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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남의 일구일언]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회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9년 7월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서의 일이다. 사탑을 이리저리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제법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란다. 한두 컷 찍어주고 핸드폰을 돌려주려 하니 온갖 재미난 포즈를 바꿔가면서 계속 찍어달란다. 속으로 참 재미있는 친구라고만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혹시나 하고 가슴 앞으로 맨 소형 가방을 살펴보았다. 아뿔싸. 지퍼가 절반 정도 열려있는 게 아닌가. 옆을 보니 다른 두 명의 신사들이 필자 옆에 바짝 달라붙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하고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소매치기 일당은 순식간에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잃은 것은 없었지만 남은 여행일정 내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 답한다. 식당에서 핸드폰이나 소지품을 그대로 두고서 화장실을 다녀와도 별 일이 없단다. 밤늦게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란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반면에 낯선 사람에 대해 긴장과 경계를 해야만 하는 사회. 두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사회적 경쟁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처럼 불특정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 사회 자본은 인적 자본, 물리적 자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 자본은 물리적 자본같이 물리적 형태를 띠는 것도 아니고, 인적 자본과 같이 개인의 자질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사회 자본은 혼자만의 노력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축적된다. 사회 자본은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접착제라 할 수 있다. 사회 자본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믿음, 이웃과의 친밀성, 지역사회 참여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지역사회의 모임이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할수록 사회 자본은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자본의 세 요소 중에서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만 이웃과 친밀해지고, 지역사회 참여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필자가 전북도민 500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바에 의하면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많을수록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젊을수록 믿음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요소인 이웃과의 친밀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교육수준이었다.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이웃과 관계가 좋은 반면에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관계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종교유무가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게 만드는 두 번째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종교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서 지역사회 참여도가 높았다. 사회자본의 세 요소들과 개인의 행복점수 간의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났다. 개인의 사회자본 점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지역 주민을 보다 신뢰하고 이웃과 더 가까이 지내고 지역의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자본을 높이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회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발전을 보장해준다 하겠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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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4 16:58

[권혁남의 일구일언] 다시 꺼내본 전주-완주 통합 징비록

권혁남(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완주군 이서면은 섬 아닌 섬이다. 지도를 보면 전주시가 중간에 끼워들어 이서면과 완주군 본토를 완전히 분단시켜놓았다. 마치 미국 알라스카가 캐나다를 사이에 두고서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행정구역의 땅덩어리가 다른 시군에 의해 이처럼 동강난 기형적인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전북 혁신도시를 가봐라.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도 이 동은 전주시, 저 동은 완주군이다. 길 하나를 두고 이쪽 가게는 전주시, 저쪽 가게는 완주군이다. 이 모두가 같은 생활권인데도 행정구역이 달라 일어나는 웃픈 일들이다. 지난 연말부터 전주-완주 통합 문제가 또 다시 큰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늦어도 올 가을까지는 통합문제가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전주-완주 통합의 당위성과 필요성, 긍정적 파급효과 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난 세 차례(1997년, 2009년, 2013년)에 걸친 통합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실패할 때 마다 도민들이 입었던 아픔과 후유증을 돌이켜본다면 통합문제를 다시 꺼내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도내 인구 180만 명이 붕괴 직전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전북의 현실, 전주-완주 주민들이 겪고 있는 각종 불편 등을 생각한다면 결론은 또 다시 통합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여수와 청주의 통합은 모두 3전 4기 끝에 성공하였다. 우리도 4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통합을 다시 시도해야한다. 2009년 필자는 뜻있는 사람들과 전주-완주 통합추진위원회를 조직, 추진위원장을 맡아 민간인 중심의 통합운동을 벌인바 있다. 통합이 실패로 끝나고 필자가 메모해 두었던 전주-완주 통합운동 징비록(懲毖錄)을 다시 꺼내보았다. 징비록을 참고하여 몇 가지 도움말을 주고자 한다. 첫째,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민간인 중심의 통합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09년은 당시 완주지역의 국회의원, 군수, 지방의원 모두가 반대하였다. 2013년에는 당시 완주군수는 찬성하였으나,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반대하였다. 민간인 중심의 운동은 자금과 조직 면에서 정치인을 결코 상대할 수 없다. 따라서 도지사와 전주시장, 전주지역의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이 앞장서 안호영 국회의원, 박성일 완주군수와 지방의원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이들에게 통합시의 시장, 의장, 상임위원장 직을 공개적으로 약속해라. 또한 통합이 되면 전주시 국회의원 선거구는 3개에서 4개로 늘어난다. 늘어난 지역구에 안호영 의원을 추대할 것을 전주시민의 이름으로 공개 약속해라. 둘째, 완주군민들이 통합으로 얻게 되는 각종 혜택을 최대화시키고, 불이익을 최소화시키는 정책들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완주군민들이 우려하는 소위 3대 폭탄(세금 폭탄, 전주시 빚 폭탄, 혐오시설 폭탄)을 불식시켜주어야 한다. 셋째, 결국 최종 결정은 완주군민들의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는데, 주민투표 참여율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 2013년 주민투표는 53.2%의 투표율에 55% 통합반대, 45% 찬성이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통합 찬성률이 높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삼례읍(26.1%), 봉동읍(34.9%), 용진면(31.0%)의 투표율이 매우 낮았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아무쪼록 올 가을에 통합이 결정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시가 힘차게 출범하여 새만금과 함께 전북의 강력한 성장엔진으로 작동해주기를 새해 아침에 간절히 바란다. /권혁남(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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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7 17:24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하는 소셜 미디어

▲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코로나 팬데믹.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폭발한 인종차별 갈등과 폭력사태. 모든 여론조사들의 바이든 승리 예측. 그럼에도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7300만 표 이상을 얻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무능과 거짓말, 속임수, 인종주의, 수많은 도덕적 결함에도 7000만이 넘는 유권자가 그를 찍었다고 놀라워했다. 그러기에 트럼프는 더욱 더 패배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4년 전이나 올해의 트럼프 선거 전략은 단 하나다, 바로 철저히 편 가르기이다. 트럼프는 모든 사람의 대통령, 통합 대통령 등에는 전혀 관심 없다. 오직 내편의 사람들만을 챙기고 내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는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미국은 이미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정치적 갈등과 반목은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두 동강으로 분열된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앞으로도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조국장관 사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검찰개혁,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우리의 여론은 갈기갈기 찢겨져있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의 주범은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손쉽게 표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은 지역, 계층, 이념 등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다. 정치인에 못지않은 또 다른 공동정범은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미디어들이다. 이들이 국민들을 통합시키기 보다는 양 갈래로 갈라놓고 있다. 지난 9월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크게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페이스 북 등 소셜 미디어 전직 임원들의 증언과 고백에 의하면 소셜 미디어들이 우리 인간들을 연결시켜주면서 동시에 조종한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업자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각 이용자별로 정치적 성향 등을 분석하여 만들어낸 알고리즘을 통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소셜 미디어 중독을 만들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보수 또는 진보인 이용자는 온전히 자신의 성향과 맞는 콘텐츠만 제공받고, 다른 성향의 콘텐츠를 접촉하기가 어렵게 된다. 아울러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의 팔로우 친구 맺기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섬에 갇히게 된다. 문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뉴스나 정보들이 확인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섬에 갇혀 사는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객관적 시각과 비판적 판단능력을 잃어버리고, 정치적으로 극단화되기 쉽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넘쳐나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좀비로 전락하였다. 나와 상대방의 의견과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관용(tolerance)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초석이다. 지금처럼 소셜 미디어가 정치적 양극화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동된다면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된다. 소셜 미디어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다른 관점과 콘텐츠를 접촉하여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키울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수정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가 더 이상 사회를 분열시키기보다는 사회통합을 촉진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만약 소셜 미디어가 이를 자율적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제는 국가가 개입하여 강제로 이행시켜야하지 않을까 싶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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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3 18:24

추미애와 가차저널리즘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9월은 추미애 장관의 달이었다. 추장관 아들의 군 휴가 의혹이 본격적으로 다시 불거진 9월 1일 이후 추미애 아들 두 키워드가 신문과 방송, 인터넷 언론을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미디어 오늘의 분석에 의하면 9월 1일부터 20일까지 포털 네이버에서 이 두 키워드가 동시에 들어간 기사가 무려 1만 4824건이었다고 한다. 미디어 오늘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20일 동안 조선일보는 추장관 아들 의혹보도를 총 189건, 하루 평균 9건씩 보도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문화일보 136건, 중앙일보 116건, 동아일보 115건으로 보수신문들이 추장관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였다. 문제는 추장관 아들 의혹 이슈가 과연 국회를 마비시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중요한가이다. 코로나19 방역, 경제회복, 재난지원, 장마와 태풍 피해복구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다른 국가적 난제들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이슈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이 언론이 정치인이나 저명인사의 사소한 실수와 해프닝, 흠결 등을 사안의 맥락과 관계없이 과장해서 보도하는 것을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이라 한다. 가차(gotcha)는 영어의 I got you의 줄임말로 잘 걸렸어 딱 걸렸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꼬투리 잡기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는 가차 저널리즘은 사건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외모와 복장, 말실수, 무심한 행동을 꼬투리 잡아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보도 경향을 말한다. 가차 저널리즘의 국내 사례로는 2004년 17대 총선과정에서 정동영 열린 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발언이 대표적이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젊은이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발언이었으나 앞뒤를 쏙 자르고 노인폄하발언으로 둔갑한 정의장의 문제 발언은 총선 판세에 엄청난 후과를 가져왔다. 여당인 열린 우리당의 180석 이상 압승이 예상되었던 판세 속에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은 이를 반격의 빌미로 삼아 연일 공세를 펼쳤다. 여기에 조중동 보수신문들 마저 일제히 야당 편을 들고 나섰다. 역풍을 막기 위해 정동영 의장은 국회의원 후보직을 사퇴하고, 매일같이 노인정을 방문하여 큰 절과 눈물로 사죄하기에 바빴다. 선거결과는 열린 우리당이 가까스로 과반수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또한 2010년 11월, 북한군의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연평도 포격 현장에서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한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도 가차저널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안 대표는 한동안 보온병 의원으로 놀림을 받았다. 2013년 3월, 당시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핸드폰으로 누드 사진을 검색하는 장면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돼 야동 심재철이라는 낯 뜨거운 별명을 얻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심의원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야동 심재철이 뜨고 있다. 진보와 보수 언론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2011년 종합편성채널들이 개국하면서 가차저널리즘이 크게 늘어났다. 가차저널리즘은 국민들로 하여금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만든다. 언론이 중대한 사건이나 이슈를 전달함에 있어서 각 부분을 고립시키고, 파편화시키며,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인식시키게 만든다. 국민들로 하여금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만든다. 가차저널리즘이 심해지면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인식시키고, 희화화하여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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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4 16:12

코로나 시대 여름나기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코로나19 재확산, 54일간의 최장기 장마, 무더위와 열대야, 경자년(庚子年) 여름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예년의 여름나기는 대체로 더위와만 싸워 이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 선풍기 등 냉방기를 미리 준비하고, 7월 말에서 8월 초의 혹서기에 시원한 곳으로 국내외 여행 겸 피서를 다녀오면 큰 고비가 넘어가곤 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가 모든 걸 바꿔 놨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조심스러워 대부분이 홈캉스를 하고 있다. 진정되어가나 싶던 코로나가 광복절 광화문집회가 기폭제가 되어 전국으로 재 확산되고 있다. 아빠는 재택근무, 아이들은 집에서의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가족 간의 대화가 늘어난 기쁨은 잠시다. 아침에 각자 일터로 나갔다 밤늦게 잠시 얼굴을 대할 때는 좀 더 많은 대화와 스킨십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막상 비좁은 공간에서 가족들이 하루 종일 부딪치다 보면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더 잦아지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도 더 깊어진다. 밖에 나가자니 코로나 감염 걱정, 집안에 있자니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여기에 무더위까지 더해지면 짜증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은 짜증스런 한여름 무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 지가 궁금해졌다. 부채 말고 마땅한 냉방장치가 없어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지금 같은 지구온난화도 없고,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낫지 않았을까. 선조들의 여름나기 방법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잘 정리해주셨다. 다산이 말한 무더위를 이기는 여덟 가지 방법(消暑八事, 소서팔사)을 보자. 솔밭에서 활쏘기(松壇弧矢, 송단호시),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槐陰?韆, 괴음추천), 넓은 정자에서 투호하기(虛閣投壺, 허각투호),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淸?奕?, 청점혁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西池賞荷, 서지상하),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東林聽蟬, 동림청선), 비오는 날 시 짓기(雨日射韻, 우일사운), 달밤에 발 씻기(月夜濯足, 월야탁족).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한량들의 신선놀음이다. 국내외 이동이 막히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만 하는 올 여름 코로나 무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SNS와 블로그를 통해 올 여름에 딱 맞는 피서법들을 찾아보았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피서법은 에어컨, 선풍기를 아낌없이 틀어놓고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통해 그동안 미뤄뒀던 드라마와 영화를 실컷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이 피서법을 따라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꼭 보고 싶었으나 10부작이라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작품이 하나 있었다. 금년 4-5월에 미국 ESPN이 방송하여 대박을 터뜨린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10부작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다. 넷플릭스 부터 가입하였다. 미리 준비한 시원한 맥주와 함께 편당 50분짜리 10편을 한 방에 폭풍 감상하였다. 워낙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재미있는 작품인지라 더위는 물론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역시 코로나 시대에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올 여름에 맞는 피서법으로는 사람 뜸한 곳에서 풀벌레 소리 들으며 야간 산책하기, 창밖 빗소리듣기, 사람 없는 계곡 물에 발 담그기, 맛있는 음식 만들기 도전하기, 시원한 곳에서 책 읽기 등이었다. 대가족이나 모임에서 단체로 시원한 바다나 계곡을 찾아 물놀이하고 맛있는 음식 해먹는 피서법은 이제 안녕이다. 무이동, 비대면을 특징으로 하는 코로나 시대에 맞는 피서법을 찾아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보자.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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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7 16:20

매미의 5덕과 공직자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오늘도 매미가 그대로 있다. 아파트 10층 창문 방충망에 매미가 사흘째 꼼짝도 하지 않고 붙어있다. 가랑비를 맞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미동도 없다. 매미가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수시로 관찰하게 된다. 매미는 이슬만 먹고 산다더니 사실이었다. 매미의 일생은 참으로 경이롭고 동시에 애잔하다. 짝짓기 후 매미 암컷은 나무의 줄기에 알을 낳는다, 겨울을 난 알은 유충으로 깨어난다. 깨어난 유충은 나무를 타고 내려와 땅 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빨아 먹으며 오랜 기간 동안 성충이 되기를 기다린다. 성충이 되기까지 보통 7년이 걸리지만 종류에 따라 5년, 13년, 17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살던 유충은 성충이 된 여름밤 드디어 땅 위로 나와 매미로 우화한다. 이후 매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에 짝을 찾아 짝짓기를 한 후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수컷 매미들의 짝을 찾기 위한 울음소리가 그리도 처절한 모양이다. 우리 선조들은 매미는 인간에게 일체의 해를 끼치지 않는 덕충(德蟲)으로 여겼다. 매미의 5덕인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머리 모양이 선비가 쓰는 관(冠)을 닮은 문덕(文德), 이슬만 먹고 사는 청덕(淸德),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는 염덕(廉德), 집을 짓지 않는 검덕(儉德), 때 되면 왔다가 때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줄을 아는 신덕(信德)을 갖추고 있다고 여겼다. 매미가 인간에게 끼치는 유일한 해악은 소음일 것이다. 최고 100데시벨(dB)에 달하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엄청난 소음공해다. 집회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확성기 소음 기준치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인 점을 고려한다면 매미의 울음소리는 공해임에 틀림없다. 지난 1990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매미 떼가 하도 울어대 중요한 음악행사가 취소되기까지 하였단다. 때 마침 경남 양산시가 공직사회 청렴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으로 매미의 청렴정신을 내세웠다고 한다. 양산시는 내부 행정시스템 메인화면 상단에 매미의 오덕인 청렴(淸), 검소(儉), 염치(廉), 신의(信), 학식(文)을 실천하는 청렴한 하루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양산시장은 조선시대 임금은 매미의 교훈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정무를 맑고 투명하게 수행하라는 뜻으로 매미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익선관(翼蟬冠)을 썼다. 공직자들이 청렴한 공직생활을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매미의 오덕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지인인 군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다산은 관리가 갖춰야 될 최고의 덕목으로 첫째도 염(廉), 둘째도 염, 셋째도 염이라고 하였다. 청렴함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염(廉)은 밝음을 낳으니 사물이 정(情)을 숨기지 못할 것이요, 염은 위엄을 낳으니 백성들이 모두 명령을 따를 것이요, 염은 곧 강직함이니 상관이 감히 가벼이 보지 못할 것이다(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이 살았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미 같은 공직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앞으로 모든 장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취임식에서 익선관을 쓰고서 선서를 하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매미에 대한 보답으로 설사 매미가 잠을 설치게 울어대더라도 측은지심과 관용의 덕을 베풀어 주어야겠다. 우리 선조들은 더위를 이기는 8가지 일(消暑八事, 소서팔사) 중의 하나로 매미소리 듣는 것을 꼽기도 하였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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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30 17:35

삼성의 충견으로 전락한 언론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단돈 60억 원을 20년 만에 9조 원으로 불린 세계적 부호, 20년 누적 수익률이 자그마치 15만%에 이르는 환상적 재테크의 주인공 이재용. 하지만 그의 승승장구는 대부분 얌체 짓이었습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이용한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유치한 술수에 대해서 재판부마다 대체로 편법이나 불법은 아니다. 하면서 눈 감고 아웅 해 주었지만, 이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밑바탕부터 흔들어놓는 해악이었습니다. 이런 범죄야말로 반체제적, 반국가적 사범인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지난 달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결정하였다. 이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재용 씨는 욕심을 비우고 양심을 찾으시오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제단이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사실과 그 내용을 소개한 언론은 한겨레를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절대 다수의 언론이 이를 보도할 리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노골적으로 삼성의 홍위병 역할을 해대는 언론을 향해서도 사제단은 꾸짖었다. 수사심의위원회가 단 아홉 시간 동안의 심사 끝에 검찰의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요절복통할 일입니다.,,더 웃기는 일은 언론들의 부화뇌동입니다. 이로써 그간 삼성의 불법행위는 없었음이 밝혀졌고, 이제야 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동아일보)며 코로나 사태와 미중무역 갈등 등으로 그러잖아도 여러 가지로 위축된 삼성을 그만 놔주자고 합니다. 지난 달 8일 이재용부회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을 앞두고 우리나라 굴지의 신문과 통신사들이 일제히 아니 되옵니다라고 충성경쟁을 벌였다. <삼성 위기입니다... 사실상 사법부국민 향한 마지막 읍소> <절벽 끝에 선 삼성 경제 위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국민 60% 이재용 부회장 선처 의견> <어느 한 기업에 대한 4년간의 수사와 재판> <삼성 검찰 역습에 참담...내부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 반응도> <외신들 삼성 불확실성 커져>. 당시 언론에 실린 주요 제목들이다. 이쯤이면 언론 스스로가 삼성의 충견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정권에 대해선 파수견을 넘어 투견과 같은 공격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언론이 왜 이렇게 삼성에 대해서는 안내견 또는 애완견이 되어 맥을 못 추는 걸까. 한 마디로 돈 때문이다. 경제, 정치, 법조계를 장악한 삼성이 언론을 주무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특히 신문은 삼성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종이 신문들의 수입구조를 보자. 대략 광고 60%, 협찬 20%, 구독료 10%, 기타 10%이다. 기업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광고와 협찬 수입이 전체 수입의 80%를 차지한다. 기업 중에서도 삼성이 뿌리는 광고와 협찬은 절대적이다. 삼성이 신문, 특히 경제신문들의 숨통을 쥐고 있다. 그러니 신문들이 삼성의 애완견, 반려견을 자처하면서 스스로 꼬리를 쳐대는 것이다. 성명서에서 사제단은 주가조작에다 회계사기도 모자라서 오로지 일신의 탐욕을 위해 국가 권력자와 뇌물로 거래하고, 모두의 노후를 대비하는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뻗치고, 그러면서도 코로나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운운하며 못 본 체 해달라는 저 파렴치한 행위는 반드시 응징되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제단의 외침이 삼성의 충견으로 전락한 언론을 깨우칠 리 없다. 이런 언론에게 사회정의를 위한 목탁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언론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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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2 17:22

70살 된 전북일보가 가야할 길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북일보가 지난 1일로 창간 70년을 맞이했다. 70년이란 세월은 결코 간단치 않다. 우리 인간도 70살을 맞이하기가 힘든 일이라는 뜻에서 고희(古稀)라고 하지 않는가. 굴곡진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매우 열악한 지역 언론 환경 속에서 한 지역신문사가 7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북일보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는 간단치 않을 것이다. 전북일보를 둘러싼 어려운 환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인 신문 산업의 쇠퇴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신문의 난립이다. 전북일보는 세계 각 나라의 유수신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전략들을 참고하여 앞으로의 생존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문 산업이 쇠퇴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2000년대에 몰아친 인터넷 혁명이다. 독자들이 온라인 뉴스시장으로 돌아서고, 동시에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무료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뉴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종이신문 독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독자가 줄어들자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가 줄어든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수신문들은 디지털화 전략을 내세워 온라인시장에서 디지털 독자를 확보하는 디지털 퍼스트 전략으로 바꿨다. 가장 성공한 사례는 뉴욕타임스이다. 2019년에 종이신문 독자와 디지털 독자 포함 전체 독자가 400만 명을 돌파했다. 뉴욕타임스 등의 세계 유수신문들은 이제 더 이상 종이신문으로 보기 어렵다. 디지털 미디어로 봐야한다. 영국의 인디펜던트 신문은 발행부수가 85%나 줄어들자 2016년에 아예 인쇄판을 없애고 온라인신문으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독일 신문사들이 선택한 타개책은 인공지능(AI) 활용이다. 독일의 대형 신문사들은 로봇저널리즘 도입뿐만 아니라 콘텐츠 개발, 광고 마케팅, 독자 관리, 배송 업무에까지 업무 전반에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독일신문업계는 전체 업무량의 20%를 AI에 의존하고 있는데, 2022년에는 약 70%까지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미국, 유럽과는 달리 아직 우리나라 국민들은 뉴스콘텐츠는 유료라는 인식이 매우 낮다. 포탈 등을 통해 뉴스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유료 디지털 독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중앙지들도 아직 성공하지 못한 디지털 독자 확대 전략을 지역신문이 성공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지역신문들도 종이신문을 벗어나 뉴스의 디지털화를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당장에 디지털 유료독자 확보는 어렵지만 디지털 공간에서 지역신문의 영역을 확보해놓지 않으면 머지않아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디지털과 모바일로 떠난 독자는 종이신문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신문이 디지털과 모바일 세상으로 찾아가 독자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종이신문 구독률이 한 자리 수까지 떨어진 우리나라 상황에서 지역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퍼스트 전략과 함께 인공지능 활용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뉴스콘텐츠도 달라져야 한다. 먼저 가장 지역적인 주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문제를 제기하고, 묻지만 말고 해결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이른바 솔루션 저널리즘(solution journalism)을 추구해야한다. 공짜뉴스가 널려있는 온라인시장에서 유료 지역신문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지역적인 소재를 심층보도와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접근해야한다. 그것만이 다른 미디어들의 콘텐츠와 차별화시키는 유일한 전략이다. 전북일보가 난립하고 있는 15개 지역신문 중의 하나가 아닌, 차별화된 유일한 지역신문으로 우뚝 서기 바란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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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1 16:53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를 해보니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코로나19 불똥이 내게도 떨어졌다. 나라고 피할 수 없었다. 온라인 비대면 강의를 해야만 했던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30여 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서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 얼굴을 마주보고서 달라진 헤어스타일과 패션, 신상 변화 등을 화제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벼운 농담 따먹기도 하고, 때로는 수업태도가 안 좋은 학생을 야단도 치곤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구실 책상에 앉아 강의 자료를 화면에 띄어야 하는 등 프로그램을 조작함과 동시에 카메라를 쳐다보고서 강의를 하려하니 모든 게 서툴고, 어색하였다.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다른 대학의 한 교수는 안동역 노래를 불렀다는 뉴스기사도 보았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교수가 강의를 녹화해서 온라인 시스템에 올려놓으면 학생들이 아무 때나 그 내용을 스스로 열어보고서 시청했다는 증거를 남겨야만 출석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과의 대화나 질문, 피드백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교수나 학생 모두가 불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필자는 실시간 화상강의로 바꾸어 보았다. 사전녹화방송을 생방송으로 바꾼 것이다. 비록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화상을 통한 비대면이지만 동시에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전녹화 강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었다. 실시간 화상강의를 해보니 강의실에서의 대면수업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점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굳이 학교까지 오지 않고서 집에서 편한 옷차림과 자세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학생은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서 강의를 듣는다. 많은 여학생들이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서 수업에 참여하기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세수나 화장을 하지 않아서란다. 어떤 학생은 카페에서, 친구 집에서,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수강하였다. 학교 강의실에 직접 참석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 에너지, 스트레스를 따지면 온라인 강의가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 교수가 화상을 통해 학생들을 모니터할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들의 강의집중도가 높았고, 토론과 질문이 활발하였다. 팔자에 없던 온라인 강의를 직접해보니 그동안 온라인 강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교육계에도 인공지능 도입이 크게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과 결합한 온라인 수업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앞으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학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인 2030년에 교수 업무의 59.3%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이지성, 에이트). 초중고에 인공지능 교사가 등장할 날도 더 빨라질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아이들은 인공지능 교사를 인간 교사 보다 더 편안하게 여기며, 더 좋아하고, 더 신뢰한다고 한다. 인공지능 교사가 가진 지식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교사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없기 때문이란다(이지성, 에이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교육자들은 더욱 빨라질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대체에 대한 대비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 집안에서도 대부분의 일들을 할 수 있더라. 코로나19가 깨우쳐준 사실 중의 하나다.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가 초래할 세상의 변화인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분석, 예측,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정치, 경제, 가정, 의료는 물론이고 교육에도 심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과, 그 변화가 벌써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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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7 20:16

선거여론조사 공표금지는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깜깜이 선택. 상품 A와 B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상품들에 관한 주변사람들의 최신 평판은 차단한 채 오래전의 평판만을 가지고서 선택을 강요한다면 과연 그 선택이 바람직할까? 오늘부터 21대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되고, 닷새 후면 본 투표일이 다가온다. 그런데도 선거일 전 6일 동안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 금지조항(공직선거법 제 108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후보자에 대한 최신 평가를 알지 못한 채 투표를 해야만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래도 이는 과거에 비하면 크게 나아진 것이다. 2005년 선거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대통령 선거는 무려 23일,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14일 동안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었었다. 여론조사 보도금지는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1998년까지 캐나다는 투표 전날 정오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여론조사의 공표를 금지하였다. 우리에 비하면 공표금지 기간이 긴 것도 아니다. 캐나다 언론사들이 대법원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여 캐나다 대법원이 이를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위헌으로 판결하였다.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로 큰 소동이 빚어진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2년 이전까지 투표일 일주일 전부터 선거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되었었다. 1997년 총선에서 르 파리지앙 신문이 국외(스위스)의 여론조사 발표 사이트를 링크해 놓고 간단한 논평 기사를 실었다는 것 때문에 고발됐다. 이에 이 신문은 여론조사 결과들이 인터넷에 널려 있다. 여론조사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을 언론만이 모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결국 2002년에 여론조사발표 금지 기한을 선거일 전 하루로 대폭 줄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 깨지지 않는 전통이 있다. 법정 선거운동기간(23일) 전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후보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반면 국회의원선거는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인 6일 동안 선두가 바뀐 사례가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 정세균 후보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까지 오세훈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17%포인트 뒤졌지만 실제 선거결과는 정 후보가 오 후보를 12.9% 포인트 차이로 크게 승리하였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20대 총선 직후 실시한 유권자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7.4%가 투표 1주일 전부터 투표 당일 사이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거일 전 6일 동안 선거여론조사 공표를 금지시키는 것은 유권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의 올바른 선택을 가로막는 것이다. 약 30년 전인 1992년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사가 갖는 부정적 측면과 국민의식수준 등을 근거로 내세워 이 조항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의 제한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막판에 여론조사가 공표되면 부동층이 선두주자에게 쏠리는 이른바 우세자 편승효과(bandwagon effect)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우리 스스로가 확인하였듯이 이미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의식을 갖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SNS 등을 통한 여론조사 유포를 기술적으로 막기 어렵고, 가짜 여론조사 결과 유출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더 크다 하겠다.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참정권 행사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여론조사 금지 조항은 위헌적 요소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등국민인 대한민국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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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9 15:17

언론은 코로나 사태 해결의 걸림돌인가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학자 베넷(Bennett)은 언론 보도의 편향을 개인화, 드라마화, 파편화, 정부 당국의 무능과 무질서 등 네 가지로 요약하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를 다루는 우리 언론의 보도를 분석해보면 베넷의 네 가지 편향 중에서 특히 개인화, 정부 당국의 무능과 무질서 프레임이 두드러진다. 언론보도의 개인화란 사건의 전체 맥락을 짚어주기보다는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경향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건의 심층적인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기보다는 개인의 시련과 비극, 승리,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인물 중심 보도방식이다. 그래서 언론은 항시 사건과 관련된 영웅과 악당, 희생자의 휴먼 스토리를 키우고, 특정 정치인들을 사건과 연관시키는 프레임을 동원한다. 따라서 개인화 프레임은 국민들에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향을 일으킨다. 모든 드라마나 소설은 물론이고 각종 사건 역시 천사와 악마, 영웅과 악마가 만들어진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 때에도 우리 언론은 사고의 원인과 사후 대책 등의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선주인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과 그 가족에 초점을 맞추어 마녀사냥하기에 바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를 들여다보면 영웅과 악당 만들기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영웅은 코로나와 치열하게 싸우는 의료진이다. 이는 언론의 영웅 만들기가 아니더라도 온 국민이 공감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영웅이다. 악당은 누구인가? 신천지교회 이만희 총회장과 신도들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당시 언론이 덧씌운 유병언 회장과 구원파에 대한 악당 프레임에 비하면 신천지와 이만희 회장에 대한 악당 프레임은 매우 약한 편이다. 정부와 여당은 사태의 책임을 신천지로 돌리지 말라는 야당의 주장에 언론이 동조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언론계가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악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이다. 보수 언론과 야당은 코로나 사태의 주된 책임을 대통령과 정부에 씌우고 있다.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중국의 눈치만 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중국 대통령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책에 따라 전 세계 언론이 모두 코로나19로 명명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일보는 우한 폐렴 우한 코로나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 언론이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프레임은 정부 당국의 무능과 무질서 편향이다. 이 프레임은 무질서를 강조하고, 정부 당국이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보도방식이다. 일부 언론은 정부 당국의 대책과 노력에 대해 사사건건 냉소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고, 마땅한 대책도 없다,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들이 늘어나 한국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마스크 대란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등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을 조장시키기까지 한다. 보수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면 이들은 정부가 조속히 사태를 진정시키고 모든 것을 정상화시키려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론 보도가 사태의 원인 규명과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갈등, 고통, 불안과 불만, 무질서 등에 초점을 맞추는 값싼 감정적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서 사건이나 사태를 악용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사태가 하루빨리 수습되고 질서가 회복되는 데 언론이 걸림돌이 아니라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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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2 16:57

정치인들의 먹방과 이미지 전략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놀랄 것도 없지만 정치인들의 먹방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며칠 전 황교안대표가 성균관대 앞에서 1980년 어떤 사태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도 떡볶이와 어묵을 먹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문제의 발언에 묻혔지만 황대표가 서민들과는 다르게 기다란 꼬치 두 개를 젓가락질 하듯이 떡볶이 먹는 사진이 또한 화제였다. 예전에 박근혜 후보가 시장에서 고구마를 코에 대고 냄새 맡으며 골랐던 장면만큼이나 생뚱맞다. 정치인들은 평소 다니던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피하고 꼭 재래시장만을 방문한다. 이 때 드레스 코드도 중요하다. 반드시 허름한 점퍼에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이들이 재래시장에서 빠지지 않고 펼치는 서민 코스프레 연출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나가는 아이의 의사도 묻지 않고 들어 올려 활짝 웃는 장면 연출이다. 본인은 좋을지 몰라도 억지로 들려지는 아이의 표정은 한 결 같이 뜨악하니 죽을 맛이다. 또 하나는 바로 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 먹방이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각 정당대표들의 먹방 메뉴를 검색해보았다. 김무성 대표는 어묵, 옥수수 빵, 마른 호박, 팥죽, 만두, 떡, 취나물, 닭 강정을 먹었다. 문재인 대표는 어묵과 족발을, 안철수 대표는 토스트를 선택하였다. 먹방 연출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주로 먹는 메뉴는 햄버거다. 트럼프의 햄버거 먹방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정치인들이 서민 코스프레를 연출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소탈하고 친근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다. 모든 상품이나 브랜드, 연예인, 스포츠맨 등과 같이 정치인 역시 이미지가 생명이다. 오늘날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투표 결정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정책 개발보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 등은 모두 이미지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이다. 이미지란 말의 어원은 모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미지란 어떤 대상의 겉모습에 대한 인공적인 모방이나 표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실체와는 다르며, 조작된 허위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기 전 이미지들을 반추해 보자.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근엄하고 강단 있는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부분 허상이고 거짓이었음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영상 미디어 발달로 인해 선거에서 언어적 메시지 보다 비언어적 메시지가 더 많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인의 표정이나 목소리, 시선, 제스처, 패션스타일 등 비언어적 요소들이 정책과 이슈 등 언어적 메시지 보다 더 많은 정치적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 메러비언(Mehrabian)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언어적 요소가 7%, 목소리가 38%, 얼굴 표정이 55%로 비언어적 요소가 93%로 압도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유권자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이미지다. 후보자의 실체와 본질은 중요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지선거는 폐해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후보들 간의 승패가 정치 능력이나 정책 등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후보의 용모, 표정, 말솜씨, 연기력 등의 사소하고 피상적인 이미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에 비해 국회의원 후보들의 실체 파악은 상대적으로 좀 더 용이하다. 후보의 이미지에 속아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실체를 꼼꼼히 따져보도록 하자. 제대로 된 후보를 뽑기 위한 이런 유권자의 조그마한 수고는 반드시 큰 기쁨으로 돌아올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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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3 15:41

언제까지 여론조사로 후보를 공천할 것인가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번 415 총선도 여론조사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여론조사 공화국이다. 정당의 후보 공천은 물론이고 정당 간 후보단일화까지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신속성, 효율성을 강조하는 대한민국다운 발상이다. 문제는 여론조사란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그 오차를 감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피검사, 소변검사를 통해 우리 몸 안의 건강상태를 거의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여기서 뽑힌 피, 오줌 한 방울의 표본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전체의 피와 오줌(모집단)과 성격이 똑같다. 이같이 모집단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표본을 대표표본이라고 한다. 피나 소변은 한 사람의 몸 안에 있기 때문에 대표표본을 확보하기가 쉽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 특정 지역, 집단, 나아가 사회 전체의 성격과 똑 닮은 대표표본을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모집단의 성격과 표본의 성격 차이를 표본오차라 하는데 모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센서스가 아닌 이상에는 아무리 정교하게 표본추출을 해도 표본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사자가 주관성을 버리고 과학적 표본추출을 하였다면 표본수가 500명인 경우는 4.3%포인트, 1000명인 경우는 3.2%포인트의 표본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표본 수 1000명의 전국조사에서 A후보가 52%, B후보가 48%가 나왔다고 하자. 1000명 조사에서 일어나는 표본오차 3.2%P의 의미는 3.2%의 두 배인 6.4% 이하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후보 간의 4%P 차이는 표본오차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두 후보 간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두 후보 간에 차이가 1000명 조사에서는 6.4%, 500명 조사에서는 8.6% 이상 차이가 나지 않으면 두 후보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 간에 1%P만 차이가 나도 본질적인 차이인 것으로 보고서 후보 공천을 결정짓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한편 조사방법이 유선전화냐 무선전화냐, 면접원조사냐 기계조사(ARS)냐에 따라서도 조사결과가 확 달라진다. 지난 연말 한국통계학회는 재미난 실험을 하였다. 이러한 조사방법들을 섞어서 5가지 조합을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평가에 대해 물은 결과, 조사방식에 따라 최대 17.8%P 차이가 났다. ARS조사는 조사비용이 싼 만큼 응답률도 낮고, 응답의 편향성이 높아 신뢰성이 가장 낮은 조사라는 점이 재확인되었다. 지난해 5월에 확정된 민주당 당내 경선룰을 보면 사실상 여론조사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1차 심사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는 공천 적합도 조사가 40%이다. 2-3배수로 추려 실시하는 최종 경선에서는 권리당원 투표 50%, 비당원 여론조사 50%이다. 100%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했던 지난 20대 총선 때보다는 여론조사의 비중이 절반으로 줄었다지만 아직도 여론조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확정된 경선룰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수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를 제대로 실시하고, 결과를 정확히 해석해서 억울하게 피해보는 후보자가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주기 바란다. 첫째, ARS조사는 피하고 경비를 조금 더 들여서라도 무선전화 중심의 면접조사를 해야 한다. 둘째, 조사결과 후보들 간의 차이가 표본오차 범위 안에 있으면 차이 없음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표본추출, 조사방법, 질문내용, 조사자의 의도 등에 의해 얼마든지 여론이 왜곡될 수 있는 여론조사에 의존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선택을 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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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9 16:15

제대로 된 국회의원 잘 뽑는 법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여기저기서 예비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수백,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 누구누구가 참석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보기엔 대부분이 영 시원치 않다. 어쩌면 저런 사람이 나올까. 그렇게도 사람이 없나.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선거판이 되지나 않을까싶다. 이제 며칠 후인 17일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일 이후부터는 합법적인 선거 운동이 허용된다. 단 길거리 현수막이나 유세 차량, 확성기 등은 제한된다. 프로스포츠 세계에는 오직 실력 있는 선수만이 살아남는다. 계약기간동안의 성적표만이 유일한 기준이다. 다른 기준은 있을 수 없다. 72미터 폭풍드리블 끝에 인생 골을 성공시킨 손흥민 같이 실력 있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만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스포츠는 계속 발전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정치판은 영 딴판이다. 한 눈 팔지 않고 소신껏 열심히 일만 한 사람은 쫓겨나거나 홀대받는다. 오직 구단주에게 잘 보인 선수만이 살아남는다. 실력과 성실성보다는 정당대표들과의 친분관계로 살아남는 곳이 프로 정치세계이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맨날 이 모양 이 꼴이고 국민들로부터 조롱과 외면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 십 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유권자에게 있다. 유권자들이 혈연, 지연, 학연, 소속정당만 보고서 묻지마식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선택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의 정치판은 영원히 고칠 수 없다. 유권자가 수많은 후보자들 중에서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현역 의원을 계속 쓸 것인지 교체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 그러면 고민의 절반은 해결되는 셈이다. 만약 교체로 결정이 되면 여러 대안 중에서 최선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제대로 된 정치인을 재단할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흔히들 후보의 도덕성, 과거 경력, 정책공약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꼽고 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현역 의원들의 지난 4년간 의정활동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의정활동은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다. 의정활동은 입법 활동, 정책 활동, 국정감시활동을 말한다. 다시 말해 현역 의원이 지난 4년 동안 국회 출석을 얼마나 충실히 했고,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들거나 고쳤으며,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했는지, 정부의 업무수행을 제대로 감시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현역의원을 교체하기로 맘먹었다면 대안들 중에서 전직의원인 경우에는 과거의 의정활동을 따져봐야 한다. 정치신인의 경우는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그 분야에서 얼마나 성실히 노력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통해 미래의 의정활동을 예단할 수 있다. 우리 지역 현역 의원들 10명 모두가 재선을 노리고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역들에 대한 평가는 다른 후보자들보다 매우 엄격해야한다. 운동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듯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고생스런 의정활동보다는 소속정당의 대표에게 끊임없이 눈도장을 찍고, 지역행사나 지역주민들의 애경사에 참석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여의도를 팽개치고 지역구에 죽치고 앉아 애경사나 쫒아 다니는 국회의원은 필요 없다. 국회의원이 무슨 동네 친목회장인가? 진정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만 정치꾼은 오직 다음 선거만을 생각한다. 내년 총선에서는 정치꾼은 도려내고 정치가를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정치판이 바뀐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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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2 20:21

지역이 살려면 청년층을 잡아라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822,883. 2019년 9월 말 현재 전북의 인구수이다. 지난 해 12월에 비해 13,949명이 줄었다. 이대로 가다간 2,3년 안에 180만 명대가 무너질 지경이다. 2000년에 인구 200만 명이 무너졌을 때 도민들이 받았던 충격은 지진 강도 9.0에 맞먹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로부터 인구 190만 명이 허물어지는 데는 불과 6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2006년 190만 명이 무너지고, 10여 동안 180만 명대를 가까스로 지탱해오다가 180만 명의 붕괴가 눈앞에 와있다. 인구 180만 명은 전북도민들이 감내할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인구절벽. 비단 우리 전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체가 맞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국가 어젠다이다. 지난 10년간 무려 150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0.9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돈다발을 흔들면서 출산장려를 독려해온 그 동안의 정책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결혼하면 1억 원, 출산하면 3000만 원을 주겠다고 공약하여 당시에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던 허경영 후보의 혜안만이 옳았음이 확인되었다. 인구절벽은 저출산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모든 지역의 지자체가 출산지원금과 장려금 지원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이게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진단이다.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저출산의 원인은 출산보육 복지가 아니라 지역문제라고 하였다. 낙후된 환경을 피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지역에서는 청년 인구가 무너지고, 자연히 출산이 급감했다. 게다가 서울에 올라온 지방청년들은 높은 집값과 물가로 결혼과 출산을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지금 와서 고향을 보니 떠날 때보다 더 쇠락해 돌아갈 수도 없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을 지방정책이 있어야 했다.고 말한다(한국경제, 2019.11.4.). 아울러 조교수는 지역인구 감소 대응책을 지금처럼 시군단위로 해서는 효과가 없고 보다 넓은 권역차원에서 마련해야한다고 말한다. 옳은 지적이다. 얼마 안 되는 지역인구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인접한 시군 지역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던가. 도 단위로 보면 결국은 제로섬 게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전라북도 역시 더 이상의 인구감소를 막고 인구 증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도청 기회조정실 대도약기획단 내에 인구정책혁신팀을 신설하여 인구정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180만 출향도민들을 대상으로 제비(JB)고향회귀센터를 운영하며, 공유농업, 청년 참여형 리빙랩, 하늘바람물 청정지역 지정 사업 등을 실시할 계획이란다. 그러나 이것 또한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청년층(20-39세)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지난해 전북을 떠난 인구가 1만 3천여 명인데, 이중 80% 이상이 청년층이다. 이들이 전북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리 때문이다. 결국은 도내 인구 유출을 막고, 외부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에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고, 향토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한편으로 공공기관의 이전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역 청년층을 붙잡기 위해 결혼출산육아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 알선과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은퇴자들의 귀농귀촌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고, 전북의 성장엔진을 돌릴 사람은 청년층이다. 전북이 살기위해서는 청년층을 잡아야 한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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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4 17:39

조국 사태와 언론개혁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66일 만에 조국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조국 전 장관 개인과 가족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장관 한 사람 임명을 두고서 온 국민이 두 패로 나눠 죽도록 싸워댔다. 법무부 장관 자리가 대단한 건지, 조국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건지. 만약 조국이라는 사람을 행정안전부나 다른 장관 자리에 앉혔어도 그 난리가 났을까. 분명한 것은 조국사태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더더욱 절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참에 어떤 방향으로든 검찰개혁은 이뤄져야 하고, 이뤄질 것으로 본다. 문제는 언론이다. 이번 조국사태에서 검찰개혁과 세트로 묶여진 화두는 언론개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국민들은 검찰이 흘려주는 정보만을 가지고서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촛불광장에서 성난 민심은 기레기 아웃을 줄기차게 외쳐댔다. 그러다 유시민씨의 알릴레오가 김경록 PB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영방송인 KBS와 검찰의 짬짜미 의혹을 폭로하면서 언론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14일 조국 장관 사퇴 발표 직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언론 스스로 그 절박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신뢰받는 언론을 위해 자기 개혁의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언론은 무한한 자유와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반면에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주어진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함부로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론은 공정한 심판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부 언론은 직접 선수로 뛸 뿐만 아니라 선수들을 지휘하기까지 한다. 특정 정파의 대변자 역할은 물론이고 그 정파를 독려하고 지시하는 감독 역할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힘을 갖고 있는 언론이 일개 장관과 국회의원 날리기는 일도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검찰과 언론 모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선출된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검찰과 언론의 권력은 무한하다는 점 역시 같다. 검찰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견제장치와 입법을 통해 개혁을 실천할 수 있다. 반면 민간기관인 언론은 제어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에 개혁이 쉽지 않다. 국가가 나서면 언론탄압, 언론간섭의 위험성도 있고, 언론계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이 망라한 위원회에서 언론개혁의 방향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신문업계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신문 구독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방송업계 역시 해마다 적자 폭이 커지는 등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신문과 방송 보도가 지나치게 정파적이고, 무책임하며, 품격마저 떨어져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신문과 방송에 대한 불신이 계속된다면 신문과 방송 산업 모두가 공멸할 것이다. 언론은 살기위해서라도 보다 책임 있고 품격 있는 언론으로 변화해야 한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서 공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론이 책임감을 갖고 공정성과 품격을 지켜야만 그들이 원하는 언론자유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고 품격을 갖춘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언론이 자율적으로 개혁해야한다. 최소한 치욕스러운 기레기 소리는 더 이상 듣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이 스스로 개혁의 길을 갈 것 같지 않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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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17 17:40

총선과 호남 민심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호남사람들은 공산당 투표를 한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호남 민들의 특정 후보와 정당에 대한 몰아주기 투표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선거 결과들을 보자. 1987년 13대 대선을 시작으로 14대, 15대 대선에서 호남 민들은 김대중 후보에게 90% 이상의 몰표를 주었다. 특히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광주 97.3%, 전남 94.6%, 전북 92.3%라는 사실상 100%에 가까운 몰표를 주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역시 몰표를 받았다. 광주 95.2%, 전남 93.4%,, 전북 91.6%. 이거에 비하면 지난 19대 대선 때 호남에서 몰표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문재인 후보(광주 61.1%, 전남 59.9%, 전북 64.8%)는 표를 받은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 총선도 마찬가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전라북도 14개 선거구 전부를 평민당이 싹쓸이 했다. 14대 총선에서는 14개 선거구에서 12개, 15대 총선은 14개 선거구에서 13개, 16대 총선은 10개 선거구 중 9개, 17대 총선은 11개 선거구 모두를 민주당 뿌리의 한 정당이 휩쓸었다. 18대 총선에서는 11개 선거구중 9개, 19대 총선은 11개 선거구중 10개를 민주당 뿌리의 정당이 압승을 거뒀다. 2016년 20대 총선은 국민의당이 10개 선거구 중 7개, 민주당이 2개, 새누리당이 1개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이 아닌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과거 흐름과는 달랐지만 특정 정당이 압승을 거둔 전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북은 선거구가 10개로 나누어져도 표심이 같이 움직이는 사실상 단일 선거구이다. 조국 파동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충성도가 강철대오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전북의 민심을 본다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독주는 거의 틀림없다. 전북도민들의 특정 정당 몰아주기 투표행태 전통과 작금의 민심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민주당이 한두 석 빼놓고는 압승할 것이다. 전북도민들을 포함한 호남 민들은 왜 그토록 특정 후보와 정당에게 몰표를 던지는 걸까? 한마디로 한풀이 때문이다. 지역차별에 대한 서러움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행위가 바로 투표이다. 설령 내가 미는 대선후보가 당선되지 않아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제 1당이 되지 않아도 투표장에 나가서 한 표를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누구에게 몰표를 주자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다 알고 있다. 생각이 똑같기 때문이다. 호남사람들을 같은 생각, 같은 투표행동으로 이끄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퍼트남(Putnam)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자본이란 한마디로 이웃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친밀성을 말한다. 수도, 전기, 도로, 통신망 등 한 사회를 연결시키는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하드웨어라면, 사람들을 끈끈한 신뢰로 연결해주는 사회 자본은 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소프트웨어다. 사회자본이 빈약하면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유상종.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어울리다 보면 비슷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마음이 맞는 이웃과 연대를 형성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비슷한 가치와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웃주민들에 대한 신뢰와 연대인 사회자본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태도나 신념을 갖도록 하고, 공동체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특정 후보와 정당에 몰아주기 투표는 지역주의에서 비롯된다. 지역주의 투표는 호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3김 시대가 끝나고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정당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뽑자고 호소해도 소용없다.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엄연한 민심이고, 민심을 억지로 바꿀 수도 없지 않은가. 참으로 어려운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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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9 16:36

미리 보는 조국 인사청문회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된 조국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무대에 오르기도 전부터 장외에서 뜨겁고 매서운 검증을 받고 있다. 후보자, 가족들과 관련한 각종 의혹들이 매일같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조 후보자는 서해맹산(誓海盟山)의 각오로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임전무퇴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앞으로 벌어질 조 후보자 인사 청문회장은 정권의 명운이 걸린 역대 최고의 전쟁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아는 모 대학 교수가 지난 정권 때 장관 후보자로 유력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장관은 차치하고 장관 후보자가 되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단다. 200개 항목이 담긴 사전 질문지에 질려버리고, 인사 검증 팀이 직접 들고 온 개인 신상과 관련한 산더미 같은 자료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단다. 인사 청문회 무대에 올라갈 후보자로 확정 발표되기 전까지의 사전 검증이 나름 철저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후보자들이 청문회 무대에 올라만 가면 온갖 부도덕, 탈법적 행위가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다행히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후보자와 가족들이 치른 모욕과 마음의 상처는 평생 앙금으로 남을 것이다. 불행히도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후보자는 희대의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혀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그 가족들이 겪게 될 고통은 오죽하랴. 인사청문회가 열심히 쌓아놓은 한 사람의 평생 공든 탑을 무참히 날려버릴 수도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인사권은 인정하지만 단지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해서, 선거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깜도 안 되는 인사를 함부로 중용 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여과 장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그 동안 인사청문회가 깜도 안 되는 수많은 인사들을 걸러냄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견제하였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보여준 인사청문회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앞으로 개최될 조국 후보자의 청문회는 틀림없이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정론, 무용론 여론을 정점에 달하게 만들 것이다. 역대 최고의 전쟁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조 후보자 청문회 장면을 미리서 쉽게 그려볼 수 있다. 과거의 기억들을 동원한다면 안 봐도 비디오다. 벌써부터 시작되었지만 조국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에 대한 검증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후보자와 가족들의 신상 털기와 도덕적 흠집잡기에만 매달릴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조 후보자와 아들 딸 부인 동생 등 가족의 티끌만한 흠집마저 끄집어내고,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를 검증하는 척 하면서 심하게 공격할 것이다. 어떤 의원은 자기주장과 질문만 잔뜩 늘어놓고서 후보자의 대답은 못하게 막을 것이다. 또 어떤 의원은 사퇴하세요 사과하세요 소리만 질러댈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다. 여당 의원들은 결사적으로 후보자를 보호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야 의원들 간에 막말과 심한 욕설이 오가고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지면서 청문회장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장내 질서유지와 정리를 위해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할 것이다. 정회와 속개가 거듭될 것이다. 조 후보자는 이날만 견뎌내면 된다는 심정으로 어떠한 굴욕적인 언사에도 저자세로 임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가다보면 청문회는 끝나고 만다. 이런 볼썽사나운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혀를 내차면서 TV를 꺼버릴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 청문회가 바꿔져야 한다. 최소한 미국처럼 도덕적 검증은 사전검증이나 비공개로 바꾸고 청문회는 오직 자질과 정책 검증에만 집중한다면 지금과 같은 부작용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조국 청문회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주의를 부추겨 정치무관심을 조장시키지나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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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2 16:56

한일 갈등과 조선일보의 친일 논란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반 일본 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작년 10월 대법원이 일제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자 일본의 아베 총리가 이는 국제법 상식에 벗어난다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경제보복을 가했다. 이에 우리 국민들은 과거 일제의 참혹한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도 없고, 사법부의 정당한 판결을 트집 잡아 우리 정부를 공격하고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의 뻔뻔함에 분노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일부 보수신문들이 국민감정에 반하고, 일본을 이롭게 하는 기사들을 실은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유 없이 맞고 돌아온 아이 때문에 화가나 옆집과 말다툼하는 판에 빌미를 제공한 우리 아이 잘못이라고 옆집을 옹호해주는 평소 사이좋지 않은 시누이의 몽니라고나 할까.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에 비난이 집중되었다. 조선일보는 전략물자가 한국에서 북한으로 유출됐다는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였고, 한일청구권 협정문제도 일본 주장을 그대로 옮기기까지 하였다. 이런 조선일보의 보도를 일본 극우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일본 정부는 이걸 빌미로 수출 규제를 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기고문을 일본어판에 한국인은 얼마나 편협한가라는 제목으로 바꿔 달았다고 한다.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기사는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제목으로 바꿔 달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에게 과연 어느 나라 신문이냐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 언론시민단체가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서 조선일보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폭거마저 감싸고 나섰다. 친일언론, 왜곡편파언론, 적폐언론 조선일보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한 때 화제가 되었던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의 지면 광고 카피이다. 조선일보가 딱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했지만 조선일보의 친일 감정은 지난 100년 동안 흔들림이 없다. 1920년 송병준 등 친일파들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조선일보를 창간시켰다. 1924년 민족주의자 신석우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조선일보는 잠시 민족지로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총독부로부터 사사건건 검열과 탄압을 받으면서 심한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1933년 조선 최고의 광산왕인 방응모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서부터 조선일보는 철저히 친일신문으로 변절하고 만다. 1등 신문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1등 기록을 남겼다. 조선 신문 최초로 새해 첫날 1면에 일왕 부부의 초상을 대문짝만하게 싣기 시작했고,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기한 것도 1등이었다. 일본군의 침략전쟁을 위해 조선 동포들에게 헌금을 강요한 국방헌금 사고(社告)도 제일 먼저 실었다. 조선의 민중을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표기한 것도 조선일보였다(오마이뉴스, 2001년 3월 5일). 조선일보는 자신이 맘만 먹으면 국회의원, 장차관 날리기는 일도 아니고, 노무현,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렸듯이 정권을 얼마든지 갈아엎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국민들로부터 어떠한 선출이나 신임절차도 거치지 않고, 견제장치도 없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언론이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다른 건 달라도 좋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 문제에서 만큼은 생각이 일반 국민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언론은 같은 나라 언론이라 할 수 없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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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5 17:23

지역에 어른이 없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역의 갈등 현안이 또 터졌다.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취소 결정으로 지역사회가 찬반양론으로 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나서서 중재하거나 문제를 풀어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다. 수십 년 간 풀리지 않고 있는 전주-완주 통합문제, 전주종합경기장 활용방안 등 지역의 갈등 현안이 터지면 오직 당사자들의 삿대질과 터질 듯한 목청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모르쇠이다. 여기에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면서 애매모호하고 그럴싸한 말과 어정쩡한 입장만을 내놓는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결정 장애자 같이 못나 보인다. 이러다보니 당사자들 간의 갈등만 커지고, 문제 해결은 물 건너가고 만다. 이럴 때 지역의 어른이 몹시 그립다. 어떤 이들은 우리 지역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없을까. 중앙의 고 김수환 추기경, 광주전남 지역의 고 홍남순 변호사나 고 조비오 신부 같은 분이 우리 지역엔 없을까. 혹시 우리가 지역의 어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거나, 지혜를 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건 아닌지.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른인가. 먼저 어른은 꼰대와는 다르다. 어른다운 행동은 꼰대질과는 결이 다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꼰대질이란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어른다운 행동이란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지식과 경륜이 저절로 많아지는 게 아니고 인격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생활환경이 급변하는 현실에 아주 무감각하고, 탐욕스러우며, 독선적이고, 수치심을 잃어버린 노인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식은 부모를, 학생은 선생을, 아이는 어른을 존경해야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존경할 만한 선생과 어른이 어디 그리 흔한가. 지역의 어른은 더 이상의 자리나 명예를 탐하지 않고서 오로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에 힘써야 한다. 지역사랑을 끊임없이 실천하고, 언행이 진실 되며, 겸손하면 주위로부터 존경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어른은 최첨단 정보나 지식에는 뒤처질 수 있으나 두터운 세월의 지혜만큼은 젊은이들을 압도한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또는 노마지교(老馬之敎)란 고사성어가 있다. 사람도 늙은 말의 지혜를 따르지 못한다는 이 고사는 전국시대 제나라 환공(齊王 桓公) 휘하의 명재상 관중(管仲)과 얽힌 일화에서 비롯된다. 전쟁 중 눈길에 길을 잃어 병사들이 위급한 상황에 빠지자 관중은 짐을 나르던 말 중에서 가장 늙은 말을 골라 짐을 풀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을 앞장 세워 병사들을 이끌고 난공불락 천연요새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단다. 몸은 늙어도 지혜는 녹슬지 않는 법. 지역에 어른이 없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처럼 가까이 두고서 못 찾는 건 아닌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큰 바위 얼굴은 위대한 정치가도, 재력가도, 군인도 아니다. 평생 진실 되게 살고, 겸손하며, 사랑을 실천해온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역 어른을 찾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이제라도 지역 어른들의 지혜를 잘 활용해야 한다. 도청과 시군 청이 나름대로 존경받는 원로들을 모셔 원로자문회의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수시로 어른들의 지혜를 구하라. 또한 지혜와 권위를 가진 어른들이 지역의 갈등 현안을 중재하는 데 앞장선다면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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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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