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향한 집념으로 퍼져나간 연금술은 과연 연금술사들의 허황된 꿈이었을까? 비록 금을 만들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원소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고, 인, 염소, 질소 등과 같은 원소들을 발견하여 오늘날 화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연금술사들이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에서는 화학 반응을 도와주는 촉매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후 근대 산업혁명을 거치며 이러한 지식들은 신비의 영역을 벗어나 인류의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로 발전해 갔다. 저렴하게 대량 생산되는 염소계 소독제는 대도시의 위생과 공중보건 체계를 지켜주었고, 질소 화학비료는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제 현대인들의 생활에 화학제품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화학물질은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6~70년대에 산업화를 거치면서 울산과 여수 등 동남해안 항구도시에 거대한 규모의 석유화학 공단을 건설하였다. 지금 이순간에도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원료물질과 제품들이 국토 동맥인 고속도로를 타고 수도권과 전국 곳곳으로 운반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연간 약 17억 9천만톤의 물량이 도로에서 운반되고 있으며, 그중 약 27%가 화학 관련 공장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해안에서 출발한 운반 차량이 중부 내륙지역을 지날때에는 2시간 이상 운행시간이 경과하여, 운전자의 집중력이 낮아지고 교통사고 발생 위험성이 증가하게 된다. 특히, 겨울철에는 그늘진 도로에 잘 보이지 않는 블랙아이스가 생성되어 미끄럼을 유발하거나, 차량 내부 난방으로 졸음운전을 유발하는 등 교통사고 위험성은 더욱 증가한다.
2020년 2월 17일 전북 남원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2터널에서 발생한 32중 추돌사고는 이러한 위험이 현실화된 대표 사례이다. 결빙 구간에서 질산을 운반하던 탱크로리가 전도되며 화재와 유출사고로 이어져 5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부상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의 약 16%가 바로 운반 차량 사고였으며 전북에서는 9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전북지방환경청에서는 2023년에 한국환경공단․한국도로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휴게소 등 8곳에 사고대응 방재장비함을 연차적으로 확대 설치하고 매년 운반 차량을 대상으로 안전운행 캠페인을 실시해 왔다. 또한, 염산 운반 차량의 부식방지 코팅 검사를 지원하고, 동절기 운반 차량 특별점검을 실시하는 등 사고 예방과 대응체계를 강화해 왔다. 내년부터는 관내 사고다발지역․상습결빙구역과 폭우․폭설 기상 특보 등 안전운행 정보를 운반계획서 제출자에게 제공하여 사고 예방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하지만 최종 안전장치는 결국 운전자 개개인이 경각심을 갖고 안전운행에 집중하는 것이다. 맑은 겨울날 도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 아래에는 다양한 위험을 숨기고 있다. 출발 전 차량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운행 중에는 안전거리 확보와 예방적 감속 등의 정속 운행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 방법이다. 또한, 적정한 운행 시간에 충분한 휴식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예방 수단이다.
우리는 겨울철 미끄러운 길에서는 조심조심 천천히 걷는다. 조금 빨리 가려다가 낙상이라도 당하면 병원 신세를 지는 등 낭패를 당하기 때문이다. 화학물질 운반은 다른 어느 교통 물류보다 더욱 높은 주의와 책임을 요구한다. 다가오는 겨울철, 전북의 길 위에서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할 약속이다. 안전 운행이 결국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과 건강한 환경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잊지 말자.
/김호은 전북지방환경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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