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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광승마을 ‘죽은 송아지 시위’…외면과 방관이 부른 참극

토사 운반 소음·진동 피해 호소에도 책임 회피만…폐사·유산 잇따르며 축산농가 생존권 붕괴

고창군 해리면 광승마을에서 축산 농가가 피해를 호소하며 죽은 송아지를 트랙터에 매단 채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현장 인근 도로에는 덤프 트럭 10여 대가 줄지어 주차돼 있다. /박현표 기자

23일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광승마을 입구. 죽은 송아지를 트랙터에 매단 채 길목을 지키는 농민 김춘용 씨의 모습은 더 이상 시위가 아니다. 행정과 사업자의 무책임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농민이 내지르는 절규이자, 지역 사회가 외면해온 참혹한 현실의 민낯이다.

올해 2월 이후 광승마을과 인근 방축·월산 일대에서는 송아지 폐사와 유산, 사고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김 씨에 따르면 자신의 농가에서만 송아지 7마리 가운데 2마리가 폐사하고 3마리가 유산했으며, 나머지 2마리는 놀란 어미소에 짓밟혀 죽었다. 여기에 인근 농가들까지 포함하면 어미소와 송아지 등 10여 마리가 유산되거나 폐사하거나 부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피해 규모와 양상이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집단적이다.

농가들은 심원면 고전리 일대 이른바 ‘용평리조트 건설’과 연계된 토사 채취 및 운반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소음과 진동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루 수십, 수백 차례 오가는 대형 덤프트럭의 굉음과 지반 흔들림이 임신한 어미소에 치명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수정 실패와 추가 유산 우려까지 확산되며 농가들은 밤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공포 속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사업자는 “그 정도 소음으로 폐사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로 책임을 일축하고 있다. 피해를 호소하는 농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공감도, 조사도 아닌 ‘법대로 하라’는 냉담한 태도뿐이다. 이는 갈등을 조정해야 할 당사자가 오히려 불신과 분노를 키우는 기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행정의 무기력이다. 고창군은 수개월간 반복된 민원과 피해 호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조사나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뒤에야 뒤늦게 협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농가의 신뢰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다. 행정이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광승마을 농민들은 “송아지가 죽어 나갈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며 “보상은 필요 없으니 공사부터 당장 멈춰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 절박한 외침은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로 남아 있다. 행정은 보이지 않고, 사업자는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철저히 고립된 채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민원 분쟁이 아니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 공동체와 생업이 얼마나 쉽게 희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더 나아가 인허가 과정의 적정성까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철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지금과 같은 무성의와 방관이 계속된다면, 광승마을에서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공사 중단을 포함한 즉각적인 대책과 과학적 원인 규명, 그리고 명확한 책임 추궁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고창=박현표 기자

박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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