사 흥망에 관한 글을 남기는데, 나중에 양계초(梁啓超)가 그것을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여덟 글자로 개괄하였다. 뜻인즉슨, 천하의 흥망은 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여덟 글자에서는 흥하고 망하는 일을 한꺼번에 말하고 있지만, 개괄되기 이전의 전체 문장을 보면 주로 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염무는 나라가 망하는 것과 천하가 망하는 것을 구분하여 말한다. 그것을 우리 사정에 맞춰 이해하면 정권이 망하는 것과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분한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정권이 망하는 것은 그 정권을 맡았던 엘리트들의 책임이지만,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면 이는 보통 사람들 모두의 책임이다.정권이 망하는 것과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다르다. 정권은 나라 안에서 통치권만 장악하는 집단이므로, 그 정권이 흔들린다고 해서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다. 오히려 정권이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는 역동적인 생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다수의 필부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정권을 망한 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경우에는 분명히 그 정권을 지탱하던 정치 엘리트들만 책임지고 물러난다. 그러나 나라가 흔들리는 일은 심각하다. 고염무도 글에서 말했듯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그 나라를 받치고 있던 공통의 가치관이나 법질서가 믿음을 상실하고 흔들리는 일이다. 구성원 일부가 동요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구성원 전체가 중심을 잡기 어려워하며 비틀거린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는 바로 구성원 전체가 동요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치관이나 법질서가 중심을 잃었다는 점에서 나라가 흔들리는 정도의 큰일이다.나라가 흔들리는 경우를 당하여 분노한 필부들은 촛불을 든 채 광장으로 모여든다. 그 분노는 썩은 최고 권부를 향해 있다. 썩어빠진 권부를 향해 정의의 분노를 발산하는 필부들에게 당신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어!라고 고염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로운 이 필부들에게는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필부들이 기득권 상층부의 부패로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니 황당하지 않겠는가. 부패하고 무능한 기득권층을 어떻게든 잘라버리고, 당장 위로를 받아도 시원찮은데 말이다.여기서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앉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기억해본다. 정치는 그 사회의 얼굴이다. 정치의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듣기 싫어도 이것은 사실이다. 청와대에서 박근혜-최순실이 벌였던 한심한 일들이 규모나 깊이는 다를지 몰라도 필부들의 세상에서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필부들까지 내려오지 않더라도 지금 정치적 공격권을 가지고 있는 야당에서는 이런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핵심은 국민이 마련해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사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권위를 주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국가 시스템을 임의적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국기(國紀)를 문란하게 한 것이다. 핵심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적인 관계로 공적인 구조를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내내 당을 사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어 왔다.그래서 항상 사당화(私黨化)라는 비판을 주고받는 것이다. 당의 공적 의사 결정이 왕왕 대표자 주위의 몇몇 사적인 인사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일은 비일비재 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권력을 사적인 맥락에서 운용한 것으로 호된 홍역을 치르곤 했다.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는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었다.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와 보자.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성적 조작과 같은 일들이 이화여대 외에는 정말 없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광주의 S 여고에서는 수시를 통한 대입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특정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임의로 수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른 학생들이 받지 못한 면접 관련 도움을 특정 학생은 여러 번 받기도 했다.그런데 이런 일이 그 학교에서만 일어났겠는가. 부산의 K 방송국에서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하루아침에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사장을 전격 교체해버리고, 전 사장이 했던 사업들을 모두 축소하거나 취소해버렸다. 정책의 일관성보다도 소유자의 입맛대로 하루아침에 사람을 교체해버리는 일은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문체부 국장이 대통령 맘에 들지 않는다고 졸지에 쫓겨나는 일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방송국 소유주하고 박근혜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신분의 높낮이 외에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그 방송국에서만 일어났겠는가.고염무가 볼 때, 나라 자체가 흔들리는 일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이미 조성되어 있는 나라 전체의 문화에 이유가 있다. 정치적인 개별 사건에 의해서는 겨우 정권이 바뀔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나라의 틀을 흔들 정도라면 이는 이미 전체적인 문화적 행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화 구조에는 모든 필부들이 참여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유형이 사회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고, 오직 청와대에서만 벌어진 사건이었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문제가 엄중한 이유는 필부들이 살고 있는 사회 도처 어디서나 이런 유형의 일들이 언제나 목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염무는 나라가 흔들리는 일에 대해서 필부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럼 분노에 빠진 이 필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답한 일이다.『장자』의 「인간세」편 첫 대목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 안회가 스승인 공자를 찾아와 국권을 남용하며 난폭한 정치를 하는 독재자 때문에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위(衛) 나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공자가 말한다.너는 거기에 가 봤자 처벌이나 받고 말겠다. 원래 그런 일을 할 정도의 훌륭한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먼저 도(道)를 갖추고 나서 남도 갖추게 한다. 너는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여 아직 불안정한데, 어찌 가능하겠느냐? 그러자 안회는 자신이 그 일을 하려고 얼마나 높은 경지까지 수양을 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 하며 스승을 설득하려 애쓴다. 그러자 스승이 한 마디 한다.그래가지고 어떻게 상대방을 감화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안회는 갈수록 더 이해가 안 되었다. 결국 자신은 도저히 어찌해야 가능한지를 알 수 없으니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스승이 말한다. 심재(心齋)하라! 이 말을 그대로 풀면 마음을 재계하라는 뜻이다. 자기 마음에 출입문을 세우지 말고, 보루도 쌓지 말며, 오직 자신 본바탕의 음성을 듣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라는 말이다.스승은 심재의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하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듣도록 하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밖에서 들어 온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기란 공허하여 무엇이나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참된 도는 오직 공허한 상태에서만 모인다. 이 공허의 상태가 바로 심재이다. 귀로 듣는 일, 마음으로 듣는 일 등에는 아직 제한적인 자기 관점이 강하게 적용되는 단계이다. 기(氣)의 단계는 아직 이념이나 가치가 개입되기 이전으로서 세계의 가장 원초적 상태이다. 어떤 가치나 관념이 자리 잡기 이전 혹은 자기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은 단계이다. 이 단계에 도달해야만 순수 절정으로서의 자신으로 존재하게 되어 감화력을 갖는다.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이 하는 정의로운 활동은 대개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정의로운 사람과의 충돌일 뿐이다. 그러니 충돌만 존재하고 감화력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충돌에서 설령 이기더라도 정치적 승리로 그치고 만다. 정치적 승패는 상황을 같은 층위에서 반복하거나 뱅뱅 돌게 만든다. 승패의 교환만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자체는 발전하지 않고 순환만 한다. 심재하여 자신 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게 되어 감화력이 발동하면 우리는 정치적 승리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승리로 나아갈 수 있다. 필부 한 사람 한 사람이 심재하여 달라진다면, 필부들의 삶 자체에 진보적 방향성을 심어줄 수 있는데, 필부들의 삶이 이루는 구조와 방향성을 우리는 문화라고 하지 않는가.필부들이 삶을 꾸리는 일상의 현장에서 작은 박근혜-최순실들이 사라져야, 청와대의 박근혜-최순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형태의 박근혜-최순실이 또 등장할 수밖에 없다. 필부들이 채우는 삶의 현장이 바로 그 나라의 문화이고, 한 나라는 그 문화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답은 필부들이 활동하는 일상의 공간에 있다. 일상의 정의가 나라의 정의를 결정하는 것이다.필부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문화에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 문화를 구성하는 필부가 심재하는 것은 또 폐쇄적인 생각에 갇히지 않게 된다는 것과 같다. 심재한 필부는 폐쇄적 생각을 벗어났기 때문에 다른 폐쇄적 생각과 싸움을 벌이는 대신에 개방된 태도로 시대의 흐름과 접촉할 수 있다. 비로소 우리는 과거와 벌이는 투쟁을 통해 시대의식을 포착하여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박근혜 국정농단과 같은 퇴행적 사건과 투쟁하면서 잘못하면 덩달아 퇴행할 수 있다. 필부들의 각성이 특히 필요하다. 우리는 어쨌든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최진석 교수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건명원 인문학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석사, 베이징대학교 대학원 도가철학 박사 학위과정을 받았다. 저서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등을 펴냈다.△송필용 화백은 전남대 미술교육과,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서울 학고재갤러리, 이화익갤러리 등에서 20회 개인전을 열었다. 1996년 제2회 광주미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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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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