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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목소리로 무대를 만들다⋯창작소극장서 열린 ‘필로우맨’ 희곡 낭독회

지난 27일 오후 7시, 창작소극장서 열린 희곡 낭독모임 진행
마틴 맥도나 희곡 ‘필로우맨’ 중심, 류가연 창작극회 대표 큐레이터로 참여
20대부터 50대까지 5명 참가자 작품 통해 새로운 감정 발견 표현하는 시간

지난 27일 창작소극장서 열린 ‘salon de 울림: 배우와 함께하는 희곡의 소리’ 낭독 모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전현아 기자.

(완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류가연, 정세영, 김은정, 임은영, 김다비, 정숙인 씨. 

“읽기만 하는데도, 어느 순간 우리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지난 27일 오후 7시께 전주 창작소극장 1층 작은 카페. 낯선 욕설이 튀어나올 때마다 웃음이 번졌고, 대사를 넘기며 인물의 감정에 스며드는 순간마다 테이블 위 따뜻한 찻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salon de 울림: 배우와 함께하는 희곡의 소리’ 낭독 모임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이번 달 함께 읽은 작품은 영국 극작가 마틴 맥도나의 작품 ‘필로우맨’. 삶을 끝내려는 인물 A 앞에 온몸이 베개로 된 필로우맨이 나타나 어린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고, 그 이야기를 쓴 작가 ‘카토리안 카토리안’이 전체주의 국가의 도살장에서 끌려가며 벌어지는 전개는 참가자들의 감정선을 쉼 없이 흔들었다. 잔혹한 설정과 블랙유머가 공존하는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는 낭독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났다.

이날 모임에는 김다비(46), 임은영(50), 김은정(29), 정세영(27), 정숙인(55) 씨 등 5명이 참여했다. 배우이자 창작극회 대표인 류가연 씨가 큐레이터로 나섰다. 이들은 8인용 사각 테이블을 둘러앉아 희곡집을 펼쳐 들고 준비해 온 빵과 차를 나눴다.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이 희곡집 낭독회 참여자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내, 대사를 주고 받으며 금세 연극을 함께 만드는 동료로 변했다.

세 번째 참여했다는 김다비 씨는 “종이를 들고 읽는데도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점점 보이더라”며 “독서처럼 시작했다가 옆 사람과 호흡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욕설을 읽으며 민망해 선글라스를 썼다는 일화도 웃음을 자아냈다.

첫 참여자 임은영 씨는 “인물 파악도 안 된 상태였는데 감정이 자연스럽게 붙더라”며 “오랜만에 희곡의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김은정 씨는 “여럿이 함께 읽으니 감정이 훨씬 풍부해졌다”며 “연기에 대한 호기심을 부담 없이 경험해볼 기회였다”고 했다. 창작극회 배우 정세영 씨는 두 번째 참여로 “바쁜 일정에 희곡을 읽기 힘든데, 이렇게 모여 읽는 시간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지난 27일 창작소극장서 열린 ‘salon de 울림: 배우와 함께하는 희곡의 소리’ 낭독 모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희곡집을 낭독하고 있다. 전현아 기자.

현장은 순간순간 표정이 달라졌다. 대사를 읽다 인상을 찡그리거나, 손을 떨 정도로 몰입하는 이도 있었다. 배우 못지않은 억양으로 욕설을 쏟아내 모두를 웃게 만드는가 하면, 마음에 드는 구절을 휴대폰으로 찍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눈빛이 오가고, 배역에 따라 서로 격하게 쏘아보거나 화를 내는 장면까지 더해지자 짧은 대사 하나에도 여섯 명의 감정이 크게 흔들렸다.

류가연 큐레이터는 “일상에서는 하지 못하는 표현도 극을 통해선 해볼 수 있다”며 “이번 모임은 특히 ‘뱉어보자’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작품 속 거친 언어를 낭독하며 뜻밖의 해방감을 느낀 듯했다.

지난 27일 창작소극장서 열린 ‘salon de 울림: 배우와 함께하는 희곡의 소리’ 낭독 모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희곡집을 낭독하고 있다. 전현아 기자.

창작소극장의 ‘salon de 울림’은 매달 다른 희곡을 읽는 프로그램으로, 단순 독서 모임을 넘어 ‘연극의 첫 단계인 대본 리딩을 시민이 직접 체험하는 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일부는 8월 시작 이후 꾸준히 참석하며 자신만의 참여 루틴을 만들었다.

희곡을 소리 내 읽는 행위는 타인의 감정과 시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작은 연극적 경험이다. 여섯 명의 목소리가 작품의 어둠과 웃음을 오가며 이어간 낭독은, 늦가을 밤 작은 카페를 조용한 무대로 바꿔놓았다.

전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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