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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민주화 거친 '민주세대 상징' 이해찬 前총리 별세

향년 73세…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응급 이송 후 회복 못 해
민주화 운동 출신 7선 정치인, DJ정부 교육장관·盧정부 총리 역임
李대통령의 ‘정치적 멘토’…26일 밤 대한항공편 국내 운구·27일 아침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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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사진은 2018년 8월 25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 대표에 당선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지 이틀만인 이날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께 숨을 거뒀다.

이 수석부의장은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스텐트 시술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이 수석부의장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6선의 조정식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로 급파했다. 이재정·김영배·김현·이해식·최민희 의원 등 그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들도 잇따라 현지로 향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운명했다.

김영배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지시간으로 26일 오후 11시 50분 대한항공편으로 고인을 모시고 한국으로 갈 예정이며, 인천공항 도착 시간은 오전 7시께"라며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유가족이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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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에서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손을 잡고 이동하는 모습을 이날 SNS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통하는 고인은 7선 의원 출신으로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며 작년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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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열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취임식에 참석한 이해찬 수석부의장 모습. /연합뉴스

고인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학생 운동과 재야 활동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국회에 입성해 7선 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각각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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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연합뉴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취임해 21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이끄는 등 민주 진영 정치인들의 구심점으로 활동했다. 

정치권에서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군사정권과 민주화 이후를 모두 경험하고 목도한 민주 세력의 상징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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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덕수중·용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3년 10월 교내 유인물 사건에 연루돼 수배됐고,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쳤다.

출소 후에는 서울대 인근에 책방 '광장서적'을 개업하고,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하는 등 재야에서 운동을 이어갔다.

1980년 대학에 돌아온 그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그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고, 2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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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7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후 재야 입당파들과 평화민주당에 입당,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만 13대 총선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후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19·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1995년), 교육부 장관(1998년), 국무총리(2004년)까지 지방자치와 제도권 정치의 정점을 모두 경험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교육 개혁을 진두지휘했지만, '학교 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학력 저하 논란을 낳아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국무총리에 취임해 노무현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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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이해찬 전 총리가 31일 세종특별자치시 나무그늘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 정치 무대에서는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정책을 맡았다. 

소속 정당이 여야를 오가는 동안 총 세 차례 정책위원회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 진영의 전략 기획가로 활약해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0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때는 '민주당 20년 집권계획'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각별한 정치적 동지로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4∼2018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2020년 21대 총선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당 대표 임기 종료 후에는 여의도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고 동북아평화경제협의회 이사장을 맡았다. 작년 10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화 운동 세대 가운데서도 고(故) 김근태 전 장관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과 현실 제도권 정치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간 정치인으로 꼽힌다. 소신과 추진력이 강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깐깐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정옥 씨와 딸 현주 씨가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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