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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시인의 ‘풍경’] 보리누름에 산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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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作

봄 끝 여름 초입입니다. 전주-군산 산업도로를 달려갔습니다. 보리논 반 모심은 논 반, 들녘이 옛적 반섞이 보리밥 같았지요.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 816-1 육백 살 은행나무 아래, 정양 선생님께서 “어서들 와, 벌써 덥네” 손부채 활랑거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를 간다던가요? 우리는 넓디넓은 은행나무 그늘에 둘러앉았습니다. 1주기 추도식이 아니라 떡과 술이 있는 시회(詩會)였습니다. 누구는 선생님의 시를 읊었고 또 누구는 선생님과의 추억을 길게 이었습니다. 모두 느릿느릿 더듬더듬 할 말 다했습니다. 플래카드 속 선생님, “다 뻥이야 뻥! 뭘 귀담아들어?”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 여전하셨고요.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참 세상 대책 없는 막말도 시로 뽑아내는 시인이 선생님 말고 또 누구랍니까? 은행나무 아래 올려 본 하늘, 꼭 사모님 이름을 웅얼거리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후배, 제자 시인들 모여 늦보리처럼 앵두처럼 익어갔습니다. 그러게요, 육백 살 은행나무 가을 소출이 몇 가마일까요? 선생님은 곳곳에 뿌리내리실 것입니다. 태산(泰山)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의 고운 선생도 검단 선사도 아니면서 우리는 배 터지게 술과 시를 마셨습니다. 차수 바꿔 오래 놀았습니다. 보리 익어가는 시절 산들바람 산들거린 하루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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