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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시대, 인문학이 원천기술이다

이용욱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안드레이 카파티(Andrej Karpathy)는 AI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가 최근 공개한 ‘LLM Wiki’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 도구를 넘어선다. 자신의 모든 작업 로그와 메모를 위키에 던져 넣고, AI가 실시간으로 이를 분류하고 연결하도록 설계한 이 시스템은 이른바 ‘기술생성시대(技術生成時代)’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본이다.

이 위키에서 AI는 100개의 문서를 40개로 압축하고 새로운 지식의 연결망을 스스로 제안한다. 놀라운 것은 그 압축의 논리를 카파티가 직접 설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온전히 AI의 자율적 판단이다. 이처럼 인간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맥락을 기계가 스스로 창출하는 순간, 우리는 기존의 ‘기술편집시대’를 넘어 ‘기술생성시대’로 돌이킬 수 없이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지식을 생성하더라도, 그 산출물이 논리적으로 정합한지, 윤리적으로 타당한지, 현실의 맥락에서 유효한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카파티는 AI의 생성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도, 반드시 그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며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 이것이 바로 ‘재량행위자(裁量行爲者, Discretionary Agent)’의 역할이다. 지식의 생성은 AI와 분점할 수 있어도, 그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결코 기계와 나눌 수 없다.

발터 벤야민은 1936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기계적 복제 기술이 원본의 아우라(Aura)를 해체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통찰은 옳았다. 그러나 그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다. 복제 기술 이후에 편집 기술이, 그리고 마침내 생성 기술이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비극적이게도 벤야민의 생은 짧았고, 그가 남긴 사유의 공백을 채워 새로운 시대를 진단하는 것은 오늘날 인문학의 몫이 되었다.

AI 시대에 인문학이 위기를 맞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넘쳐난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거꾸로 된 진단이다. 인문학은 AI 시대의 한가로운 장식품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강력한 ‘원천기술’이다.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무수한 산출물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가치를 심문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규범적 능력은 깊은 인문학적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텍스트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힘, 파편화된 정보에서 맥락을 직조하는 힘, 그리고 흔들림 없이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힘. 이것이야말로 기술생성시대를 살아가는 재량행위자에게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핵심 역량이다.

카파티의 방법론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기술 커뮤니티는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수많은 이들이 앞다투어 자신만의 LLM 위키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최신 도구의 껍데기를 모방하는 것과, 기계와 호흡하며 진정한 재량행위자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으로는 AI와의 공진 생태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역량, 즉 공진 설계 역량(Resonance Design Capacity)의 격차가 기술생성시대의 새롭고도 가혹한 불평등 구조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격차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단순한 코딩 기술이 아니라, 고도의 철학적 ‘판단 능력’이다. 인문학이 새로운 시대의 원천기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지식을 생성한다. 그러나 지식구조화의 과정에서 답변을 판단하고 그 결과에 윤리적·법적 책임을 짐으로써 지식을 확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인문학은 그 인간을 만드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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