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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뇌 썩음의 시대, 인류의 ‘사유 근육’을 키우자

이수영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로컬창업본부장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을 선정했다. 소셜 미디어의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파편화된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인지 능력이 저하되고, 문해력이 고갈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도파민에 중독되어 사유의 깊이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다.

이제는 단순한 디지털 휴식을 넘어 인간으로써 인지적 재건의 쉼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는 수백년간 지식의 심장이자 출판의 성지였던 이곳, 전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북은 예로부터 한반도 지식 유통의 핵심 기지였다. 조선 시대 서울의 ‘경판본’에 맞서, 대중 문학의 꽃을 피웠던 전주의 ‘완판본’은 물론, 정읍 역시 독자적인 판본을 찍어내던 ‘태인본’의 중심지였다. 특히 태인은 호남 지역 서적 출판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영남의 안동과 더불어, 영호남 출판 문화를 양분했던 곳이다. 기록하고 공유하며, 사유를 확장해 온 전북의 역사는 오늘날 디지털 황무지 속에서 ‘깊이 읽기’의 가치를 복원할 가장 강력한 토양이 된다. 전북의 출판 자산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전주시는 최근 조선 시대 서적 중개인이였던 ‘책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책쾌’는 단순히 책을 파는 장사꾼이 아니었다. 독자의 지적 수준과 취향, 심지어 고민까지 파악해 가장 필요한 책을 골라 배달하던 ‘지식의 큐레이터’였다. AI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편향을 강화해 사고를 가두는 ‘필터 버블’을 만든다면, 책쾌는 독자의 성장을 고민하며, 낯설지만, 삶에 꼭 필요한 문장을 건넨다. 이들의 느린 호흡과 정교한 추천은 스마트폰에 지친 현대인의 뇌를 치유하는 처방전이다.

현재 전주에는 대한민국 출판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자리 잡고 있어, 국가 출판 행정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전주 곳곳의 도서관과, 로컬 청년 서점지기, 고창의 서점마을을 운영하는 사람들로 새로운 활력을 더한다. 청년들이 책을 매개로 지역에 정착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이 실험은, 책 읽기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뇌 썩음 시대를 극복할 가장 트렌디한 저항임을 보여준다.

전북은 단순한 책의 도시를 넘어, 이 시대 사유를 구원할 ‘리딩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가야 한다. 완판본과 태인본의 역사적 자산, 정책 기관 및 고창 서점 마을, 전주 책쾌가 보여주는 현대적 감각은 전북을 하나의 거대한 ‘열린 도서관’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전주의 고즈넉한 도서관에서, 정읍의 유서 깊은 서원 곁에서, 고창의 푸른 서점 마을에서 인류는 비로소 무분별한 디지털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 ‘인간다운 사유’를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전북의 로컬 서사가 담긴 설화나 지역문학, 마을 기록 등의 지식 재산권을 활용한 출판 콘텐츠 활성화, 그리고 이를 위한 로컬 출판 창업을 위한 펀딩, 인재육성, 디지털 출판 등의 지역출판을 위한 새로운 혁신모델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주 도서관여행을 전북으로 확장하여, 전주 도서관, 남원의 고전문학, 정읍의 태인 방각본, 고창의 책 마을과 서점마을 등을 연계한 전북 책 여행과 북 스테이를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보자.

지식의 뿌리가 깊은 땅 전북에서, 우리는 다시 깊게 읽고, 넓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 뇌가 썩어가는 시대, 전북의 문장들이 인류의 정신을 깨우는 첫 번째 섬광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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